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재첩국 키오스크
2023년 11월 22일(수) 23:00
섬진강변을 취재하고 왔다. 구례 화엄사를 거쳐 하동으로 달렸다. 한 끼 밥을 먹자니 재첩국이 그리웠다. 예전, 섬진강 얕은 물에는 바지를 걷고 재첩을 건지는 사람들이 그림같았다. 이른 아침, 물안개를 뚫고 재첩국집을 찾았다.

“요즘은 아침식사하는 식당들이 드물어요. 일손도 없고, 아침 건너뛰는 식습관이 흔해져서요. 커피 한잔으로 때우는 사람이 좀 많습니까.”

일행의 분석이 그럴 듯했다. 그랬다. 옛날엔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했다. 농경사회의 흔적이라 했다. 도시에서 월급벌이하는 사람들도 어떻게든 아침을 챙겼다. 도시 빌딩숲 지하에 밥집이 흔했는데 ‘아침식사 됩니다’ 하는 광고판도 많았다. 해장국집도 많아서 각종 장르(?)가 경쟁했다. 콩나물국밥, 북어국밥에 서울의 전통적인 소뼈해장국이 불티나게 팔렸다. 이젠 아침밥 파는 한식집은 거의 보기 힘들다. 빵과 우유, 커피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어쨌든 섬진강 하구에 와서는 적어도 재첩국으로 이른 아침밥을 먹자는 게 일행의 의지였다. 검색을 하고 차를 몰아 겨우 한 식당을 찾았다. 하동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하고 오래 된 길가 식당이었는데 뭔가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동행이 ‘어어?’하고 짧은 탄식을 했다.

“이게 키오스크 아닌가요?”

노포 급의, 전통의 하동 재첩국집에 자동 주문기계가 설치되어 있는 게 아닌가. 묵은지까지 반찬으로 나오는 맛있는 재첩국 밥상을 기계로 주문하고, 셀프로 받고 물렸다.

“사람이 없어요.”

사장님의 답은 간결했다. 그렇다. 땅 남쪽 하동땅 전통식당의 생경한 풍경은 바로 사람이었다. 그나마 도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서비스시장을 일부 떠받친다. 하동에서 그런 사람을 구하기란 어려운 일일테지.

사실 어제도 우린 해프닝을 겪었다. 한 휴게소 로봇커피점에서였다. 말로만 듣던, 로봇팔이 제조하는 커피점을 보았다. 로봇은 정확하게 커피를 제조하고 있었는데ㅡ당연히 주문도 키오스크 전자주문이었다ㅡ생각보다는 신중했다.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 제조하는데 숙련된 사람보다 긴 시간이 걸리는 듯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주문시 나오는 영수증을 꼭 잘 받아두었다가 커피가 나오는 출구에 바코드 터치를 해야 출구 문이 열리고 받아먹을 수 있게 설계된 것이었다. 주문과 수령의 착오와 혼란을 막는 온당한 조치다. 하지만 나이 든 우리는 그앞에서 당황했고 어수룩했다. 영수증을 어디에 두었는지 찾았다. 로봇은 우리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오직 영수증을 찾는 것 말고는 구원받을 방도가 없었다. 그때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옆 가게의 일꾼이었는데 사실상 로봇커피점의 일도 병행하고 있었다. 우리 같은 어수룩한 올드 세대의 문제를 해결해주어야 했으니까.

우리가 겪은 이런 해프닝은 일상의 문제가 되고 있다. 키오스크 앞에서 기성세대는 당황한다. 인터페이스가 복잡하고 설명은 어색하다. 커피나 햄버거 하나를 뽑으려다가 분노와 소외감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는 이런 문제를 받아들이려 한다. 세상이 변하는 것이고, 일할 사람이 없다는 건 다 아는 사실이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쿨하게’ 수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키오스크 앞에서 쩔쩔매다가 낭패감에 빠지고, 더러는 분노했으며.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의 무언의 압박에 더 당황했던 경험을 가진 올드 세대가 나뿐이겠는가. 섬진강 노포 재첩국집에까지 등장한 키오스크는 우리 미래의 어떤 예고다. 재첩국 맛은 여전했지만. 어쩌면 도시의 햄버거집이 아니라 재첩국집에서 그 기계를 만난 건 지금 우리가 겪는 난맥을 상징하는지도 모르겠다.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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