고수들 - 오광록서울취재본부 부장
2026년 01월 14일(수) 00:20
MIT의 청소부 윌은 필즈상 수상자인 교수가 복도 칠판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낸 수학 난제를 풀어낸다. 또 학교 앞 주점에서 ‘아는 척’하는 MIT 학생들과 논쟁을 벌이며 유명한 대사를 남긴다. 윌은 “너의 생각은 없고 책에서 본 걸 그대로 말한다”며 상대가 읽었거나 정독하고 있는 책 제목을 나열한 뒤 “공공 도서관 연체료 몇 달러면 다 배울 수 있다”고 일침을 가한다.

영화 ‘굿 윌 헌팅’ 속 윌처럼 우리 삶 곳곳에 숨은 고수들이 많다. 아주 사적인 필자의 최근 경험을 예로 들자면, 서울에 눈이 내리던 날 ‘종로 11번’ 마을버스 안에서 심금을 울리는 음악을 만날 수 있었다. 운전기사의 선곡 수준은 수십 년 전 라디오 ‘FM 심야 영화음악’의 감동에 버금갔다. 버스 창밖 광화문의 풍경은 마치 ‘설국’처럼 펼쳐졌고, 신들린 선율에 하차를 놓칠 뻔했다.

또 여의도 앞 한 건물을 관리하는 노인의 책상에는 신예작가들의 신간 소설집이 번갈아 놓여 있다. 조그만 책상용 전등을 켜고 책을 읽고 있는 노인의 평온한 얼굴을 퇴근길이면 건물 현관 유리문을 통해 볼 수 있다. 마을버스 운전기사와 건물 관리인은 적어도 좋은 음악과 책을 즐길 줄 아는 일상 속 ‘감성 고수들’이다.

가장 많은 고수들이 칼을 숨기고 있는 곳은 단연 정치판이다.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정치계 고수는 ‘정치 9단’ 박지원 의원이다. 박 의원은 국내 유명 뉴스 채널과 유튜브 섭외 1순위다. 그가 각종 매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쾌도난마’의 분석과 거침없는 일침 덕분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요리 경쟁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의 고수들처럼 박 의원이 선보이는 ‘정치 밥상’은 재료 본연의 맛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고수인 척하는 하수’가 가장 많은 곳도 정치계다. 내공이 없을 수록 겉모습은 고수처럼 꾸민다. 아는 척을 많이 하고 모든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돌리는 정치인이 하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에 따라 진정한 고수를 알아보는 유권자의 눈도 중요해지고 있다.

광주·전남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 잘하는 고수를 ‘동네 머슴’으로 두고 싶다면 누가 진짜인지 구별할 수 있는 ‘유권자의 내공’도 길러야 한다.

/오광록서울취재본부 부장 kro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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