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풍경, 책읽는 광주
2023년 04월 25일(화) 20:25
엊그제 중앙지를 펼쳐든 순간 ‘대문짝만하게’ 실린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책읽는 서울광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사진은 도심 한복판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진 시민들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올해로 28회째인 ‘세계 책의 날’(23일)을 기념해 서울시가 기획한 행사였다.

이날 드넓은 잔디광장에 돗자리를 깔고 앉거나 이동식 소파에 기대어 책을 읽는 이들의 모습은 한폭의 풍경화였다. 특히 한낮의 햇볕을 피하기 위해 펼친 형형색색의 파라솔은 미술관에 전시된 설치작품을 보는 듯 했다.

이번 행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유는 국내 최초의 매머드 ‘야외도서관’이었기 때문이다. ‘책의 날’을 기념해 서울시가 전국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오는 11월(매주 일요일)까지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을 ‘책읽는 광장’으로 조성하기로 한 것이다. 문화도시의 품격은 곧 시민들의 책읽기에서 나온다는 취지에서다.

사실, ‘책의 날’은 1995년 유네스코가 독서와 출판을 장려하기 위해 제정한 기념일이다. 4월23일로 정한 이유는 1616년 스페인작가 세르반테스와 영국의 셰익스피어 사망일이 겹친 데서 착안했다. 일각에선, 사랑하는 사람이 책을 사면 꽃을 선물하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세인트 조지의 날(4월23일) 전통에 따른 것이라는 설도 있다. 이유야 어쨌든,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삭막한 도심에 함께 모여 잠시 스마트폰 대신 책을 읽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신선한 충격이다.

마침 광주에서도 책의 날을 앞두고 다양한 이벤트가 열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세계와 문화를 잇는 책의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 지난 20일 ACC도서관을 찾은 시민들에게 책과 장미를 나눠주는 깜짝 행사를 개최했고, 광주 동구는 ‘책읽는 동구’를 내걸고 독서전문가, 주민, 사서 등을 대상으로 ‘올해의 책’ 후보 도서를 선정하기도 했다.

문득, ‘광주의 책읽기’가 궁금해진다.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창의력이 커져 건강한 공동체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래 국내외 도시들이 경쟁적으로 ‘한 도시 한 책읽기’ 등 다양한 독서 인프라를 통해 ‘북시티’를 지향하는 건 그런 이유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광주는 문화도시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독서 생태계가 빈약하다. 현재 지역에는 27곳의 공공도서관이 있지만 주로 열람실에 치중돼 있어 요즘 트렌드인 복합문화공간으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광주 곳곳에 둥지를 튼 ‘작은 도서관’ 역시 400여 개가 넘지만 내실 있는 운영이 이뤄지지 않아 ‘개점휴업’인 곳이 많다. 특히 2019년 광주시가 의욕적으로 ‘책읽는 도시’를 목표로 신설한 문화도시정책관 산하 ‘독서인문학진흥팀’은 이렇다할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30여 년을 책의 공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아온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최근 펴낸 ‘지혜의 숲으로’에서 새삼 책읽는 도시의 가치를 역설했다. “한 도시에는 고층건물도 있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술관과 극장, 도서관, 서점이다. 따뜻한 등불 아래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 이것이 한 도시의 문화와 정신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문화도시이자 인문도시를 지향하는 광주가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

<문화·예향국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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