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권 시인 “전라도말로 뭉클한 남도 서정 담았죠”
두번째 시집 ‘눈은 어머니를 꿈꾸며…’ 발간
유년기 기억 속 고향 모습 노래
교원 퇴직…시집 2권 출간 계획
2023년 09월 19일(화) 19:59
최승권 시인
남도 서정과 이야기 서사는 남도인의 삶 속에 드리워진 풋풋하면서도 올곧은 인간미라 생각해요. 그 가운데 대중매체를 지배하는 표준어에 의해 점차 사라져가는 전라도말, 광주입말은 대표적이라 할 수 있지요. 우리 고장의 입말을 매개로 기억의 재구성, 남도 서정을 구현하고 싶었습니다.”

최승권 시인이 두 번째 시집 ‘눈은 어머니를 꿈구며 지상에 내려왔을까?’(문학들)을 펴냈다. 출간 소식을 전해오는 시인은 “광주에서 무등을 항상 우러러보고 물 맑은 광주천에서 놀며 성장했던 저의 초중고 시기의 기억과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노래한 시집”이라고 말했다.

광주 출신의 그는 지난 2016년 등단한지 30년 만에 첫 시집 ‘정어리의 신탁(神託)’(문학들)을 펴내 화제가 된 바 있다. 등단하고 한 세대의 시간이 흐른 뒤 시집을 발간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뉴스다. 그러나 그 뉴스 이면에 가려진 사실은 ‘진짜 뉴스’를 함의한다.

시인에게는 저간의 곡절이 있었다.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뒤 ‘5세대’동인으로 활동하는 동안 89년 전교조 활동을 이유로 학교에서 해직을 당했다. 이후 서울로 올라가 학원 강사를 하다, 몇 년 후 복직이 됐다. 그 사이 학생들을 가르치고 업무에 치이다 보니 작정하고 시를 쓰기가 어려웠다. 한권의 작품집이 탄생하기까지 30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다.

그리고 다시 7년만에 두 번째 작품집을 세상에 내놓았다. 창작집이 늦어지는 경우는 대개 두 가지 이유다. 지나치게 작품 완결성을 추구하거나 또는 ‘발효 과정’ 자체가 장시간을 요구해서일 수도 있다. 최 시인의 경우에는 두 가지가 원인이 아닌가 싶었다. 언급한대로 교직에 몸담고 있다 보니 학생들에게 쏟는 에너지와 열정이 일정 부분 창작을 억누르는 기제로 작용했을 것 같다.

시인은 “아름다웠던 과거 뿐만 아니라 버리고 싶었던 기억도” 시로 형상화한 작품도 있다고 했다. 물론 가족사를 그린 시도 있다.

“80년 대항쟁의 5월이 오기 전까지 저를 비롯한 광주 사람들의 삶에 대한 한 기록이라 할 수 있어요. 한편으로 끈끈한 가족에 대한 애정이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끌어왔던 중요한 힘의 원천이었음을 노래하고 싶었죠.”

전체 시집을 관통하는 남도 서정은 뭉클하다. 시인의 표현대로 “남도의 서정은 영원히 꺼지지 않을 세계의 불꽃”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품집에서 ‘가장 아끼는 작품은 어떤 시냐’는 물음에 그는 ‘푸른 간장’을 꼽았다. “아내의 절친이었던 고 박정임씨를 추모한 작품”이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제게 삶이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 전라도 여인이자 우리 어머니들 같은 존재였습니다. 함께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이고 남을 위한 수고로움을 아끼지 않는 삶이 얼마나 가치있는 삶인가를 묵묵히 실천으로 보여준 이름없는 성자였으니까요.”

오늘의 우리는 어쩌면 수많은 ‘이름없는 성자’의 수고로 존재하는지 모른다. 주위에는 그런 ‘이름없는 성자’들이 많다. 거창한 업적을 남긴 이들이 아니더라도 평생 자식을 위해 희생한 부모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은공을 베푸는 이들이 모두 그런 이들이다.

“밥상 위 푸른 간장 속에는/ 낮이면 콩밭 매는 무지랭이 아낙 하나 살고 있다./ 늦저녁이면 마실 나온 동네 엄니들과/ 뒤란 평상에서 풋콩 같은 달을 키우는/ 도란도란 수다가 넝쿨스럽게 자랄 무렵/ 담장 밑 수국꽃이 푸루스름하게도 벌어지는데/ 지치지도 않았다. 힘들지도 않았다./ 갑상선이 부어올라도 밭일을 줄이지 않았다./ 여그저그 보내고 나면 내 것은 별 것 없어야.”

위 시는 ‘푸른 간장’의 일부분이다. 시인의 말대로 작품은 “갑상선이 부어올라도 밭일을 줄이지 않”고 “여그저그 보내고 나면 내 것은 별 것 없”는 어느 순정한 촌부의 삶을 형상화했다. ‘무지랭이 아낙’이 보여준 아낌없는 삶, 타자를 위한 이타심은 남도 서정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다.

학교에서 퇴직한 지 얼마 안 된 시인은 아침마다 집 앞 푸른길을 1시간씩 걸으며 새로운 시상을 가다듬는다. 사회적 압박을 벗어난 홀가분함을 당분간 누리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는 “최소 두 권 정도의 시집을 더 발표하고 싶다”며 “하나는 전남대 시절 80년 5월 전후를 초점으로 한 작품, 다른 하나는 깊은 수렁처럼 돼가는 분단 상황을 아파하며 이겨내는 시들을 창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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