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말하라 - 임몽택 미네르바 코칭앤컨설팅 대표, 전 광주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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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각자 다른 조건을 갖고 태어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도 있다. 만일 자신이 흙수저를 물었다면 이 기막힌 불공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세상의 모든 일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건강, 재산, 평판과 같이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판단, 충동, 욕구와 같이 자신의 통제권 안에 있는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행복과 자유를 얻으려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으라고 했다. 흙수저를 물었다고 해서 자신이 통제할 수도 없는 타고난 조건만 탓하는 것은 행복과 자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타고난 조건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그 이후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자신을 재창조하면 된다. 재창조란 타고난 조건과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자신의 관심사, 혹은 자신의 재능이나 강점을 융합하여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소아시아에서 노예로 태어난 절름발이였지만 고대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대표적인 철학자가 되었다.
에픽테토스는 노예라는 신분, 절름발이가 된 다리 등 비참한 조건들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통제 불가능한 영역으로 간주하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반면에 정신, 가치관, 의지 등 자신이 마음대로 계발하고 확장할 수 있는 통제 가능한 영역에 관심과 노력을 집중했다. 그는 노예 생활로 단련된 인내심에 스토아 철학의 논리를 결합했으며 절름발이라는 신체적 고통마저 ‘다리는 부러져도 의지는 부러지지 않는다’는 철학적 진리를 증명하는 지렛대로 삼았다. 그는 해방되어 노예 신분에서 벗어난 뒤에도 화려한 삶 대신 검소한 삶을 선택했다. 그리고 로마에서 추방당한 뒤 니코폴리스에 철학 학교를 세웠다. 사람들은 그토록 비참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의 평온함을 보고 모여들었고 그의 가르침은 훗날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명상록’을 집필하는데 깊은 영감을 주었다.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조건이 아니라 조건에 대한 태도다. 가난이나 신체적 장애 자체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은 수치스러운 것” 혹은 “내가 실패한 것은 불리한 조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태도가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타고난 조건은 내가 정할 수 없지만 그 조건을 대하는 나의 반응은 온전히 나의 영역이다.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삶의 주도권을 쥐는 ‘개인의 주체적 태도’는 단순히 ‘하면 된다’는 긍정론과는 다르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면서도 그 한계가 나라는 존재를 규명하게 놔두지는 않겠다는 치열한 내면의 자존감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포로수용소를 전전하다 홀로코스트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 수용소의 많은 포로들이 굶주림, 고문,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굴복해 짐승처럼 변하거나 삶을 포기했지만,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대화를 상상하거나, 수용소의 경험을 강의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지옥 같은 상황을 이겨냈다. 고통보다는 그 고통을 견뎌낼 ‘이유’를 선택한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디어 낼 수 있다”고 말하고 “만약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어떤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는 없다.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이것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흙수저의 삶은 분명 고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경험들은 역설적으로 부유한 환경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성공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세상을 꿰뚫는 눈은 거친 현장과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면서 더 예리해지고, 숱한 거절과 좌절 속에서 다져진 심리적 맷집은 어떤 위기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은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거나 체념하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운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고난 조건을 불평하고 원망하며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 비록 남루할지라도 내 손에 쥐어진 이 삶을 뜨겁게 껴안고 자신을 재창조해야 한다. 타고난 조건은 운명이지만 그 조건의 주인이 될지 노예가 될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세상의 모든 일을 두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건강, 재산, 평판과 같이 자신의 통제권 밖에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판단, 충동, 욕구와 같이 자신의 통제권 안에 있는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행복과 자유를 얻으려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 모든 에너지를 쏟으라고 했다. 흙수저를 물었다고 해서 자신이 통제할 수도 없는 타고난 조건만 탓하는 것은 행복과 자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조건이 아니라 조건에 대한 태도다. 가난이나 신체적 장애 자체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은 수치스러운 것” 혹은 “내가 실패한 것은 불리한 조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태도가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타고난 조건은 내가 정할 수 없지만 그 조건을 대하는 나의 반응은 온전히 나의 영역이다.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삶의 주도권을 쥐는 ‘개인의 주체적 태도’는 단순히 ‘하면 된다’는 긍정론과는 다르다. 그것은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면서도 그 한계가 나라는 존재를 규명하게 놔두지는 않겠다는 치열한 내면의 자존감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포로수용소를 전전하다 홀로코스트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 수용소의 많은 포로들이 굶주림, 고문,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굴복해 짐승처럼 변하거나 삶을 포기했지만,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대화를 상상하거나, 수용소의 경험을 강의하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지옥 같은 상황을 이겨냈다. 고통보다는 그 고통을 견뎌낼 ‘이유’를 선택한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디어 낼 수 있다”고 말하고 “만약 삶에 어떤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어떤 목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는 없다.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이것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흙수저의 삶은 분명 고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경험들은 역설적으로 부유한 환경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성공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세상을 꿰뚫는 눈은 거친 현장과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면서 더 예리해지고, 숱한 거절과 좌절 속에서 다져진 심리적 맷집은 어떤 위기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한 ‘운명을 사랑하라’는 뜻은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거나 체념하라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운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고난 조건을 불평하고 원망하며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 비록 남루할지라도 내 손에 쥐어진 이 삶을 뜨겁게 껴안고 자신을 재창조해야 한다. 타고난 조건은 운명이지만 그 조건의 주인이 될지 노예가 될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