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의 숨통이 막혀 가고 있다 - 윤영기 체육부장·편집부국장
2023년 08월 01일(화) 23:00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7월 하순 광주시 광산구 광주교육시민협치진흥원 설립 추진단에 들렀다. 최근 절명한 초등학교 교사를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된 한편에는 메모지에 쓴 글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고통에 공명하는 교사들의 깊은 연대가 만가(輓歌)를 대신하고 있었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분노 가득찬 목소리도 있었다.

“그 자리에 누가 있어도 겪었을 일이기에 더욱 마음 아프고 참담하게 느껴집니다.” “신규 교사였을 때 1학년을 맡았던 저로서는 얼마나 힘들었을지,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나 일수도 있었던 당신, 선생님이 이제 곧 나입니다.”

추모의 벽면을 채운 교사들의 메모지 사이에 시민의 글은 보이지 않았다. 찾아오는 학부모도 없었다. ‘금쪽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 교사에게 ‘금쪽’ 같은 대접을 요구했던 부모의 외면. 교육 주체인 학생·학부모·교사가 함께 애도하지 않는 죽음. 한 교사를 사지로 몰아넣은 우리 자화상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의 절명이 사적인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악성 민원에 피폐해진 교단

교사의 심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사안은 단연 학부모 악성 민원이다. 요즘 교사는 스승은커녕 어른 대접도 받지 못한다. 아이 문제로 전화해 윽박지르고 욕설까지 내뱉는 이들이 숱하다. 툭하면 아동 학대로 고발하겠다고 몰아붙인다. 과장이 섞일 수 있는 금쪽이의 학교 불평과 하소연을 내가 당한 모욕인 양 격분한다. 최근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 설문 조사 결과 99.2%가 ‘교권 침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학부모 악성 민원’(49%)이 1위였다. 악성 민원은 교단에서 ‘학습된 무기력’이 자라나는 토양이다. 학교에서는 ‘눈을 15도만 돌리면 아무일 없다’는 말이 진리다. 학생 일탈을 모른 체하면 부모에게 시달리고 고통받을 일 없다는 얘기다.

광주의 한 초교 교사는 지난해 6월 교실에서 싸움을 한 학생을 훈계하는 과정에서 ‘아동 학대를 했다’는 혐의로 고소당했다. 광주지검이 지난 4월 무혐의 결정을 내리자 부모가 고검에 항고했지만 그마저도 최근 무혐의 결론이 났다. 그가 당한 고초를 가늠해 보기 위해 만남을 청했으나 “그 일을 떠올리면 상처와 고통이 되살아난다. 지금도 약을 먹고 있다”며 양해를 구했다. 해당 교사는 사실상 1년 동안 수형 기간을 견뎠다. 형벌보다 더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아동 학대로 신고되면 교사는 학생과 분리 조치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직위 해제된다. 교사에게 치명적인 교권 박탈이다. 한 원로 교사는 “남도 아닌 내가 가르치는 학생 일로 부모에게 고소당하면 배신, 모멸, 자괴감이 형언하기 힘들 정도다. 제자들을 예전과 같이 웃는 낯으로 가르칠 수는 없다. 평생 상처로 남는다”고 토로했다.

교사들은 극한 감정 노동에 시달린다. 말이 쉽지 제자의 학생부에 교권 침해를 적는 게 결코 간단하지 않다. 학교 폭력 사건도 마찬가지다. 스승으로서 제자를 가·피해자로 나누는 일은 그 자체가 아픔이다. 학생부에 학폭 사실을 기록하는 것도 밤을 새워 고민할 문제다. 제자 인생에 걸림돌이 될 주홍 글씨를 새겨 넣는 일이 쉬울까. 교사들이 제발 가르치는 일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소연하는 이유다.



교사 고충 이해하는 연대 절실

교육부와 정치권은 교권 강화를 위해 각종 법령을 손질하겠다고 설레발이다. 교사를 범죄자로 몰아세우는 아동 학대 처벌법을 손질하는 등 제도 보완은 시급하고 절실하다. 하지만 교권 침해 행위를 학생부에 기록하도록 명문화하고 학생 인권 조례를 개정하는 사안은 신중해야 한다. 교단에서조차 논란이 적지 않다. 교권 침해 행위를 학생부에 기록하면 전철을 밟을 우려가 농후하다. 학교 폭력 학생부 기재 이후 학부모와 교사 간 법적 분쟁이 늘어난 전례가 말해 준다. 결국 교사를 상대로 한 법적 분쟁은 그치지 않고 법률 시장만 키울 것이다.

학생을 ‘통제의 대상’이 아닌 존엄한 인격체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학생 인권 조례는 부정할 수 없는 가치를 품고 있다. 교권과 적대적 시각에서 학생인권 조례를 바라보고 뜯어고치겠다는 윤 정부의 발상은 일차원적이다. 학생 인권 신장이 교권 침해의 본질이라는 주장도 전적으로 옳지는 않다. 논란을 예비한 사안인 만큼 공론화 과정을 거치는 등 절차와 시간이 필요하다. 우선 발화점 높은 이슈보다 현장에서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소박한 일부터 찾아서 하는 게낫났다.

교사가 가르치는 죄로 목숨을 내놓는 세상이다. 이제 바꿔야 한다. 그 변화의 힘은 우리의 깊은 공감과 연대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숨진 교사는 “숨이 막혔다. 밥을 먹는데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흐를 뻔했다”고 일기장에 적었다. 그 마음을 읽어 내는 데서 교단 문제에 접근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지금 선생님들의 숨결이 가늘어지고 있다.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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