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집의 변신-책방 ‘동명 1974’] 추억이 새록새록…오래된 집에 ‘숨’을 불어넣다
1974년 지은 양옥집 책방으로
4남매 자라고 하숙 내주던 공간 개조
큰딸 승경씨, 지난해부터 본격 운영
괘종시계 등 소품 보는 즐거움
작가·영화감독 초청 강연·공간 대여
하루 머무는 ‘북스테이’도 인기
2025년 04월 08일(화) 19:40
엄마가 살던 오래된 양옥집을 서점으로 만든 ‘동명 1974’는 북스테이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엄마 집’의 변신. 결혼 후 집을 떠나온 이들이 다시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 갤러리를 꾸미고, 책방을 열었다. ‘집’이 갖고 있는 본래의 따스함이 스며 있는 공간들이다. 각자의 추억도 함께 소환되는 이런 장소를 찾는 건, 어쩌면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에 잠시 숨을 고르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갤러리 ‘예술공간 집’, 책방 ‘동명 1974’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40년 넘는 시간 동안 아빠가 태엽을 감던 괘종시계, 사남매가 30년 전 쓰던 스탠드, 엄마의 사랑이 담긴 작은 바이올린,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책들.

‘동명 1974’는 주인장 임승경씨가 부모님이 살던 양옥집에 문을 연 책방이다. 1974년 지은 양옥집 철문을 밀고 들어서면 마당과 동백꽃이 피어 있는 작은 화단이 방문객을 맞는다. 현관문을 열고 마루를 지나면 만나는 방이 바로 서점.추억이 담긴 소품들이 눈길을 끌고 책장과 탁자엔 다양한 책들이 애호가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여느 집 거실에 있을 듯한 쇼파에 앉아 책을 읽다 보면 편안함이 느껴진다. 마당을 바라보게 놓인 작은 책상 앞에 앉는다. 한강의 작품 등 작가들의 책이 꽂혀 있고, 필사를 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돼 있다. 누군가는 예전에 살았던 집을 떠올릴 수도, 학창 시절 추억이 담긴 친구집을 생각할 수도 있겠다.

1974년 지어진 주택을 활용한 ‘동명 1974’
이 집은 공간 구성이 조금 복잡하다. 공무원이었던 아빠의 월급으로는 사남매를 키우기 어려워 엄마는 하숙을 쳤고, 세를 내주기도 했다. 부엌이었던 공간을 방으로 개조하고, 다락도 만들어 작은 방을 만들었다. 현재 서점으로 쓰는 공간은 예전에 세를 내주었던 곳이다. 바로 옆의 작은 방은 사람들이 편히 쉬며 책을 읽는 공간으로 꾸몄다.

사남매는 결혼을 하며 모두 떠났고, 지난 2019년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엄마마저 요양병원에 들어가면서 집은 2년간 비어 있었다. 큰 딸 승경씨는 2022년 집에 드나들며 몇달 동안 짐을 정리하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원래 책 읽는 것을 좋아했어요. 아이들 독서 지도도 하고 있고요. 광산구에서 5년간 카페를 한 경험이 있어 북카페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한데 용도변경 등 절차가 복잡해 포기하게 됐고, 좋아하는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책방을 열어보자 싶었습니다.”

가정집의 느낌을 고스란히 살린 서점
2023년 4월 책방을 오픈했지만 1년 정도는 비정기적으로 문을 여는 등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독서모임 ‘책쓰’를 시작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지금까지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등 다양한 책을 읽으며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독서모임과 함께 주인장에게 힘을 주는 건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이다.

“서점 투어를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구석에 있는, 숨겨진 서점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 서점에 전국에서 젊은 친구들이 방문하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차 한잔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고요. 이제는 책방을 정말 잘 운영해보고 싶어요. 사업성을 따질 게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재미있어야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데 지금 책방 일이 저에게는 참 재미있습니다.”

방문객들이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책방은 소설가 김영란, 영화 ‘자전차왕 엄복동’의 김유성 감독 등을 초대해 강연을 열고 공간 대여도 진행하고 있다. 서점에서 하루를 머무는 북스테이도 인기가 많다. 참여자들은 가정집에 온 듯한 편안함을 느끼고 서점 운영이 로망이었다며 즐거워 한다. 아직 ‘동명 1974’가 갖추고 있는 책의 종류는 그리 많지 않다. 독서 모임 회원 등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추천하는 책들을 가져다 놓는데 앞으로는 컬렉션도 늘릴 예정이다. 무엇보다 양옥집 거실과 다른 방으로 책방을 확장하는 일을 계획중이다. 승경씨는 세련된 공간이 넘쳐나는 동명동에서 누추함을 걱정했지만, ‘동명 1974’는 그 소박함이 큰 자산이다. 대문이 닫혀져 있다면 친구집에 방문하듯 초인종을 누르면 된다. 친절한 주인이 문을 열어주며 따뜻한 커피 한잔을 권할 터다. 커피와 구입한 책을 받아들고 마당 작은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는다면 더 없이 행복하다.

금요일~월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다른 요일은 무인으로 운영.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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