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통령이 묘역 찾은 열사 3명은 고교생·행불자·시민군
“조국이 날 불러요” 학생 전영진
도청앞 총맞고 행불뒤 찾은 김재영
최후항전 뒤 체포돼 구금 정윤식
2023년 05월 18일(목) 20:15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끝난 뒤, 전영진 열사 묘지를 살펴보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제43주년 5·18민주화운동 정부기념식이 끝난 뒤 윤석열 대통령이 둘러본 전영진, 김재영, 정윤식 3명의 열사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 대통령은 18일 기념식을 마치고 5·18민주화운동 3개의 공법단체장과 보훈처장, 국립5·18민주묘지소장, 유가족 안내를 받으며 열사들의 묘소를 참배했다.

이후 윤 대통령은 바로 돌아가지 않고 유영봉안소를 추가로 둘러봤다.

윤 대통령이 첫 번째로 들린 전영진(18·1980년 당시 대동고 3학년) 열사는 ‘조국이 나를 부른다’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하다.

1980년 5월 20일 전 열사는 신군부의 휴교령으로 학교를 가지 않는 대신 공부를 하기 위해 책방에 문제집을 사러 나갔다가 5·18에 휘말렸다. 길에서 마주친 계엄군이 다짜고짜 전 열사를 붙들고 구타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놀란 마음에 집으로 돌아왔으나, 분이 쉽게 풀리지 않아 시위에 참가하려 했지만 모친의 완강한 반대로 20일 하루를 집에서 보냈다고 한다.

다음날인 21일 일찍 밥을 먹은 그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조국이 나를 부른다”며 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옛 전남도청으로 향했다가 계엄군이 쏜 총에 의해 숨졌다.

뒤늦게 아들을 찾아 나선 전 열사의 모친 김순희씨와 아버지 전계량씨는 사망소식을 듣고 광주 시내 병원을 뒤졌으나 찾을 수 없었다. 다음날이 돼서야 전 열사가 기독교병원 영안실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전 열사의 부친은 아들의 죽음을 규명하고 광주시민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유족회 회장직을 맡는 등 투쟁에 앞장섰다.

윤 대통령이 두 번째로 발길을 옮긴 곳은 김재영 열사(17)의 묘역이었다.

김 열사는 42년 동안 행방불명자였다가, 지난해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이름 없이 묻혀있던 무명열사가 김 열사인 것을 확인했다.

김 열사는 행방불명자 명부에 고아로 표기돼 있어 그동안 유전자정보가 없었지만, 조사위에서 여동생을 찾아 유전자를 채취하면서 신원이 밝혀졌다. 구두닦이를 하던 그는 1980년 5월 21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에 숨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정윤식 열사 묘역이다.

정 열사는 1980년 5월 26일 오후 6시께부터 옛 전남도청 정문 보초를 서다가 유혈진압에 나선 계엄군에 체포돼 구금됐다.

정 열사는 옛 전남도청에서 항쟁을 하고 있던 친구의 권유로 마지막 날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 체포됐다. 구금 102일 만인 같은 해 9월 5일 석방됐으나,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만 22세 나이로 숨졌다.

윤 대통령은 이날 유영봉안소를 들려 봉안소 내부도 둘러봤다.

묘역 참배 후 바로 이동을 하지 않고 봉안소 내부를 꼼꼼히 살펴본 것으로 전해졌다. 유영봉안소는 5·18묘역에 안장된 유공자들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외부 묘형은 우리나라 전통고분인 고인돌 형태를 응용한 참배시설이다.

/정병호 기자 jusb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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