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G-컬처의 시대를 열자 - 박진현 문화·예향국장, 선임기자
2025년 07월 16일(수) 00:20
이탈리아 라 스칼라 필하모닉,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로얄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평소 클래식를 즐기는 이라면 한번쯤 ‘직관’ 하고픈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단이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국내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레전드들이 올 가을 앞다투어 부산을 찾는다. 지난달 20일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장으로 개관한 부산콘서트홀의 ‘월드 시리즈’에 서기 위해서다. 명품 악단들이 비슷한 시기에 한국을 찾거나, 그것도 지방의 신생 공연장에서 릴레이 연주를 펼치는 건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

그래서인지 정명훈 예술감독의 지휘아래 피아니스트 조성진, 선우예권, 바이올리니스트 이구데스만 등 세계 정상급 아티스트들이 참가한 부산콘서트홀 개관 페스티벌은 일주일동안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부산관광공사가 표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던 개관 공연과 미술관 투어, 최고급 호텔 숙박, 미쉐린 레스토랑을 묶은 2박3일 패키지 상품은 1인당 240만원이라는 고가에도 조기 완판됐다. 비수도권에서는 처음으로 2000석 규모의 빈야드(포도밭) 객석을 갖춘 명품 공연장과 꿈의 라인업이 이뤄낸 쾌거다.



클래식 패키지 대박 낸 부산

게다가 오는 9월에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산현대미술관의 초대형 전시 ‘힐마 아프 클린트: 적절한 소환’이 예정돼 있어 부산은 벌써부터 바다와 음악, 미술이 어우러진 예술관광의 성지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열리는 세계 최초의 여성 추상화가 힐마 아트 클린트전은 지난 2018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역사상 최다 관람객인 60만명이 방문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근래 세계적인 거장들을 초청해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거둔 미술관들이 많다. 엊그제 4개월의 대장정을 마치고 폐막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극사실주의 화가 론 뮤익의 회고전(4월11일~7월13일)이 그중의 하나다. 미술관 개관 이래 단일 전시로는 최다 관람객인 50만명을 유치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인상적인 건 외국인 관람객이 눈에 많이 띄었다는 점이다. 취재차 기자가 방문한 날, 전시장은 그야 말로 인산인해였다. 덩달아 론 뮤익과 함께 국립현대미술관이 야심차게 기획한 상설전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도 관람객들의 열기로 뜨거웠다. 일부 외국인들은 “론 뮤익 보러 왔다가 한국미술의 매력에 푹 빠졌다”며 극찬했다. 김환기, 박수근, 백남준 등 스타 작가들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는 K-팝, K-영화, K-뮤지컬을 잇는 K-미술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줬다.

사실,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기획전과 달리 미술관의 컬렉션을 보여주는 상설전은 미술관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가 있다. 가령, 파리에 가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만나기 위해 루브르를 찾는 이치와 같다. 여기에 관람객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아트상품과 미술관 주변의 상권까지 감안하면 ‘웰 메이드 전시’가 창출하는 경제적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고 보면 비엔날레의 도시임을 자부하는 광주의 ‘미술신’(scene)은 황량하기 짝이 없다. 여름 휴가시즌과 2025 광주디자인비엔날레를 앞둔 성수기에도 불구하고 들뜬 분위기를 느낄 수 없다. 15만명의 관람객을 모은 ‘겸재 정선’전을 끝내자 마자 오는 9월 세계적인 조각가 루이스 브루주아전을 내놓는 호암미술관과 국제아트페어 프리즈 서울(9월3~6일) 개막에 맞춰 ‘물방울 작가’ 김창열 전시를 준비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행보와는 대조적이다.



허울뿐인 ‘문화광주’ 내실 챙겨야

물론 블록버스터전이라고 다 좋은 전시는 아닐 터. 하지만 전국에서 열리는 수많은 전시들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기 위해선 평범한 볼거리로는 시선을 끌지 못한다. 광주시립미술관이 최근 1~2년 사이에 내놓은 전시들이 이를 방증한다. 시대의 트렌드와 거리가 있는 동학, 민중미술 등 지나치게 무거운 주제들이 많아 지난해 광주비엔날레 창설 30주년 등의 빅 이벤트들과 시너지를 내지 못한 것이다. 지난 2008년 ‘루벤스, 바로크 걸작전’이 광주에서 열린 마지막 대형전시라는 사실은 시립미술관의 역할과 미술도시의 위상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한다. 미술 뿐만이 아니다. 클래식 전용홀은 고사하고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을 배출한 도시에 걸맞은 문학 인프라 역시 열악하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은 오는 2030년까지 K-컬처 시장을 300조원 규모로 키우는 비전을 제시하는 등 문화강국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아무리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이듯 다양한 문화 콘텐츠들을 산업과 연계시키는 실용주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비엔날레 도시, 노벨상의 도시 등 그럴싸한 타이틀이 많은 광주로서는 ‘문화로 먹고 사는’ 미래를 고민해봐야 한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늦기전에 ‘G(Gwangju)-컬처’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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