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정치, 다시 시작이다
2020년 06월 03일(수) 00:00
[임동욱 선임기자 겸 서울취재본부장]
지난달 30일 임기 4년의 21대 국회가 시작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 개막한 21대 국회의 최대 화두는 여야의 ‘협치’일 것이다. 코로나19 후폭풍으로 민생은 물론 경제 전반의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스템을 세우는 것은 정치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21대 국회는 이제 정쟁이라는 과거 문법에서 벗어나 양보와 설득, 타협과 협상을 통해 창조적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 협치를 지렛대로 ‘일하는 국회’를 만들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문을 열어 가야 한다. 위기의 시대에 ‘정치가 희망’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 첫걸음은 ‘미래를 위한 변화’가 될 것이다. 변화를 선점하지 못하는 정치는 결국 도태된다. 여야 모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걸맞은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과감한 변화와 도전 기대

호남 정치도 새로운 장정에 돌입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전면적인 세력 교체는 물론 실질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호남 민심의 선택은 냉엄했다. 박지원, 천정배, 박주선, 정동영, 유성엽 등 그동안 호남을 대표했던 중진들은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모두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들이 민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도 크지만 이미 그들의 시대가 저물었다는 것이 호남 민심의 판단으로 풀이된다. 국민의당에서 분열된 소수 야당인 민생당으로는 정권 창출 등 미래가 없다는 평가가 내려진 것이다. 또 선거 기간 동안 인물론 등도 부상했지만 호남 정치의 변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역대 총선에서 호남 민심의 ‘전략적 선택’은 정권 창출의 가능성에 집약됐다. 시대정신에 부응하고 정권 창출 능력이 있는 정당이나 인물을 선택해 왔다. 과거 노무현 바람, 열린우리당 바람, 국민의당 바람이 그러했다. 그런 측면에서 잠재적 대선 주자 하나 없이 지역당에 머문 민생당과 무소속 후보들의 전멸은 피할 수 없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판갈이를 마친 호남 정치가 당장 마주한 현실은 만만치 않다. 177석의 슈퍼 여당인 민주당에서 광주·전남 의석은 18석에 불과하다. 민주당 의석의 10%를 겨우 넘어선다. 전북까지 합친다 해도 28석이다. 유일한 3선인 이개호 의원이 최다선이다. 무려 27명이 초·재선 의원인 것이다. 눈에 띄는 정치적 스타성을 가진 인물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솔직히 말해,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복심이었던 박지원, 호남의 천재로 불리며 개혁의 상징이었던 천정배, DJ가 아꼈던 인물 박주선, 풀뿌리 정치의 대명사였던 주승용, 재정통이었던 장병완 전 의원 등 쟁쟁했던 인물들과 비교하면 대부분 정치적 중량감이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변방으로 밀린 호남 정치가 단시일 내에 제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21대 호남 국회의원들은 ‘변화’라는 역동성과 ‘호남’이라는 상징성을 토대로 과감한 ‘도전과 응전’에 나서야 한다. 그것만이 호남 정치의 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당내 질서에 순응하기보다는 지역을 뛰어넘고, 세대를 아우르며, 시대를 앞서가는 정치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현안에 대해 과감하게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시대적 과제를 푸는 입법 성과를 통해 호남 정치의 날을 세워야 할 것이다. 스스로를 증명해 가는 치열한 과정이 필요하다. 당장 8월로 예정된 민주당의 전당대회는 재선 이상의 호남 의원들에게 정치적 시험대가 될 것이다.



중량감 다소 떨어지지만

호남의 미래를 위한 전략적 결집도 필요하다. 호남의 정치적 역량 약화의 배경에는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중진들의 뿌리 깊은 반목과 갈등도 한 원인으로 꼽힌다. 따라서 정치적 세가 약한 현실에서 앞으로는 ‘원 팀’으로 뭉쳐 서로 밀고 끌어 주며 스스로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 현안을 풀어가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호남 정치’라는 단어는 정치권에선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군사정권 하에서의 차별과 고립을 뚫고 온몸으로 저항하며 민주주의를 지켜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정권 창출과 정권 교체를 이루고 민주·진보 진영의 심장으로 자리 잡았다.

반대로 ‘호남 프레임’은 현실적 장벽이기도 하다. 과거 호남 중진들이 여러 차례 도전했지만 뛰어넘지 못한 한계를 이제 호남의 정치 신인들이 한 걸음씩 나아가며 극복해야 한다.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다. 호남 정치가 마주한 현실에서는 더욱 실감 나는 말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과감하게 변화를 선점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호남의 정치인들이 21대 국회에서 폭넓은 연대와 용기 있는 도전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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