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기 체육부장] 학교폭력은 그동안 왜 묵인돼 왔을까
![]() |
유명 스타들이 과거 학교 운동부 시절 폭력을 자행했다는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 배구계에서 ‘쌍둥이 자매’ 이다영·이재영이 학폭(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돼 무기한 출장 정지 징계를 받은 게 시발탄이었다. 본인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축구 스타 기성용과 농구 스타 현주엽 등도 학폭 의혹이 제기됐다. 팬들의 의견은 갈린다. ‘왜 이제와서 지난 일을 들춰내는가, 잘나가는 꼴을 못 본다.” “용기를 낸 피해자를 2차 가해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나는 정확한 팩트를 전제로, 더 많은 폭로와 고백이 빗발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의 절규를 과거의 일이라 해서 그냥 덮고 지나가면 사회는 한 발짝도 진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학교 폭력 논란에서 아쉬운 대목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현재 학교 운동부를 다시 톺아보고 폭력을 근절할 방안을 찾아보자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원스포츠 문제의 중심에는 계급 폭력 구조가 있다. 요즘 회자되는 스포츠 스타들의 그것과 바탕이 같다. 이른바 높은 학년이 ‘깡패’고 계급인 세계다.
인간 존엄 바탕 학원스포츠 개혁을
“뭐 어때요? 나를 그렇게 괴롭혀도 잠깐이고, 나도 내 후배들 귀찮게 하면서 노는데요. 뭐… 짜증도 나고 기분 안 좋지만 선배들이 잔소리할 때나 2학년 1학년 모아 놓고 기합 주려고 해도 그냥 버틸 만해요. 코치님도 가끔 본인 어렸을 때 운동하던 얘기하면서 예전에 더 심했다고, 너희들은 깨끗하고 편하고 쉽게 운동하는 거라고 하던데요?”(‘고교 운동부 남학생의 학교폭력 경험 탐색’ 논문의 일부) 이쯤 되면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기 힘들다. 이런 환경에서 운동부 학생들을 앉혀 놓고 폭력 피해 설문조사를 하는 짓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몇 명 되지 않는 선수 모아 놓고 가해자를 찾아낸다며 설문조사 해봐야 결과는 뻔하다. 피해자가 곧장 드러나는데 누가 솔직히 설문에 응할까.
대입 체육 특기자 전형도 학생들의 인권을 위협하는 독소다. 한국 대학스포츠협의회 포털 사이트에는 유명 대학 체육 특기자 입학 자격을 다음과 같이 안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단체 구기 종목은 대한체육회 산하 가맹 경기단체가 경기 실적 증명서를 발급하는 전국 또는 국제규모의 대회에서 고등학교 재학 중 8강 이내에 입상한 자’로 제한하고 있다. 쉽게 풀자면 단체 종목에서는 자신이 속한 팀이 전국대회에서 8강 이내에 들어야 체육 특기자 전형에 지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오로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팀 성적을 우선하다 보니 개인은 무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학교 운동부 지도자의 권능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학생들의 뼈를 깎는 훈련과 훈련을 빙자한 ‘뺑뺑이’도 단련의 과정으로 묵인된다. 내 자식 좋은 학교 보내 프로 선수로 키우려는 부모는 당연히 ‘을’이 되고 감독은 ‘슈퍼 갑’이 된다. 사실상 경기 출전이나 진학 등 전권을 감독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전남체육회에서 자격 정지 징계를 받은 모 운동부 지도자는 합숙소(지금은 폐지됐다) 생활 10개월 동안 학생에게 14일 가량만 귀가를 허용했다. 미뤄 짐작하겠지만 부모가 무관심해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자식을 보는 일을 용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적 지상주의에 묻힌 개인의 인권
심지어 국가인권위 결정문을 살펴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한 학생이 일기장에 ‘야구부 활동 때문에 죽고 싶다’는 내용을 쓴다. 충격을 받은 담임 교사는 부모와 학교 고위 간부가 참석한 면담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부모는 지도자의 폭언과 인권 침해가 원인이었음에도 민원을 제기하거나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당황스럽지만 이게 현실이다. 감독이 성적과 진학을 빌미로 학생을 볼모로 잡고 부모까지 지배하는 구조를 깨지 않는 한 개선되지 않을 문제다.
우리 사회는 학교폭력 방지와 학생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많은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다. ‘아동복지법’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학교 체육진흥법’ ‘대한체육회 정관’ ‘대한체육회 스포츠 공정위원회 규정’ 등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왜 지도자들의 폭력과 폭언이나 학생 선수 간 폭력이 근절되지 않을까. 바로 법에서 촘촘히 규제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계급적 지배와 폭력 구조다. 인간 존엄을 해치는 계급 작동 원리를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는 한 학원 스포츠 개혁은 요원하다. 이제 인간 존엄을 중심에 두고 학원 스포츠를 개혁해야 할 때가 됐다.
/penfoot@kwangju.co.kr
“뭐 어때요? 나를 그렇게 괴롭혀도 잠깐이고, 나도 내 후배들 귀찮게 하면서 노는데요. 뭐… 짜증도 나고 기분 안 좋지만 선배들이 잔소리할 때나 2학년 1학년 모아 놓고 기합 주려고 해도 그냥 버틸 만해요. 코치님도 가끔 본인 어렸을 때 운동하던 얘기하면서 예전에 더 심했다고, 너희들은 깨끗하고 편하고 쉽게 운동하는 거라고 하던데요?”(‘고교 운동부 남학생의 학교폭력 경험 탐색’ 논문의 일부) 이쯤 되면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기 힘들다. 이런 환경에서 운동부 학생들을 앉혀 놓고 폭력 피해 설문조사를 하는 짓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몇 명 되지 않는 선수 모아 놓고 가해자를 찾아낸다며 설문조사 해봐야 결과는 뻔하다. 피해자가 곧장 드러나는데 누가 솔직히 설문에 응할까.
대입 체육 특기자 전형도 학생들의 인권을 위협하는 독소다. 한국 대학스포츠협의회 포털 사이트에는 유명 대학 체육 특기자 입학 자격을 다음과 같이 안내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단체 구기 종목은 대한체육회 산하 가맹 경기단체가 경기 실적 증명서를 발급하는 전국 또는 국제규모의 대회에서 고등학교 재학 중 8강 이내에 입상한 자’로 제한하고 있다. 쉽게 풀자면 단체 종목에서는 자신이 속한 팀이 전국대회에서 8강 이내에 들어야 체육 특기자 전형에 지원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오로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팀 성적을 우선하다 보니 개인은 무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학교 운동부 지도자의 권능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학생들의 뼈를 깎는 훈련과 훈련을 빙자한 ‘뺑뺑이’도 단련의 과정으로 묵인된다. 내 자식 좋은 학교 보내 프로 선수로 키우려는 부모는 당연히 ‘을’이 되고 감독은 ‘슈퍼 갑’이 된다. 사실상 경기 출전이나 진학 등 전권을 감독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전남체육회에서 자격 정지 징계를 받은 모 운동부 지도자는 합숙소(지금은 폐지됐다) 생활 10개월 동안 학생에게 14일 가량만 귀가를 허용했다. 미뤄 짐작하겠지만 부모가 무관심해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자식을 보는 일을 용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적 지상주의에 묻힌 개인의 인권
심지어 국가인권위 결정문을 살펴 보니 이런 일도 있었다. 한 학생이 일기장에 ‘야구부 활동 때문에 죽고 싶다’는 내용을 쓴다. 충격을 받은 담임 교사는 부모와 학교 고위 간부가 참석한 면담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부모는 지도자의 폭언과 인권 침해가 원인이었음에도 민원을 제기하거나 학교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당황스럽지만 이게 현실이다. 감독이 성적과 진학을 빌미로 학생을 볼모로 잡고 부모까지 지배하는 구조를 깨지 않는 한 개선되지 않을 문제다.
우리 사회는 학교폭력 방지와 학생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많은 제도적 장치를 두고 있다. ‘아동복지법’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학교 체육진흥법’ ‘대한체육회 정관’ ‘대한체육회 스포츠 공정위원회 규정’ 등 수없이 많다. 그럼에도 왜 지도자들의 폭력과 폭언이나 학생 선수 간 폭력이 근절되지 않을까. 바로 법에서 촘촘히 규제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계급적 지배와 폭력 구조다. 인간 존엄을 해치는 계급 작동 원리를 근본적으로 제거하지 않는 한 학원 스포츠 개혁은 요원하다. 이제 인간 존엄을 중심에 두고 학원 스포츠를 개혁해야 할 때가 됐다.
/penfoot@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