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의 밤 지금도 생생…민주주의 위협 필히 단죄해야”
[5·18을 겪은 광주 시민들이 보는 계엄 1년]
진상 규명·책임자 처벌 매듭짓지 못하면 5·18 악몽 되풀이 될 것
학계·당사자들, 신속한 재판으로 철저한 법적·사회적 책임 물어야
청소년까지 ‘1년 지나도 변화 체감 못해…명확한 정리 시급’ 지적
2025년 12월 01일(월) 21:05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4개월여 뒤인 지난 4월 30일 광주시 동구 금남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광주 수피아여중 학생들을 비롯한 관람객들이 붐비고 있다. 비상계엄 여파로 5·18기록관 관람객은 지난해 5만 9083명에서 올해(11월 9일 기준) 9만 9556명으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12·3 내란의 밤’ 이후 1년, 광주 시민들은 되살아난 5·18 트라우마로 밤잠을 설쳐야 했다.

그 이후 1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내란을 주도한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은 지지부진하고, 광주시민이 받은 트라우마와 상처에 대한 치유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5·18 이후 40년 넘게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고, 광주 학살 책임자인 전두환씨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던 것이 겹쳐 보인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1일 만난 광주시민들은 “이번에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매듭짓지 못하면 그것이야말로 5·18 악몽의 반복”이라며 “내란범들에 대한 재판이 확실하고도 조속히 마무리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5·18 경험 떠오른 기성세대=광주 시민 김복순(여·79)씨는 “1년전이나 45년 전이나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똑같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라고 전했다.

김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는 장면을 보자마자 “5·18 당시 지원동 일대에서 남편과 함께 시신을 봤던 경험이 생생하게 떠올랐다”고 한다. 총탄이 쏟아지는 현장에서 어떻게 살아돌아왔는데, 다시 군인들이 일반 시민들을 가로막고 있는 광경을 보니 허탈함과 울분이 솟았다는 것이다.

김씨는 “TV에서 내란 재판 장면을 보여주면 채널을 돌리지를 못한다. 언제 처벌이 이뤄지는지만 기다리고 있다”며 “윤 전 대통령도 몰아내고 내란 재판도 진행 중이지만 1년이 지나도록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책임소재를 분명히 따지고, 시민들이 불안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5·18 당사자들도 불법계엄 이후 1년째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에 따르면 계엄이 선포된 12월 3일 이후로 온 국민이 트라우마를 겪었고, 특히 오월어머니들은 심리적 고통이 커져 줄지어 트라우마 치유 센터를 다니고 있다고 한다.

김 관장은 “오월어머니들을 위한 가장 좋은 치료제는 윤석열, 김건희 부부와 내란 세력들이 엄벌에 처해지고 1980년 오월 영령들이 지켜 온 헌법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라며 “윤석열, 김건희 부부와 내란 세력들을 강하게 처벌해야 제2, 제3의 계엄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이지현 5·18민주화운동 부상자회 상임부회장도 12·3 비상계엄이 선포되자 5·18 당시 광주, 서울 등지에서 민주주의를 외치다 부상을 입고 한쪽 눈을 잃었던 기억, 가족들이 연행되던 기억 등이 떠올랐다며 눈물을 흘렸다. 민주화를 위한 그 모든 노력들이 한순간에 허물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다시 느껴졌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도 반복되는 역사를 막기 위해서는 관련자들의 엄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역사가 다시 후퇴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란 관련자들에 대해 지위 고하를 불문하고 법의 심판, 엄벌에 처해야 한다”며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이런 역사는 언제든 재발할 수밖에 없다. 그게 우리 시대의 마지막 과제”라고 말했다.

◇금남로를 지켰던 ‘평범한 광주시민’=장상원(25·성균관대 사학과 석사과정)씨는 불법계엄에 맞서 금남로 5·18민주광장을 지키다, 독재 정권과 국민 탄압에 관한 현대사를 깊이 연구해서 대중에 알리고픈 결심에 사학과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불법계엄 이후 서울서부지법 폭동 등을 지켜보며 그릇된 역사 인식과 망각, 음모론과 극단주의에 따라 민주공화정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 의식을 느꼈다는 것이다.

장씨는 “계엄령을 선포하는 요건을 구체화하고 엄격하게 정해서 악용하지 못하도록 계엄법을 제대로 개정해야 한다”며 “현재 정치인들은 국회에 계엄군 병력이 주둔하는 걸 금지시킨 것 외에는 없다. 또다른 악용과 남용의 화근을 남겨놓은 셈 아닌가”라며 반문했다.

교직에 오랜기간 몸 담았던 최하석(83)씨도 계엄 선포 직후 금남로로 나가 피켓을 들고 수개월 동안 집회에 참가했다. 5·18 때 겪었던 아픔을 80대가 돼서 또 느끼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최씨는 “금남로에서 몇날며칠 목소리를 내면서도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더라”며 “계엄을 선포해서 광주시민들이 일군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장기집권까지 노린 자들에게 왜 아직도 처벌이 내려지지 않고 있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미래 세대도 “변화는 언제쯤”=광주 석산고 학생인 이준원(17)군은 학교가 계엄으로 시끄러웠던 1년 전이 지금도 생생하다. 응원봉을 들고 광장으로 가 집회에 나서는 사람들을 보면서 민주주의를 직접 배웠다는 것이다.

이군은 “역사시간에 배웠던 5·18이 이전엔 와닿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면서도 “이처럼 중요한 일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의아하다. 내년에는 상황이 마무리 되고 시민들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사회 변화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의 양준혁(17)군도 “1년 전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당시 야자 끝나고 집을 가려던 순간에 뉴스를 보고, ‘설마설마’ 하면서도 빨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며 “벌써 연말인데 크게 달라진 걸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 재판 과정을 지켜보면 아직도 확실하게 정리가 안된 것 같다”고 한탄했다.

◇학계서도 “민주주의 위협한 책임자 단죄해야”=5·18 연구자들은 5·18부터 12·3 내란까지 이어지는 비극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법적·사회적 처벌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분석했다.

12·3 내란은 5·18 당시 진상규명과 처벌을 하지 않고, 재발을 막기 위한 법·제도적 변화를 이루지 못한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김형주 전남대 5·18연구소 부교수는 “한 무리의 잘못된 결정에 수십 년 쌓아온 민주주의가 단 한순간에 뒤집힐 수 있다는 걸 모두가 체감했다”며 “민주주의는 체계도 중요하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개인들이 어떤 행동을 하느냐가 제일 핵심”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이어 “가장 시급한 건 내란 주범, 관련자들에 대한 법적·사회적 단죄, 그리고 지금도 지지부진한 대통령 재판의 신속한 마무리”라고 강조했다.

/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서민경 기자 mink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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