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워드 온 더 워터’를 꿈꾸며
2024년 11월 12일(화) 19:20
영국 런던의 킹스크로스에 가면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헌 책방이 있다. 바로 ‘워드 온 더 워터’(Word on the Water)이다. ‘물위의 서점’으로 불리는 이곳은 지난 2011년 도심을 가로 지르는 리젠트 운하에 깜짝 등장했다.

매일 낮 12시에 문을 여는 ‘워드 온 더 워터’는 영국 옥스포드대 출신의 패디 스크리치와 조나단 프리벳 등 독서광인 세 친구가 평생의 업으로 삼기 위해 낡고 오래된 15m 길이의 바지(Barge)선을 꾸민 곳이다. 자신들이 읽었던 헌책들을 매대에 내놓은 데다 직접 망치를 들고 배를 수리한 덕분에 큰 돈은 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가장 신경 쓴 ‘공사’는 지붕 위 스테이지. 지역의 뮤지션이나 버스커들의 공연무대로 활용하기 위해 고가의 마이크와 음향 시설을 갖췄다.

2011년 5월, 역사적인 ‘출항’에 나선 ‘워드 온 더 워터’는 단박에 런더너들의 문화쉼터가 됐다. 하지만 14km에 이르는 리젠트 운하를 운행하며 영업한 워드 온 더 워터는 예상치 못한 불편을 겪어야 했다. 모든 선박들은 2주 마다 정박지를 이동해야 한다는 런던의 운하법에 따라 자주 옮기다 보니 매번 서점의 위치가 바뀌는 바람에 고객들의 불만을 샀다.

2년간 비슷한 상황이 이어지자 책방지기들은 런던시의 허가를 받지 않고 현재의 자리에 2개월간 무단 정박을 감행했다. 이에 발끈한 리젠트운하 관리회사가 막대한 벌금과 즉각 철거 등 법적 조치를 취하면서 폐점 위기에 몰렸다. 이런 안타까운 사실을 알게 된 런던 시민들과 ‘셀럽’들은 SNS 등을 통해 서점구하기에 나섰고, 지난 2015년 운하관리회사는 결국 워드 온 더 워터의 영구 정박을 허가했다. 자칫 추억속으로 사라질 뻔한 서점이 시민들의 응원으로 런던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며칠 전, 문득 워드 온 더 워터의 근황이 궁금해졌다. 지난 9월 28일자로 대전의 향토서점 ‘계룡문고’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29년 만에 폐업했다는 뉴스를 접해서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니 다행히도 책방은 여전히 성업중이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6년 전 취재차 기자와 만났던 조나단 프리벳이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자고 나면 문을 닫는’ 책방이 많은 데, 코로나19를 거쳐 고물가로 악명이 높은 런던에서 13년간 ‘버텨내고’ 있는 게 부러웠다.

책 읽어주는 서점으로 유명한 ‘계룡문고’폐업에 마음이 쓰인 건 광주에게도 비슷한 아픔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나라서적(1996년 폐업)과 삼복서점(2008년)이 떠올라 왠지 남의 일 처럼 느껴지지 않아서였다. 무엇보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전국이 축제 분위기로 들떠 있었던 터라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동네책방은 단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서점은 한 도시, 한 나라의 문화 최전선이다. 동네 책방이 하나 둘씩 늘어날 수록 세상은 그만큼 진화하기 때문이다. 한강이 3평 남짓의 독립서점 ‘책방 오늘’을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으리라. 모쪼록 ‘한강 신드롬’이 책읽는 문화, 나아가 동네책방의 재발견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문화·예향국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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