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우물 안 개구리의 행복 -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5년 07월 07일(월) 00:00
팍팍하다. 여기저기 전쟁 소식이고, 또 폐업 소식뿐이다. 쭉쭉 날갯죽지를 펴고 싶지만 녹록하지 않다. 당당하게 사는 사람들이 부럽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시대도 지났는가 보다. 하루가 바쁘게 해외 사업장을 오가던 이들의 한숨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반면에 골목에서 전집이나 국밥집, 수선집 하는 이들의 표정은 한결 여유롭다. 당당하다. 경쟁자도 없고 정년까지 없어서 부럽기까지 하다.

내 친구는 트럭 수리 기사다. 서비스센터에서 고치지 못한 차들이 그에게 온다. 초창기에는 겨우겨우 버텼는데 이젠 일도 끊기지 않고 수익까지 짭짤하다. 또 한 친구는 소목장이다. 문짝 전문가인데 요즘 누가 배우려 하지 않아서인지 되려 호황이다.

빨리빨리, 한 시대의 대명사였다. 혹여 뒤처질세라 앞만 보고 뛰었다. 하지만 흥망성쇠도 빨랐다. 이런 변화무쌍한 세상에 느긋하게 한 자리만 지키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떡집, 곰탕집, 국숫집 등 골목 장인들이다. 간판과 건물을 빠르게 바꾼 사람들과 달리 낡은 간판으로 텃새가 되기까지 그들만의 비법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이들은 대부분 고집스럽게 한 우물만 판다. 꼭 우물 안 개구리 같다. 동그란 하늘 외엔 아무것도 없는 줄 알고 오직 하나만 고집하고 살아왔으니 틀린 말도 아니다. 이들이라고 해서 우물 밖을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넓고 넓은 세상을 보고도 한눈팔지 않고, 이 작은 우물, 한 곳만 고집한 이들이다.

거기에는 내 적성에 ‘딱’이라는 확신, 이 길만이 내 길이라는 신념이 있다. 모두 좀생원처럼 살지 말고 좀 크게 뜨고 살라고 이죽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묵묵히 인욕을 택했다. 외길을 갈 때는 신념 없이 불가능하다. 개구리는 물 없으면 살 수 없다. 바둑으로 치면 외통수, 그 길을, 그 우물을 선택한 개구리가 아닐까.

신념이 중하다고 신념만으로 견딜 수는 없다. 무슨 일에나 기본기가 필수이다. 바로 성실과 노력이다. 어쩌면 수없는 사람이 이 직종을 훑고 지나갔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남았다. 아니 이들만 생존했다. 이는 지나간 수많은 그들보다 더 성실했고, 또 무언가 더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남이 시키는 대로 남을 따라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기까지는 땀만으로 가능한 일은 아니다. 자기만의 맛과 빛깔을 내는 일은 창의적인 생각과 재능 없이는 아무도 할 수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지만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 바로 이들이 하는 일 같다.

사막의 개미핥기는 웅덩이를 파놓고 먹이를 집요하게 기다리듯 때를 기다린다. 이처럼 겨우 자신 몸 하나 들어갈 아주 작은 공간에서 적은 자본으로 일어서기까지의 참을성, 바로 그 힘 덕분에 개미핥기는 명주 나방으로 비상한다.

‘따라 올 테면 따라와 봐’ 자부심 또한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어떤 광고처럼 흉내 낼 수 없는 자기 일에 대한 긍지 역시 필요한 일이다.

기후가 너무 급변했다. 가뭄과 장마가 변화무쌍한 요즘 세상에 우물은 개구리에게 가장 안성맞춤 공간이다. 외풍도 막아주고, 천적도 들어오지 못한다. 목마를 일 없는 시원한 천국, 화려한 외향보다 소박한 내면을 추구하는 개구리들, 이 시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엘리시움이 아닐까.

가장 뛰어난 부분은 안목이다. 낡은 것들은 새것에 밀려난다. 그게 진리다. 하지만 고물 속에서 골동품을 헤아려보는, 넓은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세상을, 좁은 골목에서 읽는 안목은 절대 쉽지 않다. 낡은 것에서 새로운 시대 가치를 찾아내는 시각이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진짜 안목, 가장 뒤에서 가장 앞을 바라보는 혜안은 아니겠는가.

거시적 틀을 짜는 대목은 필요하다. 하지만 구석구석을 채우는 소목의 역할도 중요하다. 우물 안 개구리는 어지러운 변화에 쉽사리 휘말리지 않고 지킬 것을 고수하는 바위 같은, 좀 둔감한 듯하면서도 예리한 인류 문화의 옹달샘 역할을 해온 존재들이다. 작은 우물도 너무 넓은 그리고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우물, 그 안의 개구리들, 혹여 이들이 이 시대, 가장 행복한 맛을 아는 사람들이 아닐까.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img.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img.kwangju.co.kr/article.php?aid=1751814000786261323
프린트 시간 : 2025년 07월 07일 12:4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