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 권리 보장에 대한 단상 -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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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추급권’(追及權·resale right)이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문화예술계에서 통용되는 용어로 “권리의 목적물이 여러 번 옮겨져 누구에게 가 있더라도 이것을 추급하여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한다. 부연하자면 미술품이 재판매될 때 이를 창작한 작가가 재판매 금액 일부를 보상받을 수 있는 권리다.
지난 6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미술진흥법’ 제정안 가운데 추급권에 관한 내용이 있다. ‘재판매보상청구권’으로도 불리는 추급권은 작가가 최초 판매 후 추가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일정 부분 원작자의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작가 생존 기간과 사후 30년간 존속하며, 작가가 사망한 경우에는 법정상속인이 행사할 수 있게 했다.(추급권 도입은 공포 후 4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된다) 해외에서는 100년 전부터 화가에게 일부 보상의 권리가 주어지는 추급권을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는 1920년 세계적인 거장인 고흐, 세잔 등의 그림이 고가에 거래됨에도 정작 화가와 유족들은 빈곤을 면치 못하는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제도를 도입했다.
지상에 방 한 칸 없었던 이중섭
추급권이 담긴 미술진흥법의 국회 통과와 맞물려 불현듯 떠오른 이가 화가 이중섭(1916~1956)이다. 이별과 곤고, 병마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살랐던 이중섭은 가난한 예술가의 대명사다.
“선량한 우리 네 가족은 세상에 소용없는 하나 둘 정도 죽여서라도 반드시 살아가야 하오. 무작정 미안하다, 면목 없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런 말은 우리 가족이 하루에 한 끼만 먹더라도 생활을 시작한 다음의 문제가 아닌가요. 하루라도 빨리 우리가 생활할 수 있는 단칸방이라도 하나 빌려 하루에 한 끼를 먹더라도 생활을 시작한 다음 열심히 일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 빨리 은혜를 갚아야 하지 않겠소.”
몇 해 전 제주도 출장길에 들렀던 이중섭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과 삶, 그리고 부인에게 썼던 편지를 접했다. ‘이중섭 편지’(현실문화)에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단칸방’과 ‘한 끼’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이중섭은 6·25 전쟁으로 제주에 피란을 왔을 당시, 가족과 함께 잠시 남의 집에 머물렀다. 그곳은 고작 1.4평에 지나지 않은 초가집에 딸린 공간으로 방이라 말하기에도 무색할 만큼 비루했다.
그 감옥 같은 곳에서 작가가 감내해야 했을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한 여인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로 식솔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 이중섭이 견뎌야 했던 삶의 무게와 고뇌는 상상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단칸방이라도 하나 빌려 하루에 한끼를 먹더라도”라는 표현에선 삶의 숭고함과 버거움이 동시에 읽혀진다. 이중섭이 자주 그렸던 순정하면서도 강렬한 황소의 눈망울은 어쩌면 일본으로 떠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인지 모른다.
지난 7월에는 ‘불공정 계약’과 관련해 의미있는 조치가 내려져 문화예술계의 이목을 끌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의 캐릭터 업체에 불공정행위를 중지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린 것이다. 일명 ‘검정고무신’ 사건은 지난 3월 이우영 작가가 캐릭터 대행사 측과 저작권 소송을 벌이던 중 세상을 떠나면서 세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예술가 생존권은 ‘공정’의 문제
문체부는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예술인권리보장법) 위반 사항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4개월 만에 결론을 내렸다. 그 결과 미 분배된 수익을 공동 작가(고 이우영·이우진)에게 지급할 것과 불공정한 내용이 포함된 계약 내용 등을 변경할 것을 명령했다. 이번 사건은 만화계의 불공정한 계약 문제를 수면으로 끌어올렸으며, 이와 맞물려 원작자 권리의 중요성도 환기했다.
앞서 언급한 미술진흥법의 ‘추급권’이나 만화계의 ‘불공정 계약’은 ‘공정’의 문제와 직결된다. 요즘처럼 ‘공정’이라는 말이 전가의 보도처럼 전 영역에 걸쳐 쓰이는 때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불공정함을 반증하는 것일 터인데, 중요한 것은 공정과 상식을 구호가 아닌 ‘인간 존엄’의 차원에서 접근했으면 한다.
우리 사회는 ‘예술가는 가난하다’, ‘궁핍 속에서 예술은 꽃 핀다’는 말과 같은 왜곡된 이데올로기를 예술가들에게 은근히 강요하거나, 그러한 풍조에 암묵적으로 동조해왔던 게 사실이다. ‘지상에 방 한 칸’ 남겨두지 못하고 외로움과 병마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이중섭과 같은 이가 다시 나와서는 안 된다. 예술가들에게 합당한 권리와 생존권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공정’이 아닐까 싶다.
추급권이 담긴 미술진흥법의 국회 통과와 맞물려 불현듯 떠오른 이가 화가 이중섭(1916~1956)이다. 이별과 곤고, 병마 속에서도 예술혼을 불살랐던 이중섭은 가난한 예술가의 대명사다.
“선량한 우리 네 가족은 세상에 소용없는 하나 둘 정도 죽여서라도 반드시 살아가야 하오. 무작정 미안하다, 면목 없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런 말은 우리 가족이 하루에 한 끼만 먹더라도 생활을 시작한 다음의 문제가 아닌가요. 하루라도 빨리 우리가 생활할 수 있는 단칸방이라도 하나 빌려 하루에 한 끼를 먹더라도 생활을 시작한 다음 열심히 일해서 조금씩 안정을 찾아 빨리 은혜를 갚아야 하지 않겠소.”
몇 해 전 제주도 출장길에 들렀던 이중섭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과 삶, 그리고 부인에게 썼던 편지를 접했다. ‘이중섭 편지’(현실문화)에는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단칸방’과 ‘한 끼’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온다. 이중섭은 6·25 전쟁으로 제주에 피란을 왔을 당시, 가족과 함께 잠시 남의 집에 머물렀다. 그곳은 고작 1.4평에 지나지 않은 초가집에 딸린 공간으로 방이라 말하기에도 무색할 만큼 비루했다.
그 감옥 같은 곳에서 작가가 감내해야 했을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한 여인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아버지로 식솔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으로 이중섭이 견뎌야 했던 삶의 무게와 고뇌는 상상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단칸방이라도 하나 빌려 하루에 한끼를 먹더라도”라는 표현에선 삶의 숭고함과 버거움이 동시에 읽혀진다. 이중섭이 자주 그렸던 순정하면서도 강렬한 황소의 눈망울은 어쩌면 일본으로 떠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것인지 모른다.
지난 7월에는 ‘불공정 계약’과 관련해 의미있는 조치가 내려져 문화예술계의 이목을 끌었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1990년대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의 캐릭터 업체에 불공정행위를 중지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린 것이다. 일명 ‘검정고무신’ 사건은 지난 3월 이우영 작가가 캐릭터 대행사 측과 저작권 소송을 벌이던 중 세상을 떠나면서 세간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예술가 생존권은 ‘공정’의 문제
문체부는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예술인권리보장법) 위반 사항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4개월 만에 결론을 내렸다. 그 결과 미 분배된 수익을 공동 작가(고 이우영·이우진)에게 지급할 것과 불공정한 내용이 포함된 계약 내용 등을 변경할 것을 명령했다. 이번 사건은 만화계의 불공정한 계약 문제를 수면으로 끌어올렸으며, 이와 맞물려 원작자 권리의 중요성도 환기했다.
앞서 언급한 미술진흥법의 ‘추급권’이나 만화계의 ‘불공정 계약’은 ‘공정’의 문제와 직결된다. 요즘처럼 ‘공정’이라는 말이 전가의 보도처럼 전 영역에 걸쳐 쓰이는 때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불공정함을 반증하는 것일 터인데, 중요한 것은 공정과 상식을 구호가 아닌 ‘인간 존엄’의 차원에서 접근했으면 한다.
우리 사회는 ‘예술가는 가난하다’, ‘궁핍 속에서 예술은 꽃 핀다’는 말과 같은 왜곡된 이데올로기를 예술가들에게 은근히 강요하거나, 그러한 풍조에 암묵적으로 동조해왔던 게 사실이다. ‘지상에 방 한 칸’ 남겨두지 못하고 외로움과 병마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이중섭과 같은 이가 다시 나와서는 안 된다. 예술가들에게 합당한 권리와 생존권을 부여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답해야 할 ‘공정’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