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건축-대구 간송미술관] 절제된 품격…조용한 권위… 전통의 은유
45도 경사지 스며드는 건축…자연과 서로 존중
2024년 9월 개관…올해 ‘대구건축상’ 대상 수상
앞마당 11개의 불규칙 기둥, 공간의 리듬 채우고
산세 조망하듯 팔공산맥까지 무한대 시선 확장
5개 전시실, 대청마루처럼 편안한 감상 공간
후원에 ‘간송의 정원’ 북적임 피해 감상 여운 만끽
2025년 11월 24일(월) 19:00
11개 기둥과 지붕 처마아래 비워진 공간에서의 시선은 멀리 팔공산까지 확장한다.
2024년 9월 개관한 ‘대구간송미술관’은 상징적 파빌리온이나 조형적 과잉도 없다. 그 대신 자연의 환경과 기존의 공간이 서로를 존중하는 간격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도시의 문화적 정신적 풍경으로 존재한다.

절제된 품격, 조용한 권위, 그리고 전통 미학의 은유, 그것은 간송미술관 건축이 지닌 독창적 언어이다.

한국 현대건축에서 전통의 재해석은 직간접으로 꾸준히 표현해왔다. 처마 곡선, 한옥 마당, 채 나눔, 형태에서부터 공간의 표현들은 잃어버린 근대기 이후, 특히 공공건축에서의 강박관념은 거쳐 가야 하는 과정적 시간이었다. ‘간송(澗松)’이라는 무거운 명제를 담는 미술관, 어려움을 극복한 소나무처럼 대구에 심겨진 문화, 이 시대의 조용한 은유를 설계(최문규+가아건축)한 건축은 올해 ‘대구건축상’ 대상을 수상했다. ‘대구미술관’이 건립(2011년 5월) 되면서 조성된 편리한 도로, 넓은 주차장, 어울린 조경 환경, 계절의 풍경까지 감상하는 여느 도시에 없는 미술관 옆 미술관이며 고속도로 수성IC에서 10분 거리로 외지 방문객에게도 편리한 접근성이다. 주변에는 지하철 대공원역, 대구삼성라이온즈 파크, 대구스타디움, 수성알파시티 신도시가 인근하고 있다.

◇전통의 은유- 비움의 마당

진입도로 위 산 언덕 북향으로 ‘대구미술관’이, 도로 아래쪽 45도 비켜난 경사지에 ‘간송미술관’이 자리한다.

미술관 접근은 두 갈래로 이루어진다. 건너편 ‘대구미술관’을 먼저 관람하고 사이 도로를 건너서 정면 박석마당으로 들어서는 진입이다. 비워진 마당에는 가벼이 떠 있는 수평 지붕과 불규칙하게 서있는 11개의 기둥이 공간의 리듬을 이루고 있다. 비워진 공간에서의 시선은 도시를 멀리 지나서 팔공산맥의 Sky line까지 확장된다.

전통적인 처마 곡선이나 형태가 없는 공간인데도 익숙함이 있다. 병산서원 만대 루일까? 부석사 안양 루에서 일까? 누마루에 올라서 또는 마당에서 멀리 산세를 조망하듯, 도시의 미술관 마당에서 무한대 차경으로 확장하는 마당공간이다. 미술관의 서편 주차장에서 내리면 건물 측면을 반듯이 바라보게 된다. 낮고도 넓은 기단(基壇) 위에 한편으로 기둥 위 떠있는 처마지붕 또한 익숙한 풍경이다. 기단·기둥·지붕의 현대적 구성은 누마루 아래서 올려다보듯 앙시(仰視) 효과의 처마지붕은 확대되고 강조되어 보인다.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위 문루(門樓) 지붕 처마가 더욱 아름다운 것은 낮은 마당에서 바라보기 때문이고, 정자 처마선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언덕아래 계곡 바위 아래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성벽 또는 누하(樓下)를 지나듯, 지붕 처마를 올려다보며 미술관 옆 계단을 오른다.

서가래도 목재 디테일의 곡선도 없는 수직 기둥과 직선 지붕처마는 시간에 따라 표정이 달라진다. 오전 역광에는 짙은 실루엣으로, 오후 햇빛에는 밝은 색상의 표정이다.

우후죽순처럼의 11개 기둥에서 그 하나는 박석마당을 가출하여 언덕 아래로 질서를 벗어나 서있다. 어긋남 흐트러짐의 미학이다. 미술관의 전 인권 관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12개 기둥 단위에서 모자라는 하나의 마지막 기둥은 ‘시민의 마음으로 시민들이 세우는 기둥’이라고 말했다.

마당 기둥아래 초석인 전통적인 ‘그랭이’ 기법은 울퉁불퉁한 자연 초석에 목재 기둥 밑을 깎아 맞춤은 석축에서도 나타나는 자연미와 정교함의 전통 공법이다. 철 구조를 합성목재로 마감한 둥근기둥으로 전통적 ‘그랭이’기법을 재구성코자 했으나 현대적 디테일은 부자연스럽고, 콘크리트 슬라브 마당에 종묘처럼 박석마당의 표현도 여의치 않음에서 현실적 한계를 읽게 된다.

경사지 기단 위에 지붕이 떠있는 미술관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흐름이다.
◇아래로 흐름의 건축

대체적으로 산지 경사지형의 우리나라 사찰과 서원은 ‘아래에서 위’로 오르는 계단과 누하(樓下) 진입, 기단(基壇)의 건축으로 이루어진다. 경사지에 세워진 미술관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동선흐름이다. 전면도로 마당에서 진입하는 ‘지상 2층’에는 안내, 접수, 아카이브 집 등 최소의 면적으로 그 나머지를 ‘비움의 마당’으로 중시하고 있다.

입구 홀 그 아래의 ‘지상 1층’은 아트 샆, 라운지, 전시실1,2,3이며 전시실4,5는 ‘지하 1층’이다. 경사지형의 3개 층 건물은 층수개념이 헷갈리는 단차(段差) 건축이다. 땅의 흐름을 따른 미술관은 ‘보이는 건축’이 아니라 경사 언덕에 ‘스며드는 건축’을 구현하고 있다.

개관 당시에도,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입구 매표 홀은 대기 줄 행렬로 비좁아 진다. 입구 홀을 돌아 내려서 만나는 아트리움의 넓고도 높은 공간에 비하면 비합리적 설계가 아닌가? 일행에게서 불평어린 질문을 받는다. 소음과 혼란의 매표 안내 홀은 바깥의 과정적 공간으로, 일시적인 불편보다는 박석마당 공간의 무한 가치가 중요한 것이라며 대변하게 된다. 2개 층 높이의 넓고도 높은 아트리움 공간은 전시 관람 전 후에 대화를 나누는 사랑방이자 긴장을 내려놓는 휴식의 안마당 이다.

서측 진입에서 바라보는 미술관, 처마지붕이 앙각으로 강조되어 보인다.
◇어긋남, 사이(間)의 건축

전체적으로 전시기능과 부속기능 두 개로 분리된 건물은 유리 아트리움 공간을 사이(間)에 두고 나란히 배치된다. 사이(間)와 나란함은 약간의 각도로 어긋난 평행이며 기하학의 경직성에서 탈피하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은근과 여유의 배치이다.

지상1층 지하1층에 나누어진 5개 전시실 공간의 성격은 각각 달리하며, 전시 기획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공간으로 변화한다. ‘훈민정음 해례본’, ‘미인도’ 등 국보와 보물의 감상은 특별한 전시실이었다. 38m 반원형 ‘스크린 영상실’은 안방이나 대청마루처럼의 몸이 편안한 감상공간이다.

지하1층의 마지막 전시실을 나오면 뒷면 큰 창으로 비밀의 화원처럼 물의 정원 소나무 언덕이 펼쳐진다. 홀로 앉아 자연을 조용히 감상하고픈 공간은, 전시실의 침묵에서 해방되어 인증사진 촬영으로 북적이는 청춘들에게 밀려나 버린다. 다시 되돌아가는 길은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버리고 좁은 골목길 복도를 천천히 돌아서 올라 가야한다. 영화관의 마지막 크레딧 시간처럼 감상의 여운을 지속하는 시간과 공간이다. 다시 넓고도 높은 아트리움 공간 옆에는 간송의 생애 흔적이 전시된 ‘간송의 방’을 빠트리지 말아야 한다.

◇공유와 확장, 건축과 공간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일제강점기의 문화재 수집을 통해 보여준 문화보국(文化保國)의 정신은, 근대기 교육, 문학, 미술이 활발했고 국채보상운동의 도시 대구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 보화각으로 출발한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수장과 연구의 공간’이었다면, 대구간송미술관은 ‘공유와 확장의 공간’일 것이다. 다시 출입구로 나와 미술관 북쪽 아래로 내려와야 하는 후원(後園)은 인적이 뜸한 비밀의 화원이다. ‘산골 물(澗), 소나무(松)’가 있는 바로 ‘간송(澗松)의 정원’이다.

간송 전형필은 일본으로 유출되는 문화재를 수집하여 민족의 얼이 담긴 보화각을 만들며 오늘의 간송미술관이 되었다. 사유원 유 재성 회장은 일본으로 밀반출되던 모과나무를 되찾고 사라져가는 우리 땅 모과나무를 ‘풍설기천년’에 옮겨 심으며 사유원의 모태가 되었다. 미술관 후원에서 사유원 모과나무 한그루를 발견한다. 또한 한국의 위인을 기리는 사유원 ‘신신전(神神田)’에는 간송 전형필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대구간송미술관’ 과 ‘사유원’은 ‘공유와 확장’의 건축과 공간이다. <최상대 전 대구경북건축가협회 회장·사진=매일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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