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1년] 남겨진 죄책감·잊혀지는 두려움…고통에 짓눌린 삶 여전
유가족들 힘겹게 버텨온 1년
이대로 묻혀 ‘끝난 일’ 될까 불안
퇴직 후 일주일 중 6일 공항 생활
냉소적인 시선, 마음 아프게 해
정부 미진한 대응 속 생계도 막막
진상 밝혀질 때까지 기억해 주길
2025년 12월 25일(목) 19:45
무안국제공항 내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이 머물고 있는 쉘터(피난 텐트)에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어렵게 만난 30명의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은 ‘함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잊혀지는 두려움’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었다.

참사 이후 지난 1년 동안 진상 규명도, 책임자 처벌도 무엇 하나 이뤄진 것이 없는데 오히려 사회적 무관심과 냉소적인 반응, 사회적 낙인만 커진 상태라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피해자가 죄를 지었느냐”, “살아남았다는 죄로, 온 세상으로부터 2차 가해를 당하는 것 같다”며 한 목소리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지난 24일 무안군 망운면 무안국제공항에서 만난 고재승(43)씨는 부모님의 여행을 말리지 못했다는 후회와 자책으로 업무 수행이 어려워 회사를 휴직한 지 벌써 8개월째다.

고씨는 “1년의 시간이 그대로 멈췄다. 하루에도 몇번씩 눈물이 차오르는 탓에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다”며 “내가 함께 갔더라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매일 그 생각을 한다. 사고 이후 마지막 모습이 너무 훼손돼 제대로 안아드리지 못했던 것도 고통스러운 기억”이라고 털어놨다.

유가족들은 공항을 떠나는 순간 참사가 ‘끝난 일’로 취급될까봐 불안해서 공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많은 사람이 진상규명이 끝난 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광주·전남 지역민들조차 “다 끝난 것 아니었느냐”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지인과 밖에서 식사를 하거나, 잠시 웃기라도 하면 ‘이제 마음 정리된 것 아니냐’, ‘다 끝났나 보다’라는 시선을 받고 있다는 것이 유가족들 말이다.

여홍구(72)씨는 “사고가 이대로 묻혀버리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크다”고 토로했다.

여씨는 1년 전 사고로 아끼던 딸과 사위, 두 손자를 한번에 잃었다. 그는 가족들이 공항에 도착하고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이유를 알기 위해 유가족협의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씨는 “풀리지 않는 의혹이 많은데 유가족들조차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서 “책임 기관인 국토교통부는 모든 것을 감추며 제 식구 감싸기만 하는 것 같다. 공항을 떠나면 증거가 사라지고 사고도 그대로 묻힐 것만 같다”며 고개를 떨궜다.

시간이 점점 흘러갈수록 ‘다 배상받지 않았느냐’, ‘이미 다 해결된 이야기 아니냐’는 냉소적인 눈초리도 그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

그는 “공항에서 밤을 새우고 대통령실 앞에서도 노숙하며 현장을 지켜왔다. 그런 고됨은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면서 “다만 ‘아직도 그러고 있느냐’, ‘돈 때문에 그러는 것이냐’는 시선이 너무나도 괴롭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성철(54)씨도 “가장 힘든 건 1년째 공항에 머무는 나를 주변 사람들이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라며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잃고 아들과 매일을 버텨내고 있다. 직장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워 퇴직한 뒤 일주일 중 6일을 무안공항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아들이 학교에서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임을 친구들에게 알리지 못한다”며 사회적 낙인과 시선이 여전히 큰 부담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전국적인 지원이 이어졌던 참사 직후와 달리 시간이 흘러 관심이 점차 끊기면서 생계 문제 역시 유가족들이 마주하는 현실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김도희(여·41)씨는 “주변 유가족들을 보면 가장의 사망 등으로 생계가 막막해진 사례가 적지 않다”며 “생활이 어려워진 가족들을 위한 가사·생계 지원이 필요하다. 지역의 피해가 막대한 사고임에도 지역사회의 관심마저 옅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가족들은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호소하고 있다. 진상 규명이 마무리되고 책임 소재가 분명히 밝혀질 때까지 참사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또 정부의 진상규명 의지를 촉구하기도 했다. 1년 동안 정부는 오히려 유가족들에게 사고 관련 정보를 일체 공개하지 않는 등 거리를 벌리더니, 진상규명 속도를 높이려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고로 부모를 잃은 A(여·46)씨는 “왜 항공사도, 국토부도 요지부동이고 피해자인 우리들이 거리로 나서야하느냐”며 “공청회를 연기해달라고 하고 삭발 투쟁에도 참여했는데 여전히 진상규명은 하나도 되지 않고 책임지고 처벌받은 사람도 단 한 명이 없다. 1년 동안 정부를 믿었는데 이제는 답답한 마음만 남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박근우(24)씨는 “정부의 무관심이 도를 넘었다. 조사 속도를 높일 능력이 있으면서도 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아예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유가족들은 언제까지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느냐”고 토로했다.

유순희(여·74)씨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조속히 밝혀져야 한다”면서 “그래야 아들과 며느리, 손자가 편안하게 천국을 여행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날까지 국민들도 끝까지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린다”며 연신 눈가를 훔쳤다.

/김진아·서민경·양재희·윤준명 기자 jingg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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