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소안도의 노란 무궁화, 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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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원에서 일하던 시절 사무실 앞에 너른 무궁화 정원이 있었다. 정원에는 노란색, 푸른색, 붉은색, 흰색의 무궁화가 구역별로 식재되어 있었다. 8월 초, 무궁화가 만개하는 계절이면 나는 쉬는 시간마다 무궁화 정원을 찾았다. 이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홑꽃과 겹꽃, 얇고 두터운 꽃잎으로 형태가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무더위에 수목원까지 와서 무궁화를 들여다보는 관람객은 없었다. 무궁화는 자주 혼자였다.
무궁화는 우리나라 국화다. 그리고 무궁화는 중국 원산이다. 무궁화가 우리나라 자생식물이 아니란 사실은 국화 정체성에 자주 걸림돌이 된다. 물론 국화가 자생식물이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이미 정해진 국화가 아닌가. 게다가 세계적으로 외래식물이 국화인 경우는 많기 때문에 나는 이 글에서 재배식물로서의 국화 자격을 논하고 싶지 않다. 다만 국민이 국화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궁화의 속명은 히비스커스(Hibiscus)다. 히비스커스속에는 무궁화 외에도 하와이무궁화, 부용, 닥풀 그리고 흔히 카페에서 차로 판매하는 ‘히비스커스티’의 ‘히비스커스’도 속해 있다. 나는 무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우리가 히비스커스티에 열광하는 모습을 볼 때 조금 복잡한 생각이 든다. 무궁화와 히비스커스는 한 가족인데, 왜 우리는 히비스커스를 좋아하지만 무궁화는 좋아하지 않는 걸까.
예쁘지 않아서? 꽃잎 색이 촌스러워서? 혹은 진딧물이 많아서? 이 특징은 히비스커스속 식물 전반에 해당되므로 무궁화를 특별히 선호하지 않는 이유라고 보긴 어렵다. 무궁화와 히비스커스에 대한 인식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지나치게 익숙한 존재와 새롭고 낯선 존재에 대한 태도 차이로 볼 수 있다.
물론 무궁화의 특수성도 있다. 우리나라 국가 상징물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무궁화를 사랑해야 한다는 강요 비슷한 교육을 받아온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황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황근은 이름 그대로 노란 무궁화다. 무궁화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황근은 우리나라 남부의 바닷가에 서식하는 자생식물이다. 둘은 한 가족인 만큼 형태, 생태도 참 많이 닮았다. 황근은 무궁화와 비슷한 크기의 꽃이 여름 동안 핀다. 꽃 한 송이가 내내 피어 있는 것은 아니고, 노란 꽃이 아침에 피어 붉은빛을 띤 채로 저녁에 져 땅에 떨어진다. 무궁화처럼 꽃 한 송이가 지면 한 나무의 또 다른 꽃이 피는 식이다. 다만 여름 내내 꽃을 피우는 무궁화와 달리 황근은 7월에 꽃이 피어 8월에 지기 때문에 제주에서는 황근 꽃이 피기 시작하면 장마가 시작되고 황근 꽃이 지면 장마가 끝나는 것으로 장마 시기를 유추했다고 한다.
5년 전 완도로 출장을 간 김에 소안도에 들렀다. 소안도에 황근 자생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데다 마침 황근 꽃이 만개하는 여름이기에 한나절 동안 소안도에 머물며 황근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꽤 오래 월항리 바닷가를 걷다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연노란색의 무언가가 군락을 지어 흩날리는 게 보였다. 황근이었다. 황근 꽃잎 색은 개나리나 히어리와는 또다른 빛깔의 연노란색이었다. 게다가 무궁화처럼 얇은 꽃잎은 투명에 가깝게 바래 있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 꽃이 핀 황근을 보면서 무궁화의 형태와 색이 아름답지 않다는 우리의 편견은 무궁화란 식물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도시의 복잡하고 휘황찬란한 배경에 식재되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궁화도 이처럼 드높고 푸른 여름 하늘을 배경으로 자연스레 살고 있다면, 반대로 건축물이 빽빽한 도심에 황근이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면 우리는 그곳의 무궁화와 황근을 좋아하게 될 것인가? 상상해 보았다.
지금 황근의 둥근 잎은 빨갛게 물들어가고 가지 끝에 황토색 열매가 달려 있다. 땅에 떨어진 황근 열매를 집어 드니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볍다. 황근은 아마도 바다를 건너 번영하기 위해 바닷물에 뜰 정도로 가벼운 열매로 진화해온 게 아닐까?
내 손 위에는 한없이 작고 가벼운 황근 열매가 있을 뿐이지만, 어느새 나는 시내 가로수로 심어진 무궁화와 카페에서 마신 히비스커스티까지 떠올리고 있다.
<식물 세밀화가>
무궁화의 속명은 히비스커스(Hibiscus)다. 히비스커스속에는 무궁화 외에도 하와이무궁화, 부용, 닥풀 그리고 흔히 카페에서 차로 판매하는 ‘히비스커스티’의 ‘히비스커스’도 속해 있다. 나는 무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우리가 히비스커스티에 열광하는 모습을 볼 때 조금 복잡한 생각이 든다. 무궁화와 히비스커스는 한 가족인데, 왜 우리는 히비스커스를 좋아하지만 무궁화는 좋아하지 않는 걸까.
물론 무궁화의 특수성도 있다. 우리나라 국가 상징물이다 보니, 어릴 때부터 무궁화를 사랑해야 한다는 강요 비슷한 교육을 받아온 것에 대해 거부감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황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황근은 이름 그대로 노란 무궁화다. 무궁화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황근은 우리나라 남부의 바닷가에 서식하는 자생식물이다. 둘은 한 가족인 만큼 형태, 생태도 참 많이 닮았다. 황근은 무궁화와 비슷한 크기의 꽃이 여름 동안 핀다. 꽃 한 송이가 내내 피어 있는 것은 아니고, 노란 꽃이 아침에 피어 붉은빛을 띤 채로 저녁에 져 땅에 떨어진다. 무궁화처럼 꽃 한 송이가 지면 한 나무의 또 다른 꽃이 피는 식이다. 다만 여름 내내 꽃을 피우는 무궁화와 달리 황근은 7월에 꽃이 피어 8월에 지기 때문에 제주에서는 황근 꽃이 피기 시작하면 장마가 시작되고 황근 꽃이 지면 장마가 끝나는 것으로 장마 시기를 유추했다고 한다.
5년 전 완도로 출장을 간 김에 소안도에 들렀다. 소안도에 황근 자생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데다 마침 황근 꽃이 만개하는 여름이기에 한나절 동안 소안도에 머물며 황근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꽤 오래 월항리 바닷가를 걷다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연노란색의 무언가가 군락을 지어 흩날리는 게 보였다. 황근이었다. 황근 꽃잎 색은 개나리나 히어리와는 또다른 빛깔의 연노란색이었다. 게다가 무궁화처럼 얇은 꽃잎은 투명에 가깝게 바래 있었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 꽃이 핀 황근을 보면서 무궁화의 형태와 색이 아름답지 않다는 우리의 편견은 무궁화란 식물의 문제가 아니라, 이들이 도시의 복잡하고 휘황찬란한 배경에 식재되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궁화도 이처럼 드높고 푸른 여름 하늘을 배경으로 자연스레 살고 있다면, 반대로 건축물이 빽빽한 도심에 황근이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면 우리는 그곳의 무궁화와 황근을 좋아하게 될 것인가? 상상해 보았다.
지금 황근의 둥근 잎은 빨갛게 물들어가고 가지 끝에 황토색 열매가 달려 있다. 땅에 떨어진 황근 열매를 집어 드니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볍다. 황근은 아마도 바다를 건너 번영하기 위해 바닷물에 뜰 정도로 가벼운 열매로 진화해온 게 아닐까?
내 손 위에는 한없이 작고 가벼운 황근 열매가 있을 뿐이지만, 어느새 나는 시내 가로수로 심어진 무궁화와 카페에서 마신 히비스커스티까지 떠올리고 있다.
<식물 세밀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