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후죽순 민생지원금의 명암…해법은- 장필수 논설실장
2025년 02월 12일(수) 00:00
애민(愛民) 사상을 내세운 세종대왕은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니 백성이 편안해야 나라가 편안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라는 백성에 의지하고 백성은 먹을 것에 의지한다”며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겼다.

정치인의 큰 덕목이자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는 예나 지금이나 주민들의 생계 안정이다. 지금처럼 최악의 불황에서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 조기 대선 국면에서 가장 유력한 정치인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브랜드 정책인 ‘먹사니즘’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 대표는 그제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집권 비전으로 ‘잘사니즘’을 새롭게 내세웠지만 이면에는 결국 먹사니즘이 있었다. 그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먹사니즘’을 포함해 모두가 함께 잘사는 ‘잘사니즘’을 새로운 비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먹사니즘’의 경쟁적 확산

먹사니즘이 전남지역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다. 전남 22개 시군 가운데 10개 시군이 주민 1인당 1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까지 민생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1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한 영광군은 이번 설을 전후로 1차분 50만원을 지급했는데 전통시장이 활기를 띌 정도로 골목상권에 온기가 돌았다. 나머지 50만원은 추석때 지급할 예정인데 주민들은 소비 촉진을 넘어 공동체 회복에도 기여하고 있다며 반기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나주·고흥·보성·해남·완도·진도·곡성·구례·무안 등 9개 시군도 지급했거나 지급 예정이다. 전체 주민에게 지급하기 때문에 1인당 지급액과 인구수에 따라 예산이 늘어나는데 5만2000여명에게 100만원을 지급하는 영광군이 520억원으로 가장 많고 고흥군(182억원), 보성군(112억원) 순이다.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로 지급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예산 확보와 지속성 여부다. 나주시와 한빛원전에서 지역자원시설세로 300억원을 확보한 영광군은 그나마 나은데 나머지 시군은 재정자립도가 10% 안팎이라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대다수 시군이 비상금 형태인 재정안정화기금에서 재원을 충당하고 있지만 열악한 재정으로 인해 지속 가능성에 한계가 있다.

이 지점에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자치단체장의 선심성 행정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예산난 때문에 지속 가능하지 않은데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1회성으로 지급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일각에선 민주당 공천을 목표로 기본소득과 지역화폐로 대표되는 ‘이재명표 정책’을 시험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공천이 바로 당선인 지금까지의 지역 정치 풍토로 볼때 마냥 웃어넘길 일은 아닌듯 하다.

민생지원금 지급으로 다른 사업이 차질을 빚는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민생지원금을 지급하지 않는 타 자치단체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전남도와 같은 광역자치단체 입장에선 “같은 도민인데 왜 우리는 지원금을 주지 않느냐”는 항의에 뭐라 답할 것인가.



정부가 지역화폐로 지급하길

그렇다고 민생지원금을 지급하는 지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관건은 민생지원금이 지속 가능하도록 대안을 찾는데 있다. 무엇보다도 지자체들이 자체적으로 예산을 확보하는 일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신안군의 햇빛연금이 대안이 될 만하다. 신안군은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인허가를 내주는 대신 주민들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에 수익금을 연금 형태로 지급하고 있다. 도입 4년만에 주민들에게 지급된 햇빛연금은 220억원으로 청년들이 돌아오면서 2년 연속 인구가 증가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방법은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 민생을 살리는 것이다. 신안군처럼 할 만한 지자체가 드문 현실에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 재정 지출이 예산 조기 집행에 그쳐선 안된다. 추가경정 예산을 편성해 적기에 집행하는 것이 중요한데 마침 정치권에서도 추경 편성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어 다행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30조 추경 제안에 어제 국회 교섭단체 연설에 나선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민생 추경에 동의했다. 다만 지역화폐 방식의 추경에는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는데 이왕 지역경제 살리기가 목표라면 지역화폐로 지급하는 것이 맞다.

민생지원금 지급 목표는 골목 상권을 살리는 데 있다. 소멸위기에 처한 지역 입장에선 해당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화폐로 지급해야 자금의 유출을 막을 수 있다. 전남 10개 시군의 민생지원금 지원에서도 지역화폐의 골목 상권 활력 효과는 확인됐다. 이번 설 연휴 정부의 갑작스런 임시공휴일 지정이 내수경기를 살리기보다 여유있는 사람들의 해외여행만 부추겼다는 사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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