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재발견-담빛예술창고
양곡창고에서 복합문화공간 변신
전시관과 문예카페, 담양 관광 핫플 인기
2025년 07월 14일(월) 13:15
담빛예술창고는 문예카페를 경계로 두 개의 전시관이 이어져 있는 독특한 구조로 앞 마당에는 정운학 작가의 ‘빛의 열매’ 등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최현배 기자>
담양 관방제림에 가면 멀리서도 존재감을 뽐내는 건축물 2동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 2015년 문을 연 담양담빛창고(이하 담빛창고)이다. 파란 지붕과 붉은 벽돌 건물에 ‘南松倉庫’(남송창고)라는 한자로 새겨진 글씨에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1960년대 무렵 지어진 이곳은 남송창고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정부양곡을 보관하던 창고였다. 하지만 지난 2004년 국가수매가 변하면서 활용도가 떨어져 10년간 방치돼오다 예술의 옷을 입고 화려하게 변신했다.

‘담양의 빛’이라는 뜻의 담빛은 창고를 문화예술공간으로 꾸미는 과정에서 공모를 통해 선정됐다. 그래서인지 건물 앞에 서면 자칫 추억속으로 사라질 뻔 했던 숨겨놓은 보석을 발견한 것 처럼 설렌다.

◇두 개의 전시관과 카페

담빛창고는 전시, 카페 등을 아우른 복합전시관으로 개관한 이후 10년 만에 담양 관광의 1번지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국내 최초의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카페와 바로 옆 건물인 제2전시관이 증축(2020년)되면서 관방제림과 더불어 담양의 아이콘이 됐다.

담빛창고는 옛 곡물창고의 높은 층고를 그대로 살린 전시관 2관과 카페가 ‘ㄱ’자 형으로 배치된 독특한 구조다. 잔디마당을 기준으로 왼쪽의 제1전시관과 오른쪽의 제2전시관이 카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해 있다. 60여 년 전의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올드한’ 외관과 달리 전시관과 카페 내부는 그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은 모던한 감각으로 꾸며져 있다.

문예카페에서는 담빛예술창고 대나무 파이프오르간 상임연주자인 안애경씨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최현배 기자>
주말 오후, 담빛예술창고의 문예카페에 들어서자 20여 개의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었다. 자리를 잡지 못한 일부 방문객들은 카페의 한켠에 서서 빈자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테이블을 떠나는 사람은커녕 시간이 지날 수록 방문객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20분쯤 지났을까? 카페의 맨 앞쪽에 설치된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에서 낮고 묵직한 음악소리가 흘러 나왔다. 692개의 대나무 파이프와 5개의 금속파이프가 빚어낸 웅장한 연주는 따뜻하고 아늑했다.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은 문예카페의 상징이자 담양의 명물이다. 지난 2015년 남송창고 리모델링이 진행될 당시 열렸던 담양세계대나무박람회를 맞아 미래의 문화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심볼을 만들자는 의견을 수렴해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을 탄생시켰다. 제작의뢰를 맡은 필리핀의 전문업체인 카릴론 테크놀로지사는 문예카페의 한쪽 벽을 꽉 채우는 높이 4미터, 폭 2.6미터의 거대한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했다.

일반 파이프오르간에 비해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은 부드러운 소리가 특징이다. 천장이 높은 양곡창고 건물이다 보니 소리의 울림이 공간 내부를 휘감아 깊은 여운을 준다. 일부 방문객은 커피를 마시며 대나무 파이프오르간 연주를 듣다보면 마치 성당이나 교회 예배당에 들어온 듯한 성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말한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대나무 파이프오르간 연주는 담빛창고의 메인 콘텐츠가 됐다. 주말이면 연주를 감상하기 위해 담양과 광주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담빛창고의 명물, 대나무 파이프오르간

담빛예술창고의 문예카페는 높은 층고와 통유리창으로 들어오는 관방제림의 수려한 풍경을 즐길 수 있는 핫플레이스다. <최현배 기자>
시선을 돌려 카페의 뒤편을 바라보면 한폭의 풍경화가 펼쳐진다. 벽면의 일부를 커다란 통유리 공간으로 바꿔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관방제림의 노거수와 조각공원들을 실내에 앉아 감상할 수 있어서다. 카페 내부의 일부 공간은 2층으로 꾸며져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2층 바에 앉으면 카페 내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말이나 휴일에는 이 곳에 앉아 대나무 파이프오르간의 연주 장면을 내려다볼 수 있어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카페 뒤편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나가면 담빛창고 뒤편에 꾸며진 아기자기한 조형물들도 만날 수 있다.

두 개의 전시관에서는 6·25전쟁 75주년을 맞아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전쟁 광시곡’이 열렸다. <최현배 기자>
무엇보다 문화예술창고로서의 ‘담빛’의 정체성은 2개의 전시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운영주체인 담양군문화재단의 기획전 3개와 개인·단체에게 지원하는 대관전 5~6개 등 1년에 10개 가까운 전시회가 끊임없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특히 100평 규모의 전시장은 여느 화이트큐브에서 접하기 힘든 높은 층고 덕분에 스케일이 큰 대작이나 실험적인 작품들을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지난 2월에 열린 기획전 ‘정원사의 진술’과 지난 2023년 개최된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연계 기념전 ‘변이된 질서’는 대표적인 예다. 생태의 도시 담양의 컬러에 맞춰 생명의 소중함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2월 25일 막을 내린 ‘정원사의 진술’은 영국 시인 마크 헤이머의 ‘두더지 잡기’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된 전시다. 아름답게 조성된 정원과 이를 행하는 정원사, 그 정원을 헤치는 두더지간의 독특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김유정, 손몽주, 양정욱 등 세 작가의 작품이 출품됐다. 이들 작품을 관통하는 코드는 ‘생명함수’. 갈수록 규격화, 부품화로 정의되는 현대 사회에서 날것의 생명성, 날것의 유연함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 화제를 모았다.

지난 2023년 9월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를 기념해 기획한 ‘변이된 질서’전은 담빛창고가 시리즈로 선보인 ‘생태, 인류, 담양’전, ‘비움은 채움의 시작’전에 이은 세 번째 전시로, 수묵의 생장화수장(生長化收臟)에 기반해 생겨나고 사라지는 인과관계에 대한 고찰을 담았다. 국제미술이벤트 답게 서정빈, 여상희, 우종택, 윤일권, 이동환, 임현락 등 국내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가 6인을 초청, 정적인 전시공간에 현대미술의 역동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회화, 설치 작품들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정원사의 진술’ 등 다양한 기획전 눈길

특히 지난해에는 해동문화예술촌과 공동으로 ‘간극 본능, 미완의 내러티브’전(2024년 3~6월), 어린이 체험형예술전시 ‘황금탐사선’(2024년 3~9월), ‘입력-공간-횡당’전(2024년 4~5월), 고가구 특별기획전 ‘변죽을 울리다’(2024년 5~6월), ‘흔적이 형태를 이룰대’(2024년 7~9월) 등을 개최해 지역민은 물론 방문객들에게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존재감을 알렸다.

올해는 평범한 일상, 보통의 풍경 속에서 보이지 않지만 공존하고 있는 소외된 소수의 목소리에 주목한 ‘가려진 풍경’(3월 8일~5월 13일), 6·25전쟁 75주년을 기념해 인간의 본능과 욕망이 빚어낸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전쟁 광시곡’(6월 13일~6월29일)을 기획해 전시 스펙트럼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담빛예술창고의 마스코트인 판다 조형물.
무엇보다 담빛창고의 전시장은 담양 지역의 미술가에게만 개방되지 않는다. 담양과 광주뿐 아니라 전국 각지의 작가들을 대상으로 주제에 맞는 역량있는 아티스트를 초청해 전시의 퀄리티를 높이고 있다. 전시내용 역시 생태, 환경, 생명 등의 전통적인 주제는 물론 주류에서 소외된 ‘타자’, 미식가들의 만찬, 팝아트 등 진취적이고 실험적인 영역까지 아우른다. 또한 근래에는 회화보다는 사진, 영상, 미디어, 설치 등 실험적인 스타일의 작품을 선보이는 기획전과 대관전을 개최한다.

고무적인 건, 담빛창고가 담양관광의 최애공간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관방제림과 국수의 거리 등 명소가 많지만 테라스형 휴식공간을 추가한 전시관 2관과 문예카페가 리모델링 하면서 MZ세대들 사이에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3월 전라남도가 지역마이스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유니크베뉴(이색 회의시설)로 지정되면서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늘어나고 있다.

◇관객 사로잡은 ‘시네마 콘서트’

지난달 관방제림과 담빛창고 사이에 자리한 담빛음악당에서 열린 ‘2025 담빛 시네마 콘서트’(6월 13~14일)는 담빛창고의 진가를 확인시킨 자리였다. 담양군문화재단이 기획한 이번 콘서트는 영화와 음악을 접목한 콘셉트로, 첫날에는 고전명작인 ‘오즈의 마법사’ 상영에 이어 재즈보컬리스트 남예지가 이끄는 고전명작 ‘Old songs, 틈’의 연주로 진행됐다. 둘째날에는 영화 ‘하와이연가’의 이진영 감독과의 대화, 코리안아츠 금관앙상블 &코리아챔버앙상블, 그리고 담양의 청소년 연주단 ‘담빛 스트링앙상블’ 협연으로 꾸며져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올해는 평범한 일상속에서 보이지 않지만 공존하고 있는 소수의 목소리에 주목한 ‘가려진 풍경’, ‘전쟁 광시곡’ 등 전시 스펙트럼의 외연을 넓히고 있다. <최현배 기자>
담빛창고의 매력은 건축물에만 있지는 않다. 문예카페 뒷편으로 나가면 각양각색의 조형물이 설치된 조각정원과 관방제림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담빛창고 앞 잔디마당으로 나오면 볼거리가 한 두 개가 아니다. 앙증맞은 포즈로 방문객들의 카메라셔터를 누르게 하는 귀여운 모습의 판다에서 부터 미디어아티스트 정운학 작가의 ‘빛의 열매’(Fruit of Light, 6x3m, 2015년 작), ‘천년 담양’의 심벌마크가 새겨진 우체통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소박한 외양의 우체통은 방문객들에게 잠시 시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마치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느림의 미학을 일깨우는 듯이. 담빛창고가 시간여행의 플랫폼으로 불리는 이유다.

/글=박진현 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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