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숨겨진 아름다움…‘미학’으로 다시 보다
[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이것은 아름답고 저것은 추한 이유는 무엇인가-이연식 지음
2025년 11월 21일(금) 00:20
한나라 황제인 원제의 후궁 가운데 왕소군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미모가 출중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위기가 닥쳤다. 당시 황제는 후궁을 들일 때 화가에게 후궁의 모습을 그리게 했다. 일일이 만나볼 수 없었기에 고안한 방편이었다.

후궁들은 저마다 화가에게 뇌물을 주어 실물보다 더 아름답게 그리게 했는데 왕소군은 뇌물을 건네지 않았다. 당연히 화가는 그녀를 평범한 인물로 그렸다.

그 즈음 북방의 흉노족과 전쟁을 치렀고 패하기에 이른다. 흉노족은 화친의 요구로 후궁 한 명을 한야선우라는 수장에게 보내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황제는 초상화로 봤을 때 인물이 별로 뛰어나지 않았던 왕소군을 보내기로 했다.

막상 그 날이 돼 왕소군을 봤는데, 예상 밖이었다. 출중한 미모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황제는 왕소군의 미모를 제대로 그리지 않았던 화가를 처형한다.

흉노 땅으로 건너간 왕소군은 고향을 그리며 다음과 같은 시를 읊었다. ‘오랑캐의 땅에는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오랜 시간이 흘러 사람들은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만 떼어 인용을 했다. 실제 시는 왕소군이 지은 게 아니라 동방규라는 문인이 지은 ‘소군원’이라는 시에 담긴 구절이다.

왕소군은 각색된 이야기로 결국 비운의 미녀에 관한 서사다. 그 미녀는 왕소군일 수도, 양귀비일 수도, 서시일 수도 있다. 전설 속 미인들 그림은 실제 초상화가 아니라 ‘미인화’인 셈이다.

미술사가인 이연식의 ‘이것은 아름답고 저것은 추한 이유는 무엇인가’에 나오는 내용이다. 왕소군의 이야기는 역사 이래로 인간은 왜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왔는가를 묻는다. 나아가 아름다움과 추함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지를 탐색한다.

저자는 그동안 미술사를 종횡무진하며 예술의 정형성과 편견을 무너뜨리는 작업을 해왔다. 이번 책 ‘이것은 아름답고 저것은 추한 이유는 무엇인가’는 그런 연장선의 결과물로 일상에 드리워진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데 초점을 뒀다.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는 말 그대로 아름다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담고 있다. 가장 설득력 있고 시사적인 부분은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있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아름다움 등 여러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부분)
아름다움은 몸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르네상스 이래 서양미술에서 여성의 몸은 중요한 주제였다. ‘바다 거품에서 태어난 아프로디테’, ‘파리스의 심판을 받는 세 여신’ 작품이 그렇다. 이와 달리 마네의 작품은 투박하다. 마네 외에도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품은 한때 외설적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저자는 “본다는 건 권리이고 그 권리를 확장하거나 제어하려는 싸움은 집요하게 이어져 왔다”고 설명한다.

2부 ‘아름다움의 결을 헤아리기’는 미를 구체적인 항목으로 살펴보면서 보편적 문제와 연계해 접근한다.

프랑스 비평가 로제 드 필은 아름다움에 대해 점수를 매겼다. 그는 ‘회화의 원칙’이라는 책에서 ‘구성’, ‘색채’, ‘선’, ‘표현’ 항목으로 나눠 화가에게 점수를 줬는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49점이었다. 물론 만점을 받은 화가는 없었다.

오늘날 예술학교 입시 평가도 드 필의 방식과 유사하다. 그러나 결국 평가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것이 권력을 획득하게 됐을 때 드러난다. 저자는 백설공주의 예를 든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지?” 이에 거울은 “백설 공주가 가장 예쁩니다”라고 말하며 그로 인해 백설 공주의 운명은 파고를 맞는다.

3부 ‘아름다움이 짙어지면 예술이 된다’는 미학의 실천의 요소인 예술과 작품, 창작의 문제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창작은 불확실함과의 싸움이라고 규정한다. 여건이 좋지 않을 때 지속적인 창작의 여부가 결과를 가른다고 강조한다. 즉 “창작에 필요한 건 놀이가 그렇듯이 결과보다 과정을 사랑하는 성향”이라는 것이다. 결국 창작은 향유가 완성하는데, 창작의 바탕은 안목이고 취향으로 귀결된다. <날·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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