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우리지역 우리식물’] 보라색 사탕을 닮은 열매, 정도리 새비나무
2023년 11월 01일(수) 22:00
내가 사는 아파트 화단에는 우리나라 자생식물들이 식재되어 있다. 함박꽃나무, 보리수나무, 마가목 그리고 좀작살나무. 이중 좀작살나무의 작고 앙증맞은 보라색 열매는 가을 동안 주민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내 주변에서 좀작살나무의 별명은 짝꿍 나무다. 열매가 어릴적 문방구에서 사 먹었던 ‘짝꿍’이란 이름의 사탕을 닮았기에 붙은 별명이다. 나는 매년 이맘때 숲과 정원에 열린 좀작살나무의 보라색 열매 사진을 찍어 올해도 짝꿍이 열렸다며 친구들에게 좀작살나무 소식을 전한다.

좀작살나무는 도시의 정원과 화단뿐만 아니라 숲에 분포하는 자생식물이다. 좀작살나무와 비슷한 종으로 작살나무도 있다. 작살나무도 좀작살나무처럼 가을이면 보라색 열매를 매다는데, 좀작살나무의 열매가 좀 더 크고 탐스러워 도시에는 좀작살나무가 주로 식재되다 보니 우리에게는 작살나무보다는 좀작살나무가 더 친근하다. 그래서 우리는 ‘짝꿍’ 사탕을 닮을 그 열매를 보면 모두 좀작살나무라 식별하곤 한다. 그러나 남부지역에는 좀작살나무와 작살나무 외에도 새비나무가 있다. 이름도 고운 이 나무의 열매 또한 좀작살나무와 같은 보라색이다.

2주 전 사탕수수를 그려야 할 일이 생겨 완도의 한 사탕수수 농장을 찾았다. 그림 그릴 사탕수수를 다 관찰하고 서울로 돌아가려 하니 농장 주인분이 내게 10분 거리에 있는 해안선인 구계등에 가보라 추천했다. 완도에서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는 말과 함께. 나는 문득 언제 다시 완도에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서울로 올라가는 KTX편 시간을 뒤로 미루고 구계등으로 향했다.

구계등에는 300년 전 만들어진 방풍림, 정도리 자연관찰로가 있다. 방풍림은 바람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한 숲이다. 이곳은 난대림과 온대림이 어우러진 숲으로, 다도해해상공원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그리고 장도리에는 새비나무가 산다.

둥근 몽돌이 발에 치이는 해변을 지나 상록수림을 걷다 보니 수고 1미터가 안 되어 보이는 새비나무가 보였다. 나무에는 은빛을 머금을 보라색 열매가 맺혀 있었다. 열매의 색을 보아하니 열매가 열린지 시간이 꽤 지난 듯 보였다. 보라색 열매가 열리고 시간이 흘러 빛에 바라면 열매 색이 은빛으로 변하는 시기가 온다.

언뜻 보면 이들은 작살나무, 좀작살나무와 별다른 점이 없어 보이지만 잎을 자세히 보면 차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들 잎에는 털이 밀생한다. 좀작살나무는 가지에 주로 털이 있을 뿐이지만 새비나무는 잎의 앞면과 뒷면 모두 털이 만져질 정도로 많다. 새비나무 학명의 종소명 몰리스(mollis) 또한 부드러운 털이 있는 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식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식물을 잘못 식별하고, 식물의 틀린 이름을 부르는 경우도 자주 본다. 이런 현상은 식물을 아예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일부의 식물만을 아는 사람으로부터 나타난다. 아는 식물 이름이 하나도 없으면 눈앞의 식물이 어떤 이름이라도 될 가능성을 열어두고 더 세밀히 들여다보아 정답에 가까운 답변을 얻지만, 일부의 식물만 아는 사람은 눈앞의 식물과 자신이 아는 비슷한 식물을 쉽게 같은 종으로 묶어 버리고, 내가 모르는 영역으로의 가능성을 접어둔 채 경험과 감각에 갇혀 오동정한다.

실상 연구자들은 눈앞의 식물을 식별할 때 어느 속, 어느 종류인지만 말할 뿐 종을 쉽게 단정 짓지 않는다. 동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것(데이터) 만으로는 확실히 알 수 없다”라는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아는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리고 자연은 언제라도 인간의 오만에 일침을 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가을이면 SNS 사진으로도 자주 만나는 짝꿍 열매 역시 모두 좀작살나무는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만날 수 있는 보라색 열매 식물은 새비나무, 좀작살나무, 작살나무, 미국작살나무 등이 있고, 작살나무라고 해서 무조건 열매가 보라색인 것도 아니다. 흰 열매의 흰작살나무도 있다.

새비나무의 열매는 겨울 동안 새의 먹이가 되고, 그렇게 멀리 또 많이 번식하여 새로운 개체로 성장할 것이다. 새의 먹이가 되는 나무, 새보리나무 그리고 새비나무로의 이름 변천사를 떠올리며 숲을 빠져나왔다.

<식물 세밀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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