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의 품격은 말과 글에서 나온다
장필수 편집부국장·제2사회부장
2022년 01월 18일(화) 23:10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했다. 중국 당나라는 관리를 등용하면서 이를 기준으로 삼았다. 무려 1400년 전부터 인물을 판단할 때 써 온 네 가지 표준이 바로 신언서판인 것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풍모에 기품이 있고(身), 말을 잘하며(言), 글을 잘 쓰고(書), 판단력(判)이 좋아야 한다.

이는 시대가 변한 요즘이라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인이나 기업인 등 사회 지도층에겐 특히 말하기와 글쓰기 능력인 ‘언’(言)과 ‘서’(書)가 중요하다. 이는 단순히 번드르르하게 말을 잘하는 것과 유려하게 글을 잘 쓰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대중과의 소통이다.



정용진의 ‘멸공’과 윤석열의 ‘멸콩’



그런 만큼 리더의 품격은 말과 글에서 나온다고 할 것이다. 최근 정치권과 경제계에서 두 명의 리더가 품격 없는 말과 글로 구설수에 올랐다. 특히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는 대권가도에 나서면서부터 정제되지 않는 말로 물의를 빚곤 했다. 얼마 전에는 이재명 후보를 ‘확정적 중범죄자’라며 ‘같잖다’는 말까지 했다. 정부 여당을 ‘무식한 삼류 바보들’이라거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향해 ‘미친 사람들’이라는 막말을 쏟아내기도 했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라는 말인데 하이데거의 기준으로 보면 과연 그가 대통령 후보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경제계에선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말과 글이 논란이 됐다. 정 부회장은 재벌가 2~3세 중에서도 SNS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77만 명을 보유할 정도로 인플루언서이기도 하다. 지난해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세월호 추모 글을 희화화하더니, 빨간 피자회사 모자를 쓰고 찍은 사진을 올리며 붙인 ‘공산당이 싫어요’ 해시태크로 논란을 촉발시켰다. 또한 새해 들어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이 들어간 기사에 ‘멸공’을 붙였다가 외교 분쟁 우려 지적에 일단 삭제했지만 파장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신세계그룹 제품 불매운동이 일었고 계열사 주가가 급락했다. 급기야 이마트 노조가 정 부회장을 향해 “멸공도 좋지만 본인이 해 온 사업을 먼저 돌아보라”며 ‘오너리스크’를 우려하는 성명을 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정 부회장은 사과문을 올렸지만, 그가 최근 경제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오너리스크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멸공 논란을 계기로 광주신세계와 정 부회장의 관계가 재소환되고 있다. 정 부회장이 광주신세계의 최대주주가 되는 과정부터 지난해 9월 매각하고 떠나기까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정 부회장은 1998년 신세계의 100% 자회사이자 독립법인인 광주신세계 지분 83%를 41억 원에 매입해 최대주주가 됐다. 이 과정에서 신세계의 오너 밀어 주기 의혹이 일었다. 당시 광주신세계는 유상증자를 했는데 모회사인 신세계가 증자 참여를 포기하는 대신 정 부회장 개인이 받아 가게 한 것이다.



소통 중요하지만 분열 조장은 안 돼



정 부회장은 지난해 9월 자신의 광주신세계 지분을 신세계에 2280억 원에 넘겨 23년 만에 무려 54배의 수익을 냈다. 신세계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얹어 시가보다 20% 비싸게 정 부회장의 주식을 사 주었다. 반면 정 부회장이 광주신세계 지분을 처분한 후 주가는 30% 가까이 폭락해 결국 주주들만 피해를 떠안았다.

광주신세계는 매년 수백억 원의 이익을 내는 알짜 기업이라 지역민들도 소액주주로 많이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대주주만 이익을 챙기고 주가 하락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소액주주들에게 돌아가면서 투자자들이 오너리스크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 부회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의 저평가)의 원인을 북한에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재벌기업의 불투명한 지배구조를 원인으로 지적한다. 책임 있는 리더라면 그가 몸담고 있는 직원들의 지적처럼 지금까지 그가 사업가로서 걸어 온 발자취를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대중과 소통한다는 이유로 SNS에 분열을 조장하는 글을 올리는 것은 품격 있는 리더의 모습이 아니다. 정용진의 ‘멸공’에서 시작돼 윤석열의 ‘멸콩’으로 이어진 논란을 보면서 리더의 말과 글의 중요성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bung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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