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소리’도 듣는 자치단체장-김미은 문화부장·편집부국장
2022년 08월 23일(화) 23:00
전 세계 영화인의 축제 부산 국제영화제나 입지를 굳힌 부천·전주 국제영화제 개최 소식을 들을 때면 사돈이 땅을 산 것처럼 배가 아프다. 이들 영화제와 비슷한 시기에 출발했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사라져 버린 광주 국제영화제가 떠올라서다. 이후 광주 국제영화제 부활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들도 있었지만 아쉽긴 해도 이미 탄탄히 자리를 잡은 영화제가 여럿인 상황에서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래서 지난 2019년 강릉 국제영화제 개최 소식을 접했을 때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전 세계 네트워크를 자랑하는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진두지휘하는 행사라는 뉴스에 생뚱맞음은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시장 바뀌었다고 사라진 영화제

지난 7월 들려온 강릉 국제영화제 소식에 또 한 번 놀랐다. 새롭게 당선된 강릉시장이 개최를 불과 4개월 앞두고 영화제를 없앴다는 것이었다. 투자 대비 얻을 수 있는 효과가 적다는 점 등을 폐지 이유로 들었고, 30억 예산 중 27억을 회수해 출산 장려 정책에 사용한다고 밝혔다. 단 세 차례 치른 행사, 그것도 코로나19 등으로 제대로 치러 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영화제 폐지를 결정했다는 소식에 문화를 단순히 수익성이나 가시적 성과로만 따지는 저급한 인식을 본 듯해 씁쓸했다. 단체장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외국 영화인 초청 등 한창 준비중이던 행사가 갑작스레 사라져 버리는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코미디 같기도 했다.

강릉 소식을 들으며 문득 담양이 떠올랐다. 죽녹원, 담빛예술창고, 해동문화예술촌 등 핫 플레이스가 많은 담양은 생태와 문화라는 두 가지 테마로 이미지를 구축했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지난해부터 담양에 취재를 갈 때면 걱정의 목소리를 접했다. 새 단체장이 지금까지 진행돼 온 사업들을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점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선거 운동이 시작되자 더 자주 들렸다. 행여 전임 군수가 진행한 일이라는 이유로 신임 군수가 문화 비전이나 철학도 없이 무작정 기존 사업을 배척하거나, 기조를 흔들지도 모른다는 걱정과 우려였다. 선거가 끝나고 나서는 한때 특정 공간이 사라지거나 역할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지역에서 벌어지는 축제나 사업, 공간 조성 등이 자치단체장의 전유물이 아닐진대, 단체장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흔들려서는 안될 일이다.

강기정 광주시장이 취임한 지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복합 쇼핑몰 등 굵직한 현안들을 둘러싸고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문화 쪽에서 보자면 출발이 썩 매끄럽지는 않은 듯하다. 첫 단추를 잘 못 끼운 탓이다. 문화경제 부시장 선임을 둘러싼 잡음이 그것이다.

‘문화’와 ‘경제’를 아우르는 ‘문화경제 부시장’ 선임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지역문화단체의 성명서처럼 그래도 지금까지는 ‘최소한의 경력과 능력’은 고려한 인사였다. 주로 경제에 방점이 찍혀 아쉽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번 인선은 경제와 문화 어느 쪽에도 해당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또 지역 문화계의 반발을 산 문화정책관광실의 역할 축소도 ‘예술 관광’을 주된 도시 브랜드로 삼아 수많은 사업을 진행해 온 지금까지 정책을 퇴보시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하다.

광주시 산하 기관장 인선 제대로

지금 지역에서는 광주신용보증재단 등 산하 기관장 공모를 앞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문화계에서는 오는 9월 중순 임기가 끝나는 광주시립미술관장을 둘러싸고 많은 말들이 오간다. 지난달부터 현역 작가들이 강력하게 의견을 피력하며 시장과 선을 대려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특히 며칠 전부터 기획자 출신의 A씨 내정설과 추천자 이름 등 구체적인 팩트가 떠돌았고, 문화계는 ‘그의 전력’을 거론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일단 시는 A씨 내정설을 부인한 상태다. 어느 자리든 ‘내정설’은 능력 있는 적임자 발탁에 스스로 족쇄를 채우는 바보 같은 짓이다. 들러리로 공모에 응할 능력자는 없기 때문이다.

새 수장의 첫 인사가 중요한 건 자치단체장의 비전이나 정책, 운영 스타일, 기질 등을 가늠해 볼 수 있어서다. 앞으로 이어질 산하기관 단체장 공모에서 이번 부시장 인선 과정 중 보여 준 막무가내식 선정이 이어지면 곤란하다.

자치단체든 회사든 CEO가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조합하고 선택하는 능력이다. 기분은 좋지 않겠지만 싫은 소리, 반대 의견도 가감 없이 듣는 게 필요하다. 백날 ‘우리 편’ 이야기만 들어서는 소용이 없다. 지지율이 20%대까지 추락한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자치단체장이라고 모든 걸 알 수는 없다. 귀를 활짝 열고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 여러 의견 가운데 옥석을 가려 정책에 반영하는 것, 적재적소에 사람을 기용하는 것 그게 바로 단체장의 능력이다.

모두 알겠지만, 우리편 이야기만 듣는 것만큼 무서운 건 ‘모두가 입을 다무는 것’이다.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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