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학의 연구와 진흥-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우석대 석좌교수
2022년 07월 25일(월) 00:45
기호학파와 영남학파는 오래 전부터 학파의 지위를 얻어 연구와 진흥이 진행되었다. 불행하게도 호남학은 학파의 지위도 얻지 못했고 연구와 진흥도 활발하게 진행되지 못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이에 뜻있는 사람들은 마음 아파하고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십수 년 전의 일이다. 애를 태우던 상당수의 뜻있는 사람들이 어려운 형편에도 100만 원 이상씩을 출연하고 법인까지 조직하여 그 일을 추진하느라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필자는 초창기 한국학 호남진흥원 설립추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마침내 광주시의회에서 조례가 통과되어 일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되었고, 전남도는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는 형편에 있었다. 그 무렵 새로운 도지사가 취임하면서 활기를 되찾게 되자, 나는 전남지사를 찾아가 면담하여 호남학 연구와 진흥에 지사의 동의를 얻어내 일이 신속히 진행되기에 이르렀다. 광주와 전남에서 활발하게 일이 추진되자, 나는 전라북도 도지사를 찾아가 면담을 통해 강력히 함께 일하기를 요청하였다. 처음에는 약간 동의를 하는 것 같았으나 두 번째 방문 때는 함께 참여하지 못하겠다고 말을 끊었다. 실무자들이 가고 오면서 추진하던 일이 지사의 거절로 끝내 좌절되고 말았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수년 동안 추진하던 일이 멈추게 되자 그 이상 마음 아픈 일이 없었다. 민간 차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고 지방정부의 협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어서 낙망이 매우 크지 않을 수 없었다.

호남학이기 때문에 전라북도가 빠진 학문 연구는 반쪽 연구에 지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일을 그냥 접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선 후일을 약속하면서 광주와 전남이라도 힘을 합해 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여, 마침내 ‘한국학호남진흥원’이라는 특수 법인이 설립되었다. 전남도의 유휴 공간인 옛 전남도 공무원교육원 청사 내에 사무실이 마련되어 호남학 연구와 진흥의 일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것만이라도 다행한 일이지만, 이렇게 그냥 두고는 절대로 안될 일이다. 전라북도가 함께 사업에 동참하지 않고는 ‘호남학’이라는 명칭이 어색한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로 전북도지사에 새로운 분이 취임하였다. 나는 그 일에 마음을 놓지 않고 있던 터여서 새로운 지사가 탄생하자 곧바로 전주에 내려가 당선자를 만나 긴긴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나뉨은 아주 근대의 일이고, 남북의 갈라짐 없이 얼마나 오랫동안 전라도라는 이름으로 지역의 문화와 학술이 발달했으니 ‘호남학’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당연히 전라북도가 함께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지사 당선자가 흔쾌히 찬성하면서 여러 절차가 따르겠지만, 광주·전남과 함께하는 호남학 연구에 동참할 의사가 있다고 답변해 주었다. 일이 이렇게 풀리게 되었다.

전라북도는 도민들 의견도 수렴하고 도의회의 협조를 받아 조례도 통과시켜야 하는 지난한 일들이 있겠지만, 지사의 결심이 확고한 이상 이제 해결의 실마리는 찾았다고 본다. 호남 성리학의 큰 학자는 태인에서 살았던 일재 이항(李恒) 선생이다. 그분이 빠지고 호남 성리학 이야기가 되겠는가. 호남의 3대 천재라던 조선 후기의 3대 실학자는 여암 신경준, 존재 위백규, 이재 황윤석인데, 여암과 이재는 바로 순창과 고창의 전북 출신이 아닌가. 전북을 빼고 호남 실학이 이야기라도 되겠는가. 조선 유학의 최후의 변화는 동학과 한말 의병운동에서 발산했다. 전북의 동학이 빠지고 호남학이 정립되겠는가. 이제 이런 진보적이고 긍정적인 유학의 발전은 전남·전북이 함께할 때에만 가능해진다. 전라도가 호남이니, 이름도 ‘호남학 연구진흥원’으로 바꿔 본격적으로 기호학이나 영남학에 대등한 수준으로 정립되어야 한다.

이런 수준에 이르러, 의리(義理)를 숭상하여 국난에 몸을 던져 조국을 구해 냈던 호남 정신을 호남 유학에서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유학이 본래의 사명으로 여겼던 충효의 이념으로 발전해, 임란·병자호란 당시 호남인의 투혼, 동학과 호남 항왜 의병정신이 3·1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4·19혁명에서 5·18민주화운동에 이르는 호남 학술사와 운동사가 정리되어 전남·전북의 틈새를 막아서 언제나 함께 가고 함께 운동하는 세상을 지켜 가야 한다. 3개 시도 실무자들은 하루빨리 만나 실무적인 합의를 통해 가칭 ‘호남학 연구진흥원’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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