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을 따러 월산동에 간다 -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3년 09월 27일(수) 07:00
달이 떠 있다. 어깨 너머로 뜬 달이 슬그머니 내 어깨를 감싸준다.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달밤이다.

내가 그를 보는 건지 그가 나를 보는 건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말이 통하는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은 저 달, 아니 달님.

추석에 뜨는 달은 처용의 바람둥이 달보다 부자지간을 이어주는 메밀꽃 흐드러진 봉평의 은은한 달 같다. 행상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슬픈 정읍사의 달이라기보다 김환기의 그림 속 항아리 같은 만삭의 달이다.

추석 달은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달이고, ‘달아, 달아! 둥근 달아’, 민요가 절로 중얼거려지는 흥겨워지는 달이다. 이럴 때면 윤오영의 달밤처럼 시골집 툇마루에 앉아 단출한 무청 김치에 농주 한 사발 차려놓고 말없이 달을 벗 삼아 출출함을 달래고 싶어진다.

광주의 달동네, 월산동 수박등에서 달은 코앞이다.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그곳 수박 반쪽을 닮은 동네는 달맞이하기 맞춤인 곳, 그 산등성이에 서면 둥근 달 위에 선 것 같이 멋진 한 폭의 그림처럼 가슴이 둥둥 뜬다. 월산동 월산에서 달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추석은 시간이 밤이고 밤의 주인공은 보름달 만월이렷다. 그래서일까. 주월과 진월을 지난 월산동 보름달은 꽉 차서 볼이 터질 것 같은 달이다.

유년 추석은 단연 달밤이 최고였다. 어른들은 풍성하게 음식과 떡, 과일을 차려놓고 웃음이 넘쳐났고, 청춘들은 동네 앞으로 나와 강강술래로 신명이 났다. 야밤 출입을 엄금했던 당시, 어린 조무래기들은 수박 서리로 분주했고, 유일하게 추석날 밤만은 예외여서 젊은 남녀들은 여기저기 연애하기 바빴다. 아니 달빛은 큐피드의 화살인지 누구나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밤이었다. 추석 보름달은 무딘 누구라도 한편의 러브스토리를 제공해준 중매쟁이 달이었다.

동시에 녀석은 무척 과묵한 달이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데, 그 많은 일들을 보고도 모른 척, 빙그레 딴청을 부리고 있는 저 월산동의 달은 조금은 뻔뻔스러운 달이다.

저 익을 대로 농익은 둥근 달. 추석 달은 그래도 어머니 마음을 가장 많이 닮은 달이다. 달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어머니 품에 안긴 순한 어린 양이 된다. 어머니가 보고픈 이들은 슬며시 창가로 다가선다. 아파트에서, 병원과 요양원에서도, 외로운 원룸과 군부대 초소에서도 우린 모두 어머니를 바라보는 달바라기 달맞이꽃이 되는 날이 추석날 밤이다.

한가위 보름달은 화장한 달이다. 그날만은 노랗게 분장한 달을 보는 동안, 묵은 슬픔도 지워지고, 분노도 울화도 시나브로 가라앉았다. 달빛을 맞는 순간 우리는 최면에 걸린 넉넉한 아저씨가 되고 풍요로운 형이 되고 자애로운 이모가 되었다. 또 길 잃은 짐승들을 어머니 품으로 안내하고, 산새들은 깊은 잠이 들게 하고, 일순간 죄지은 이도 눈물 흘리게 하는 마술사 같은 달이다.

혹여, 이 추석날 밤에 달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달 없는 깜깜한 세상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만인의 연인이자 친구 없이 말이다. 삭막한 가슴을 정화해주는 저 달이 없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삭막한 세상, 미움과 전쟁으로 지옥이 되지 않았을까.

시끄럽고 말 많은 세상에 저리 과묵한 달, 저런 친구 하나 있어서 나는 오늘도 행복하다. 절로 힘이 난다. 하늘의 달이 땅으로 내려와 달이 된 곳 월산동. 간혹 뻔뻔스럽게 시치미를 떼지만 그래도 가볍지 않고 묵직한 친구, 볼이 터질 것 같은 녀석, 만삭의 달, 요술쟁이, 중매쟁이, 어머니를 닮은, 화장한 달을 만나러 월산동으로 가야겠다. 그 보름달을 따러 그 추석 달을 만나러 월산동으로 간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 같이 신나는 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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