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 먹고 합시다’] 오징어와 한 철
2023년 10월 26일(목) 00:00
울릉도에 비행장 공사를 하고 있다. 뱃멀미에 시달려 배 여행이 여간 힘들지 않은 곳이다. 울릉도는 오랫동안 오징어로 유명했다. ‘울릉도 호박엿’도 명물로 알려져 있지만, 역시 오징어는 울릉도를 상징했다. 가을, 굵은 오징어가 잡힐 때면 학교도 긴급 휴교를 하고 일손을 도왔다고 한다. 모내기, 벼베기 철 농촌과 비슷했던 것이다. 울릉도에선 오징어잡이를 이까바리라 했다. 일본어 잔재다. 그리 잡아오면 엄청나게 부려놓은 오징어 배를 갈랐다. 이걸 할복이라 한다. 배 갈라 내장 갈무리하고 몸통은 주로 말렸다. 가을볕에 잘 마른 오징어는 뭍에 팔려나갔다.

요즘은 오징어가 귀해서 값이 많이 뛰었다. 두툼하고 부드러운 게 상품인데 축(10마리)에 10만원을 넘는다. 국내산 오징어가 비싸지면서 수산물시장의 변화도 크다. 마른 오징어는 남중국이나 베트남 해역에서 잡히는 한치가 시장을 많이 대체했다. 러시아산 북어나 가공한 황태가 오징어시장을 잠식했다. 반찬용 마른 오징어는 이미 1980년대에 원양산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아는 속칭 진미채가 바로 태평양에서 잡는 훔볼트 대형 오징어살을 가공한 것이다. 대왕오징어라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사실이 아니다. 그 진미채도 이젠 비싸져서 다른 종류의 가공어포가 대체하고 있다. 원양 오징어의 다리는 따로 말려서 문어 다리로 팔리다가 사기로 기소된 적도 있다. 이후엔 애매한 가문어 다리라고 명명되기도 했다. 하기야 훔볼트 오징어 다리라고 부르면 누가 사갈까만. 그렇다고 문어 다리라 한 건 심했다.

오징어가 전체적으로 귀해지면서 온갖 묘수가 나왔다. 우선은 원양 오징어다. 외국은 알다시피 오징어를 잘 안 먹는 나라가 많다. 그쪽 바다에 가서 잡아오는 방식이다. 요샌 그마저도 쉽지 않다. 어족 보호와 수입 증대를 위해 쿼터제를 쓴다. 돈을 많이 내야 수역에 들어갈 수 있고 잡는 양도 제한한다. 원양 오징어는 전 세계 어디든 떼가 있는 곳에 가서 잡는다. 뉴질랜드, 포틀랜드 같은 지역에서 좋은 물건이 나왔는데 요즘에는 잘 안 잡혀 가격이 크게 올랐다. 동네 중국집 짬뽕에 오징어 구경하기 힘든 건 이런 뒷사정 때문이다. 해물짬뽕 대신 고기를 듬뿍 넣은 이른바 육짬뽕이 등장한 건 복고풍이기도 하지만 이런 배경 덕이다. 고기가 해물보다 훨씬 싼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다.

물론 우리나라 배가 한반도 남쪽 해역에서 잡아오는 것도 있다. 이런 오징어는 이동시간이 걸리므로 배 안에 냉동시설을 갖추고 있다. 잡자마자 배 안에서 얼린다. 이를 선동 오징어라 한다. 배 선(船)자, 얼릴 동(凍)자. 물론 원양 오징어도 기본적으로 선동이다. 오징어가 한창인 여름, 가을에 새벽시장에는 무지개빛이 비치는 선명한 고동색의 생물 오징어가 깔린다. 이를 속어로 초코 오징어라 부르기도 한다.초콜릿색이란 뜻이다(얼린 것도 모양을 예쁘게 잡아 초코 선동 오징어로 나온다). 한때, 물좋은 초코 오징어가 마리당 1000 원하던 게 이젠 4000~5000 원이 보통이다. 그나마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고기들은 철이 있다. 오징어는 워낙 우리 민족이 좋아해서 일년내내 어떤 식으로든 시장에 깔린다. 원양의 거친 바다든, 연안의 밤일이든 불을 밝히고 오징어를 잡는다.

며칠 전 양동시장 수산물 코너를 돌았다. 낙지철이다. 싱싱한 산낙지가 지천이다. 코를 꿰어 파는 이른바 기절낙지는 서너 마리 한 코에 1만원, 산낙지는 5000~1만 원선이다. 주인을 기다리는 낙지가 올 가을 수산시장의 주인공이다. 몇 마리 사서 근처 식당에 부탁해 회로 두들기고, 탕도 끓였다. 오징어(우리가 먹는 날씬한 종은 살오징어라 한다)도 좋지만 가을 낙지와 늦봄의 갑오징어는 또 철대로 즐길 만하다. 변하는 바다 사정에도 때마다 철마다 나오는 바닷것의 소중함이 각별하다.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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