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체후일향만강 - 김대성 전남 서·중부 전북 취재부장
2025년 10월 15일(수) 00:00
종이(손) 편지가 이메일로 대체된 지 오래인지라 부모나 친지에게 부치는 편지에 일상적으로 쓰던 누구누구 전상서에 자연스럽게 뒤따르던 ‘기체후일향만강하옵시고’라는 표현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50·60대는 어렴풋이, 70대 이상에게는 아련한 추억에 젖게 하는 편지글의 관용구였다. 기체후일향만강은 한자로 ‘氣體候一向萬康’이다. 기력(氣)과 체력(體)의 컨디션(候)이 지금까지 줄곧(一向) 모두 평안(萬康)하신지를 여쭙는 내용이다. 대개 아버지나 어머니께 또는 할아버지, 할머니 등 어르신들께 올리는 편지의 서두를 장식하곤 했다.

이처럼 옛 편지의 핵심은 상대방이 평안하신지를 묻는 이른바 ‘문안’(問安)이 기본이었다. 문안의 어원은 유가(儒家)의 경전인 예기(禮記)에서 찾을 수 있다. 그 안에는 ‘문안시선(問安視膳)’이라는 개념이 나오는데 풀어보면 ‘부모님이 평안(安)한지를 여쭙고(問), 드시는 음식(膳)을 살핀다(視)’라는 의미로 효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또 ‘혼정신성(昏定晨省)’이 있는데 저녁 무렵(昏) 부모님의 잠자리를 챙기고(定), 이른 새벽(晨)에는 잘 주무셨는지를 살핀다(省)는 의미로 문안과 뜻을 같이한다.

그러나 이 같은 표현을 쓰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한국전쟁 이후 가족과 생이별한 이산가족이다. 이산가족은 남북한을 합쳐 1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2023년 기준 남한에 약 30만명 이상이 남아 있으며 대부분 80세 이상 고령자이다. 상봉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안부 확인도 여의치 않아 시간이 갈수록 재회가 어려워지고 있다.

명절 때면 고향과 가족이 그리워서인지 늘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과 서신 교환이 화젯거리로 오른다. 이재명 대통령도 추석 연휴에 실향민과 그 가족을 만나 이산가족들이 생사 확인이라도 하고 하다못해 편지라도 주고받을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정치의 책임이라며 북측에도 이런 조치를 고려해 달라고 요청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체후일향만강하옵시고 식의 문안편지가 자유롭게 오가고, 직접 만나 안부를 확인하는 평안의 시대가 오길 고대한다.

/김대성 전남 서·중부 전북 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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