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세상에 전하는 나무의 사랑과 위로,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
이난영 지음
2023년 03월 09일(목) 20:25
제목 때문에 먼저 시선이 가는 책이 있다. 저자보다도 책의 디자인보다도 제목이 주는 울림이 그 책을 선택하게 할 때가 있다.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는 시적인 제목이 눈에 띈다. 대부분 나무 하면 싱그러움, 초목의 무성함을 생각하기 십상이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의로움,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강인함을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무에서 어두움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 어두움을 본다는 것은 나무에 대한 애정은 물론 세상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는 것일 터다. 어두움을 보는 시선이 깊을수록 인식과 사유의 품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작가이자 행위예술가인 이난영의 ‘나무의 어두움에 대하여’는 나무가 품는 위로를 전하는 책이다. 저자는 나무의 어두움과 도시의 그늘에 대해 이야기한다. 직접 쓰고 그린 글과 나무는 오랜 여운을 준다.

저자는 오래 전 어느 라디오에서 들은 말로 글을 시작한다.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이다”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깊이 뿌리를 내리고 수많은 생명을 품기 때문이다.

비바람이 세차게 부는 어느 날, 저자는 작은 새 한 마리가 나무의 어두움 속으로 날아드는 것을 본다. 새는 비를 피하기 위해 나무 품에 안겼다.

“아, 나무가 새들을 감쪽같이 보호해주고 있구나, 저 어둠이 새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구나. 그렇다면 우리도 더 어두워져도 괜찮겠구나.”

삶에 대한 통찰이 번뜩이는 문장이다. 나무의 어둠이 새들을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사유는 쉽사리 하기 어렵다. 저자의 글을 가만히 소리 내 읽다보면 가슴 한켠이 싸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비바람이 세차게 불던 날이었습니다./ 어디선가 황급히 새들이 날아와/ 나무의 어두움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아, 나무가 새들을 감쪽같이 보호해주고 있구나./ 저 어둠이 새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자는 도시 재개발 지역에 살면서 우리 주위의 생명체에 관심을 가졌다. 풀이며 꽃, 나무 그리고 다양한 식물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림과 글에 담았다. 척박한 환경을 딛고 꿋꿋이 자라나는 생명들을 책에 담으며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견지했다.

도시는 개발이라는 숙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도시의 성장은 그 이면에 쇠퇴와 빈 자리를 만들어낸다. 개발의 뒷면, 떠나고 남은 폐허의 자리에 작은 생명들이 자란다. 잘린 나무가 있으며 콘크리트 틈새를 비집고 나오는 이름 모를 풀들이 있다.

사람들은 나무를 통해 위안을 받고 미래의 희망을 찾기도 한다. <소동 제공>
저자는 제주도 비자림로 도로 건설로 숲이 파괴될 때도 그림으로 함께했다. 도로를 만들기 위해 숲을 지우려는 시도를 할 때 어떤 이들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나선다. 책에는 이들 활동가들의 모습도 그림으로 수록돼 있다.

저자는 호주머니 속에 씨앗을 넣고 만지작거리며 흥미롭고 재미있는 상상을 한다. 언제고 자신의 키보다 수십 배 크게 자랄 나무의 미래를. 그러면서 누구에게나 호주머니 속 씨앗이 있을 거라 말한다. ‘싹이 트고 가지가 자라고 아름드리나무가 되고 그러면서 쉼과 안식을 주는 나무’. 다음의 글은 유독 오랜 여운을 준다. “그렇게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나무가 자란다. 아름다운 나무 하나씩 마음속에 품는다면 살아갈 만하지 않을까.”

<소동·1만80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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