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고통을 함께 느낍니다’라는 말 한마디- 송기동 예향부장·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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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0월 열린 미국 대통령 출마 후보들의 2차 TV토론장. 한 여성이 후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국가 부채가 개인적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만약 없다면 어떻게 보통 사람들의 경제적 문제에 대해 치료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까?”
재선을 노리던 대통령 조지 H.W 부시는 “질문의 요점을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라고 되물었다. 이때 40대 젊은 후보이던 빌 클린턴은 이렇게 답했다.
“내가 아칸소 주지사를 할 때, 일자리를 잃고 대출금 이자를 갚지 못해서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많이 봤습니다. 나는 당신이 말씀하신 그 고통을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I feel your pain.)”
대형 참사 피해자 아픔 함께 나눠야
클린턴은 자서전 ‘마이 라이프’(물푸레)에서 이때 TV토론에 대해 “진짜 유권자들은 그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것들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면서 “나는 국민과 직접 접촉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들의 여과되지 않은 판단을 신뢰했다”고 술회했다.
구수환 (사)이태석재단 이사장은 최근 광주시 동구 산수도서관에서 열린 북 콘서트에서 미 대선 후보들의 일화를 들며 “‘I feel your pain’은 우리말로 하면 공감(共感) 능력이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 의견, 주장을 함께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공감 능력을 키우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북 콘서트에 앞서 다큐 ‘부활’이 상영됐다.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한 PD이자 분쟁 지역 종군기자를 지냈던 구 이사장이 이태석(1962~2010) 신부의 선종(善終) 10주기에 맞춰 제작한 다큐멘터리이다. 이 신부가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 뿌린 사랑의 씨앗들이 10년 후 어떻게 됐는지를 살핀다. 놀랍게도 나이 어렸던 제자들은 의사와 약사, 기자, 공무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특히 의대에 진학한 이 신부의 제자들은 스승의 뜻을 이어받아 주기적으로 한센인 마을을 찾아 의료 봉사를 펼치고 있었다.
다큐에서 생전의 이 신부가 한센인들을 스스럼없이 대하고 신발을 만들어 주던 모습이 눈길을 끈다. 병으로 인해 문드러진 그들의 발은 일반 신발을 신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신부는 종이에 한센인 한 명 한 명 일일이 발바닥 본을 뜬 후 개인 맞춤형 신발을 선물했던 것이다. 제자들 역시 의료 봉사를 하며 스승처럼 한센인들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한센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제자들의 자세는 스승인 이태석 신부 그 자체였다. 이 신부의 삶은 ‘섬김(Servent) 리더십’의 전형으로 꼽힌다. 공감과 경청, 소통, 봉사를 말이 아니라 몸소 실천했다.
지난 10월 29일 서울 한복판 이태원 골목에서 청년 세대 158명(외국인 26명 포함)이 압사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런데 참사 이후 사과 없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와 정부의 태도는 시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압사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게 하고 참사 대신 ‘사고’, 희생자 대신 ‘사망자’로 표기하도록 했다. 분향소에 영정 사진마저 올리지 못하도록 했다. 분노하는 유가족과 애도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읽지 못한 조치였다.
유가족들은 참사 42일 만인 지난 10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를 꾸렸다. 이태원 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했다. 유가족 동의를 받은 희생자 77명의 영정과 위패를 안치했다. 49재를 지낸 후 사흘이 지난 19일, 개인적으로 분향소를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가지고 와 달라”는 유족의 항의를 받고 방문 30초 만에 발길을 돌렸다.
대선 결과 뒤바꾼 ‘공감’ 능력
해법은 없는 걸까. PD시절 북유럽 정치를 깊이 있게 살펴본 구 이사장은 저서 ‘우리는 이태석입니다’(북루덴스)에서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받는 타게 엘란데르(1901~1985) 전(前) 총리의 자서전에 실려 있는 문구를 소개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찾아내야 한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귀담아 듣고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에 대해 구 이사장은 “국민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는 마음, 국민이 필요한 것을 해결하려는 노력, 이것이 23년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 구청장 등 지도자들의 입에서 “나는 당신의 고통을 함께 느낍니다”라는 말을 듣기 이리도 어려울까? 참담함과 비통함으로 가득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달래 주고, 함께 울어줄 진심어린 그런 말….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공감의 리더,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경청의 리더,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려는 소통의 리더, ‘섬김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법대로’가 아닌 ‘진정성’으로 다가서야 한다.
김용택 시인의 시 ‘울고 들어온 너에게’를 읽는다.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 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송기동 예향부장·편집국 부국장 song@kwangju.co.kr
“국가 부채가 개인적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만약 없다면 어떻게 보통 사람들의 경제적 문제에 대해 치료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까?”
재선을 노리던 대통령 조지 H.W 부시는 “질문의 요점을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라고 되물었다. 이때 40대 젊은 후보이던 빌 클린턴은 이렇게 답했다.
대형 참사 피해자 아픔 함께 나눠야
클린턴은 자서전 ‘마이 라이프’(물푸레)에서 이때 TV토론에 대해 “진짜 유권자들은 그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는 것들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면서 “나는 국민과 직접 접촉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들의 여과되지 않은 판단을 신뢰했다”고 술회했다.
다큐에서 생전의 이 신부가 한센인들을 스스럼없이 대하고 신발을 만들어 주던 모습이 눈길을 끈다. 병으로 인해 문드러진 그들의 발은 일반 신발을 신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신부는 종이에 한센인 한 명 한 명 일일이 발바닥 본을 뜬 후 개인 맞춤형 신발을 선물했던 것이다. 제자들 역시 의료 봉사를 하며 스승처럼 한센인들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한센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제자들의 자세는 스승인 이태석 신부 그 자체였다. 이 신부의 삶은 ‘섬김(Servent) 리더십’의 전형으로 꼽힌다. 공감과 경청, 소통, 봉사를 말이 아니라 몸소 실천했다.
지난 10월 29일 서울 한복판 이태원 골목에서 청년 세대 158명(외국인 26명 포함)이 압사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런데 참사 이후 사과 없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와 정부의 태도는 시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압사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게 하고 참사 대신 ‘사고’, 희생자 대신 ‘사망자’로 표기하도록 했다. 분향소에 영정 사진마저 올리지 못하도록 했다. 분노하는 유가족과 애도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읽지 못한 조치였다.
유가족들은 참사 42일 만인 지난 10일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를 꾸렸다. 이태원 광장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했다. 유가족 동의를 받은 희생자 77명의 영정과 위패를 안치했다. 49재를 지낸 후 사흘이 지난 19일, 개인적으로 분향소를 찾은 한덕수 국무총리는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가지고 와 달라”는 유족의 항의를 받고 방문 30초 만에 발길을 돌렸다.
대선 결과 뒤바꾼 ‘공감’ 능력
해법은 없는 걸까. PD시절 북유럽 정치를 깊이 있게 살펴본 구 이사장은 저서 ‘우리는 이태석입니다’(북루덴스)에서 스웨덴에서 가장 존경받는 타게 엘란데르(1901~1985) 전(前) 총리의 자서전에 실려 있는 문구를 소개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찾아내야 한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귀담아 듣고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에 대해 구 이사장은 “국민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끼는 마음, 국민이 필요한 것을 해결하려는 노력, 이것이 23년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장관, 구청장 등 지도자들의 입에서 “나는 당신의 고통을 함께 느낍니다”라는 말을 듣기 이리도 어려울까? 참담함과 비통함으로 가득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달래 주고, 함께 울어줄 진심어린 그런 말….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공감의 리더, 상대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경청의 리더, 분열과 갈등을 해소하려는 소통의 리더, ‘섬김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법대로’가 아닌 ‘진정성’으로 다가서야 한다.
김용택 시인의 시 ‘울고 들어온 너에게’를 읽는다.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엉덩이 밑으로 두 손 넣고 엉덩이를 들었다 놨다 되작거리다 보면 손도 마음도 따뜻해진다. 그러면 나는 꽝꽝 언 들을 헤매다 들어온 네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다.”
/송기동 예향부장·편집국 부국장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