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면성 지닌 형님 리더십- 장필수 논설실장
2025년 12월 31일(수) 00:20
한 해를 되돌아보는 연말이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사자성어에 모든 것이 담긴 한 해 였다. 좋았던 일 아쉬웠던 일, 슬펐던 일 기뻤던 일. 돌아보면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KIA 타이거즈의 성적 만큼 아쉬웠던 일도 없을 것이다.

디펜딩 챔피언으로 우승 기대 속에 시즌을 시작했지만 최하위에 가까운 8위라는 성적으로 마감했다. 지난해 KBO리그를 씹어 먹었던 김도영을 비롯한 주축 선수들의 부상이 부진의 1차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부상만으로 급전직하의 성적을 설명하긴 어렵다. 전문가들과 팬들은 이범호 감독의 리더십을 거론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른바 ‘형님 리더십’이다. 선수들과의 스킨십을 바탕으로 한 소통이 핵심이다.

이 감독은 지난해 KIA 타이거즈 지휘봉을 잡자 마자 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구단은 전임 감독의 배임·횡령 혐의로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선수단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 감독을 사령탑으로 선택했다. 42세 KBO리그 최연소 감독은 선수들과 허물없는 스킨십으로 팀 분위기를 일신해 타이거즈 ‘V12’이란 금자탑을 쌓았다.



KIA 부진에 형님 리더십 논란

그는 지난해 한국시리즈 5차전을 앞두고 “선수들 위주로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며 “선수들의 성향을 먼저 파악하고 그들이 플레이를 잘 할 수 있게 만들어주면 활발하게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자신의 지도 철학을 소개했다. 팬들은 이를 이범호식 ‘믿음 야구’라고 불렀다. 동계 전지훈련 때는 자율 훈련을 강조했다. 그 때도 팬들은 이범호식 믿음 야구를 믿었다.

세상은 결과로 평가한다. 프로의 세계는 더더욱 그렇다. 올 시즌 KIA 성적이 이범호의 믿음 야구에 대한 믿음을 거둬 들이게 했다. 나아가 형님 리더십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했다. 형님 리더십은 양면성이 있다. 소통의 리더십이란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 능력보다 믿음을 중시하는 리더십이란 부정적인 평가다. 이런 양면성 때문에 성적이란 결과에 따라 평가가 엇갈리게 된다.

비단 프로의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말은 아니다. 일상 사회생활에서도 형님 리더십의 지도자가 있다. 실력으로 조직을 장악하지 못해 업무보다 관계성을 중시하는 유형이다. 친밀한 스킨십은 소통을 원활하게 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형님 리더십만으로는 조직을 운영할 수 없다. 필요할 때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능력과 적절하게 기강을 잡아 긴장감을 불어 넣어야 조직이 영속할 수 있다.



KIA 타이거즈 성적 부진의 근본 원인도 여기에 있다. 선수들과의 소통도 좋지만 기강을 잡지 못한 감독의 리더십이 통제력을 상실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명장의 조건은 꾸준한 성적이다. 김응용 감독과 염경엽 감독은 말할 것도 없고 간혹 선수 혹사 논란을 낳은 김성근 감독도 성적으로 명장의 반열에 올랐다. 형님 리더십이 다시 빛을 발하려면 결국 성적으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성적이 따르지 않는 형님 리더십은 공허할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는 프로야구이고 그 중에서도 KIA 타이거즈는 최고 인기 팀이다. 이정효 감독의 광주FC가 열악한 조건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지만 광주는 축구보다는 야구도시다. KIA 타이거즈의 성적에 따라 골목상권이 울고 웃을 정도다.



성적으로 골목상권 살리길

현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프로야구 소비지출 효과’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10개 구단 가운데 지역 내 파급효과가 가장 큰 곳은 단연 광주였다. KIA 타이거즈가 창출하는 생산유발액은 920억원, 부가가치유발액은 400억원에 달해 지역내 총생산 대비 전체 파급효과(생산유발액과 부가가치유발액의 합계) 비중도 0.24%로 1위 였다. 관중수, 입장료, 식음료, 교통비 등 KIA 타이거즈가 직접 창출하는 소비지출액도 741억원이었다.

이러할진대 광주 골목상권이 좋을리 없다. 며칠 전 한국신용데이터가 발표한 2025 시즌 야구장 상권 트렌드 보고서를 보면 프로야구는 올 시즌 역대 최다 관중 기록 속에 야구장 주변 상권이 모두 특수를 누렸지만 광주만 유일하게 KIA챔피언스필드 주변 상가 매출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전국 야구장의 하루 평균 관중수는 전년 대비 13.7% 늘었지만 광주는 오히려 12.1%나 줄었다. 경기가 있는 날 경기장 주변 상가 매출은 롯데가 가장 많은 19% 늘고 9개 구단 평균 7.1% 증가한 데 반해 광주만 유일하게 0.01% 줄었다. KIA 홈구장 관중이 급감하면서 홈경기가 있는 날 장사가 경기가 없는 날보다 안 된 것을 보면 부진한 KIA 성적에 얼마나 많은 팬들이 경기장을 외면했는지 알 수 있다.

내년에는 정말 KIA챔피언스필드에서 가을야구를 보고 싶다. KIA 타이거즈의 성적은 팬들의 염원일 뿐만아니라 광주 골목상권을 살리는 것과도 직결돼 있다. ‘믿음 야구’를 추구하는 이범호 감독의 형님 리더십이 3년차에는 부디 빛을 발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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