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이등병들과 세계 젊은이들이 전쟁에 나가지 않는 세상 꿈 꿉니다”
‘이등병의 편지’ 40주년 김현성 작사·작곡가 기념 콘서트·전시회
고근호·김해성 등 광주 작가 참여
30일까지 메이홀… 27일 콘서트
윤도현 ‘가을 우체국 앞에서’도 작곡
2023년 10월 25일(수) 21:00
김현성 씨가 ‘이등병의 편지’ 탄생 40주년을 맞아 광주에서 화가들과 전시와 공연을 연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를 들으며 사람들은 한 시대를, 한 세대를 건너왔다. 앞이 보이지 않은 캄캄한 길을,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은 어둠의 길을 노래를 위안삼아 걸어왔다.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는 그런 노래다. 아니 그것은 한편의 시다. 가만히 눈을 감고 들으면 지나온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서정적인 가사와 한국적인 멜로디, 김광석의 담담하면서도 애수가 깃든 목소리가 주는 여운은 뭉클하다.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속엔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젊은 날의 생이여…”(‘이등병의 편지’ 중에서)

‘이등병의 편지’ 곡을 만들고 노랫말을 만든 김현성 씨. 푸른 청춘의 시절인 서울예대 1학년 재학시절 ‘이등병의 편지’를 만들었다. “노래를 잘 안다고 할 수도 없었던 무렵 초기에 쓴 곡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노래는 마치 시간이 흐를수록 맛과 향이 깊어가는 포도주처럼 쓸쓸하면서도 그윽하게 익어갔다.

김현성 작곡가가 ‘이등병의 편지’ 40주년을 기념해 광주의 화가들과 전시회를 열고, 단독 공연을 가질 예정이어서 화제다.

먼저 ‘이등병의 편지 40주년 전시회’는 오는 30일까지 메이홀(2-3층·ACC 맞은편)에서 ‘우리는 전쟁 연습을 반대하고 안정과 평화를 노래합니다’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다. 또한 ‘이메진데스크콘서트 이등병의 편지 40주년-김현성 가을우체국 앞에서’는 오는 27일 오후 7시 이매진 도서관에서 펼쳐진다.

고근호 작품
전시회와 공연을 위해 광주에 온 김 씨를 메이홀 전시실에서 만났다. 벽면에는 ‘이등병의 편지’ 악보를 비롯해 고근호 조형작가, 김해성 화가, 박남준 시인, 박문종 화가, 임의진 목사(시인), 한보리 가수, 한희원 화가, 홍성담 화가의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엊저녁에 광주 친구들과 만나 모처럼 회포를 풀다 보니 늦게까지 술을 마셨네요.”

조금은 부스스한 얼굴이었지만 친근한 인상이었다. 서글서글해 보이는 인상과 달리 얼핏 심지 곧은 사람 특유의 엄격함이 느껴졌다. 한편으로 가수 윤도현이 불러 히트를 쳤던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만든 여린 감성의 분위기도 배어나왔다.

“‘이등병 편지’는 90년대 들국화 전인권 씨가 처음 불렀는데, ‘노래가 괜찮다’는 반응이 많았어요. 당시 첫 음반 작업을 ‘개똥벌레’와 ‘홀로 아리랑’을 만든 한돌 씨가 했는데, 역시 ‘좋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전인권 씨가 부르고 얼마 후 금지곡이 됐습니다. 나중에 김광석 씨가 다시 불렀고, 이후 순회공연을 하면서 인기를 얻었어요. 또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등에 삽입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등병의 편지’ 악보.
그는 ‘이등병의 편지’를 오늘의 시대와 연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세계 도처에서 발발한 전쟁과 분쟁으로 무고한 이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는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적과 아군을 떠나 모든 젊은이들은 누군가의 자식인데 말이죠.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우리와 대치하고 있지만 그곳의 젊은이들도 분명 누군가의 아들이잖아요. 저는 우리나라 이등병들, 나아가 세계의 젊은이들이 전쟁에 나가지 않는 세상을 꿈꿉니다.”

그가 ‘이등병의 편지’를 녹음한 것은 지난 84년 12월 15일이었다. 그리고 이틀 후인 12월 17일 입대했다. 노랫말은 그 전에 입대하는 친구들 환송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썼다.

“몇 년 전 큰아들, 작은 아들 입대할 때 훈련소에 갔습니다. 그때 ‘이등병의 편지’가 제 노래이기도 하지만, 왜 사람들이 그 노래를 듣고 가슴 뭉클해하는지 알 것 같더라구요. 젊은 시절 군에 입대하거나,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얘기였다. 김 씨의 말을 들으면서 기자 또한 잠시 80년대 후반 입대하던 날의 논산 훈련소의 풍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국방부 초청을 받아 의문사 관련 행사에 갔던 얘기도 꺼냈다. 많은 사람들이 까만 상복을 입고 자리에 앉아 ‘이등병의 노래’를 3절까지 부르는데 많이 힘들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이번 전시에 대한 그의 생각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김씨는 김광석과의 에피소드도 들려주었다. 무명시절의 김광석은 키도 작고 평범한 얼굴이어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했다. 그런데 “노래를 부를 때는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정말 커보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광석이는 애정이 많은 친구였다”고도 기억했다.

“내가 파주나 고양에서 공연을 할 때 곧잘 와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러면 광석이는 자기 스케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번도 거절하지 않았죠. 다른 가수들도 광석이에게 부탁을 하면 ‘항상 온다’는 생각을 할 만큼 광석이는 배려심이 깊었습니다.”

그는 노래에는 모두 ‘임자’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노래는 누가 부르냐에 따라,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빛깔과 향기를 발한다는 거였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부른 윤도현이나 ‘이등병의 편지’를 부른 김광석이나 모두 그런 노래의 ‘임자’였다.

광주에도 자주 온다는 그는 “언제나 애틋하다”고 덧붙였다. “군대 제대하고 서울의 모 성당에서 ‘사진전’을 봤는데 정말로 끔찍했다”며 “광주는 평생 음악의 한 축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전시 큐레이터인 주홍 화가는 “이번 전시가 한반도의 이등병들이 전쟁에 나가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를 했으면 한다”며 “특히 ‘이등병의 편지’ 세대들과 친구들이 의미있는 작품을 많이 보내줘 더더욱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한편 파주 출신 김현성은 서울예전을 졸업하고 노래동인 나팔꽃 창립멤버로 활동했으며 노래모임 혜화동 푸른섬을 이끌었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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