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식이법’은 지켜져야 한다
2020년 06월 10일(수) 00:00
[채 희 종 편집부국장·사회부장]
어린이들의 학교 앞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민식이법’이 시행 두 달을 넘기면서 상당수 운전자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교통사고 위험으로부터 어린이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법이라는 주장이 대세이긴 하다. 하지만 일각에서 강력한 처벌만을 내세운, 형평성에 어긋나는 악법(?)이라며 개정이나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민식이법은 지난해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아홉 살 김민식 군이 교통사고로 숨진 이후 제정된 법안으로, 올 3월25일 시행에 들어갔다.



학교 앞 어린이 안전 위한 법



이 법은 스쿨존에 과속 단속 카메라와 신호등 설치를 의무화하고 스쿨존에서 안전운전 의무 위반으로 어린이를 다치게 하거나 사망케 하는 경우 강력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특히 어린이 사망 시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며, 더불어 스쿨존에서의 주정차 위반 과태료는 현행의 3배인 12만 원으로 강화됐다.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들은 스쿨존에서 제한속도인 시속 30㎞ 이하로 서행하며 안전운전을 하더라도 불가항력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데도, ‘안전운전 의무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여기에 일부 출퇴근 운전자들과 버스·택시 운전사들은 운전 편의와 운행 수입을 감안, 등하교 시 이외에는 스쿨존 속도 제한(30㎞)을 풀어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아이들의 안전이라는 절대적 가치와 법·규제의 합리성 및 사회적 편익이 대립하는 대목이다. ‘움직이는 신호등’인 아이들의 안전을 위한 것인 만큼 민식이법에 ‘태클을 걸지마’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댓글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니 현장을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데스크를 맡고 있지만 현장에 나가 보기로 했다. 지난주 초 두 차례에 걸쳐 사건기자들로 하여금 등하교 시 스쿨존을 취재토록 했으며,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직접 초등학교 서너 군데를 돌아봤다.

등하교 시간대에는 대다수가 제한속도 30㎞를 지켰지만 아직 감시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위반하는 운전자들이 상당수였다. 또한 운전자 시야 확보를 위한 조치인 스쿨존 내 주정차 금지는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교사와 봉사자들이 주정차를 막았지만 학부모들은 막무가내였다. 내 자식만 안전하게 교문 앞에 내려 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급히 출근하는 탓이겠지만 스쿨존을 막 벗어난 곳의 횡단보도에서는 신호 대기 중인 차량을 향해 경적을 울려 대는 차량도 있었다.



문화초등학교 앞의 경우



취재 중 제보를 받고 간 광주 북구 문화초등학교 정문에서는 진풍경(?)을 목격했다. 이곳에선 오전 8시10분쯤이면 40m에 달하는 도로 전체가 일순간 ‘어린이전용 도로’로 바뀐다. 교사와 봉사자 10여 명이 정문을 중심으로 좌우 20m 구간의 도로를 막아 일시적인 인도를 만든 것이다. 어린이들은 차량 한 대 없는 도로를 안전하게 걸어 교문으로 들어갔다. 교직원들의 출근 차량과 학생들을 등교시키는 학부모 차량들은 모두 정문으로부터 20여m 떨어진 골목으로 우회하는 불편을 감내했다.

이 학교는 주택가에 위치한 탓에 주민들이 정문을 지나지 않고 출근하려면 수백m의 좁은 골목길을 한참 돌아야 하고, 등교시키는 학부모들도 같은 불편을 겪지만 불평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물론 수년 전 등하교 시간에 정문 앞을 처음 통제할 때는 항의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불편을 감수하는 어른들의 동참이 이어졌다고 한다. 이런 광경을 보니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떠오른다.

우리 국민 모두는 ‘코로나19’를 잘 이겨내고 있는 우리나라를 K방역의 선진국으로 자랑스러워한다. 구성원들이 자신의 편리와 권리를 양보한 대가로 모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있는 셈이다. 학교 앞 어린이 안전도 마찬가지다. 어린이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게 그 무엇이 있겠는가? 법률적 논리와 사회적 편익도 중요하지만 어린이의 생명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 어린이가 학교 앞에서 교통사고로 숨지는 뉴스를 이젠 그만 보고 싶다.

운전 중 불편은 견딜 수 있는 것이되, 아이의 목숨은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시행된 민식이법은 지켜야 한다. 다만 민식이법에 따른 안전한 운전문화가 정착되면, 법률적 논란에 대해서는 차후에 검토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문화초등학교에서처럼 교사·학부모·주민들까지 힘을 모아 어린이들의 안전을 지키는 모습을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채희종

편집부국장 겸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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