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행기 편집부국장 겸 정치부장] 코끼리가 된 기본소득
2021년 02월 24일(수) 06:00
요즘 정치권에 부는 기본소득 바람이 거세다. 처음 미풍처럼 불던 바람이 어느 순간 회오리로 변해 여의도를 집어삼키더니 이젠 태풍이 되어 온 나라를 휩쓸 태세다.

재산이 있든 없든 노동을 하든 말든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소득이 기본소득이다. 모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기본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수준의 생계비를 지급한다는 파격적이고 생경한 이 정책이 전 국가적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이는 1년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우리나라에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에는 ‘비주류의 급진적인 발상’쯤으로 폄훼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경기도에서 이 정책이 비록 부분적이긴 하지만 성공적으로 집행되면서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란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한 듯하다. 기본소득이 전 국가적 정책으로도 확대 적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는 점과 함께, 상당수 국민들이 이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로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고 일자리가 급감하면서, ‘누구에게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기본소득 열풍의 배경으로 풀이되고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새 복지 모델로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기본소득이라는 이슈가 대선의 승패를 가를 수 있는 강력한 ‘프레임’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고, 추이를 주목하는 모습이다. 최근 차기 대선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이재명 경기 지사가 기본소득을 공론화하는 데 올인하는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게다가 정세균 국무총리나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경수 경남 지사 등 또 다른 유력 대권 주자들이 이 지사에 대한 전방위적인 협공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정 총리는 최근 인터뷰에서 “지금은 재난지원금을 말할 때이지, 기본소득을 이야기할 타이밍이 아니다”라고 공격했다. 임 전 실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지금 우리 현실에서 공정하고 정의롭냐?”며 기본소득을 직격했다. 김 지사도 최근 “이 지사가 ‘기승전 기본소득’만 계속 주장하면 정책 논의를 왜곡시킬 우려가 있다”며 ‘포퓰리즘 공약’이라고 비판했다. 이낙연 대표 역시 “(기본소득을 할 경우) 지금 세금의 두 배를 거둬야 한다”며 “알래스카 빼고는 (기본소득을) 하는 곳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기본소득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점차 확산하면서 ‘사회적 안전판을 확보할 수 있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차기 대선 구도에서 이재명 경기 지사가 연일 부각되고 있는 것도 기본소득이라는 그의 ‘브랜드 정책’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떤 프레임을 부정하면 그 프레임이 활성화된다. 그리고 프레임은 자주 활성화될수록 더 강해진다. 이 사실이 정치 담론에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내가 상대편의 언어를 써서 그의 의견을 반박할 때,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상대편의 프레임이 더 활성화되고 강해지는 한편 나의 관점은 약화된다.” 인지언어학의 창시자 조지 레이코프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서론에 나오는 문장이다. 레이코프는 이 책에서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며, 프레임의 재구성은 사회 전체적인 ‘공적 담론’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내년 대선 승패 가를 강력한 프레임

이재명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전과 정책 경쟁 그 자체만으로도 환영한다”고 했다. 또한 “제가 이 훌륭한 정책 경쟁에 참여할 수 있어 뿌듯하다. 더 잘 다듬고 많이 듣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마도 이는 ‘자신이 주도하는 프레임이 공적 담론을 통해 강화되는 데 대한’ 뿌듯함일 수도 있겠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 순간 코끼리를 생각하게 되듯, ‘기본소득’이라는 단어 역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든 ‘사회복지 제도의 근본적 재구성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욕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점에서 기본소득은 대선 판을 뒤흔들 거대한 코끼리로 진화해 가고 있다. 대선을 1년여 남겨 놓은 지금, 잠룡들의 치열한 경쟁과 합리적 토론 그리고 사회 전체의 공적 담론을 통해, 포스트코로나 시대 우리 사회의 안전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강력하고 새로운 복지 모델이 마련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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