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테타도, 쿠데타도 이제 그만 - 김환영 지식칼럼니스트
2025년 11월 04일(화) 00:20
유튜브나 TV를 보면 많은 공공지식인이 ‘쿠데타’를 ‘구테타’로 잘못 발음한다. 교정·교열 상의 오류에 민감한 사람들이 “구테타는 틀렸다”고 수없이 지적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구테타’를 접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사람도 많다. 예전에는 순우리말 오류는 가볍게 여기면서, 한자어·영어의 오류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었다. ‘문화적 사대주의’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이제는 ‘문화강국 코리아’의 자신감에서 ‘구테타’ 같은 오류를 허용하는 여유도 생긴 듯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도 자주 보이는 잘못된 표기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바로잡았지만, 초창기 표기가 여전히 보인다. Andrew를 ‘앤드루’가 아니라 ‘앤드류’, Matthew를 ‘매슈’가 아니라 ‘매튜’, basic을 ‘베이식’이 아니라 ‘베이직’으로 잘못 표기하는 사례도 흔하다.

영어에는 ‘교정·교열 상의 오류를 참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이 다양하다. (grammar Nazi, grammar pedant, language purist, grammar stickler, proofreading perfectionist 등). 그러나 ‘교정·교열 나치’는 정작 잘못을 발견해도 ‘지적질’이라는 비난을 받을까 봐 말을 아낀다. 괜히 잘난 척한다는 낙인이 두려울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식 표기였던 ‘고호·바하’가 ‘고흐·바흐’로 정정된 지 오래지만, 일상 언어에서는 여전히 ‘고호·바하’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대화 중에 “고호가 아니라 고흐인데요”라고 정정하려면 꽤 큰 용기가 필요하다. 괜한 ‘왕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영어에는 ‘교정·교열 상의 오류에 둔감한 사람’을 일컫는 표현도 많다. (grammar slob, careless writer, sloppy proofreader, not a stickler for grammar, grammar agnostic 등).

그렇다면 인구 중 ‘교정·교열 나치’와 ‘교정·교열 불가지론자’의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설령 ‘교정·교열 나치’가 1% 남짓한 소수라 해도, 이들이 정치권력이나 문화권력을 쥐고 있다면 영향력은 작지 않을 것이다.

‘교정·교열 나치’는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처럼, ‘구테타’를 연발하는 공공지식인의 지식수준과 논리적 타당성을 의심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위험한 생각이다. 때로는 “하나를 보면 하나만 안다”고 인정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유교·불교·그리스도교 등 세계 종교의 경전은 모두 ‘교정·교열 완벽주의자’들의 손을 거쳐 정착했다. 정경화(正經化) 과정은 곧 편집과 교정의 역사였다. 그래서 ‘교정·교열 마인드’를 갖춰야 성경 같은 경전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유가의 정명론(正名論)은 이름(名)과 실제(實)가 올바른 관계에 놓일 때 세상의 혼란이 바로잡힌다고 본다. 정명은 곧 정치(正治)의 출발점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정명의 대상인 용어가 많다. 건국·광복·독립, 민주주의·자유민주주의, 내란, 사태 등. 정파에 따라 용어와 정의가 다른 혼란 속에서는 정치(正治)는 커녕 정치(政治)도 어렵다. 다행히 일부 용어는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교과서에도 반영됐다. 오래전부터 ‘동학난’이 아니라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혁명’, ‘갑오농민전쟁’으로, ‘광주사태’가 아니라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바뀌었다.

국제관계의 경우, 정명의 출발점은 외래어·외국어의 정음(正音)이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훈민정음 창제의 목적은 백성의 의사소통과 한자의 올바른 발음이었다. 조선-중국 관계에서 올바른 발음과 표기가 ‘정명’의 시작이었듯, 오늘날에도 외래어의 정확한 표기가 필요하다.

언어는 끊임없이 변한다. ‘무생(務生)’이 ‘머슴’으로, ‘부옥(釜屋)’이 ‘부엌’으로 바뀌었다. ‘짜장면’이 복수 표준어가 된 것처럼, 다수가 ‘구테타’라고 하면 언젠가 복수 표준어로 등재될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은 낮은 것 같다. 그래서 ‘구테타’는 다른 발음이 아니라 틀린 발음이다. “쿠데타는 이제 그만”을 위해서는 먼저 “구테타는 이제 그만”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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