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고기’ - 김지을 사회부장
2025년 11월 04일(화) 00:20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됐다. 이에따라 이 나라 국적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 ….정부는 안락사의 방법을 몇 종류 준비하여, 대상자가 그 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할 예정이다. 정부 추산에 따르면 이 법안이 시행되면 고령화에 부수되는 국가 재정의 파탄이 일시에 해소된다고 한다. 1차 시행연도의 사망 예정자는 이미 70세가 넘은 자를 포함해 약 2200만 명, 2차 시행 연도부터는 해마다 150만명 전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70세 사망법안, 가결’이라는 소설(가키야 미우·2025년 개정판)의 첫 장은 섬뜩한 법안 통과를 소개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소설을 읽어내려가면서 법안을 맞닥뜨린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과 태도를 통해 초고령화 시대의 민낯을 접할 수 있다.

소설 배경은 일본이지만 남의 얘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저자도 책 속에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이탈리아와 한국 등은 사태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는 내용을 적어놓을 정도다.

최근 입소문을 타면서 첫 상영 당시보다 개봉관이 늘어나는 역주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사람과 고기’도 초고령화 시대에 접할 수 있는 빈곤 노인들의 생활에 주목한다. 집이 있어도 세금 낼 돈이 없어 폐지를 줍는 노인, 고양이와 살아가는 독거노인의 고독, 할머니 손에 큰 손자와의 간극 등을 통해 고령화 사회가 마주한 문제를 던진다.

영화일 뿐일까. 전남의 고령인구 비중(전남 27.4%)은 전국에서 가장 높고 65세 이상 노인 기초생활수급권자도 5만 4760명이나 된다. 70세 이상의 55.4%가 월 평균 소득이 100만원이 못되고 3500명이 넘는 노인들(광주 1761명·전남 1752명)이 한 달 내내 폐지를 주워 74만2000원을 손에 쥔다. 우리나라 노인빈곤율(2023년 38.2%)은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영화 속 주인공은 내뱉는다. ‘늙었으니,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있다 그냥 죽어라고?’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그런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도록 해야할 때다.

/김지을 사회부장 dok2000@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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