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인간의 초상…시립극단 ‘보이체크-1942’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서 20~22일 제25회 정기공연
2025년 11월 10일(월) 15:55
‘보이체크-1942’ 이미지컷.<광주시립극단 제공>
“우리 같은 가난한자들은 도덕을 가질 만한 형편이 못 됩니다. 도덕 좋지요, 그러나 전 가난한 놈인걸요.”

요절한 천재 작가 게오르크 뷔히너의 미완성 유작 ‘보이체크’가 일제강점기 말기의 광주로 옮겨온다.

광주시립극단이 제25회 정기공연 ‘보이체크-1942’를 오는 20~22일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선보인다. 서해 각색, 장봉태 연출.

뷔히너의 ‘보이체크’는 실존 인물인 하층민 병사 요한 크리스티안 보이체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인간이 사회적 억압 속에서 어떻게 무너져가는지를 그린 독일 표현주의의 대표작이다. 귀족 중심의 고전극과 달리 가난한 병사와 민중의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다루며 현대 연극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공연은 원작의 문제의식을 1942년 일제강점기 광주로 옮겨와 재해석했다.

주인공 이보채(보이체크)는 일본 군의관의 인체 실험에 동원된 하급 군속으로, 매일 극심한 피로와 환각 속에서 살아간다. 한때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여하지 못한 죄책감과 현재 순사보로 일하며 받는 멸시가 그를 점점 옥죈다.

그의 유일한 위안이던 아내 오마리마저 일본 헌병 장교와 엇나간 관계를 맺으며 이보채의 내면은 무너져 내린다. 끝내 광주천 둔치에서 아내를 찌르는 비극으로 치닫는 순간, 관객은 식민 권력 아래에서 한 인간의 정신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이번 작품의 또다른 묘미는 음악과의 앙상블이다. 전통 국악과 서양 음악을 결합한 사운드가 장면마다 교차하며 극의 긴장과 리듬을 만들어낸다.

주인공 이보채(보이체크) 역은 배우 홍현선이 맡아 절망과 광기를 오가는 섬세한 내면 연기를 펼치고, 김수옥이 아내 오마리로 출연해 인간적인 갈등과 비극의 정점을 그린다. 이명덕, 정일행, 최진영, 양선영 등 지역을 대표하는 배우들도 합류해 각자의 개성과 에너지를 더한다.

연출을 맡은 장봉태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되 관객이 몰입해 즐길 수 있는 드라마로 만들고 싶었다”며 “웃음과 비극이 교차하는 서사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감정의 온도를 함께 느끼길 바란다”고 전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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