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간 딸을 배웅하던 부모님
노부부 모습 사진에 담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부성애
‘인생은 아름다워’의 부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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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기는 싫지만 친구들 만날 생각하니 좋아요.” 지난 4일 뉴스를 보다 픽 웃고 말았습니다. 생활방역 전환 관련 인터뷰에 응한 어느 초등학교 남학생의 말이었죠. 어서 빨리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놀고는 싶은데, 공부는 하기 싫은 ‘아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더군요. ‘아이는 아이구나’ 싶었습니다.
어제는 어린이날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겐 가장 큰 연례행사일 텐데 상황이 예전과 많이 달라 아쉬웠을 것 같아요. 어제 출근길, 더워진 날씨에 어른들도 참기 힘든데 마스크를 낀 채 자전거로 동네 공원을 가로지르는 아이들 모습을 보니 왠지 대견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푸른달’이라 명명한 5월은 가정의 달이자, 감사의 달입니다. 어버이날(8일)과 한부모 가족의 날(10일), 스승의 날(15일) 등이 이어져 있지요. 날을 정해 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바쁘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에겐 ‘이런 날’이라도 있어야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게 되고 안부 전화라도 드리게 되니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몇 장의 사진을 보며 울컥해지고 말았습니다. 어떤 외국인 노부부의 모습이 시간순으로 찍힌 사진이었습니다. 똑같은 장소에서, 비슷한 포즈로 촬영된 사진 속엔 27년의 세월이 담겨 있습니다.
노부부 모습 사진에 담다
주인공은 미국 사진작가 디에나 다이크만(Deanna Dikeman)의 부모입니다. 부모님 댁을 자주 방문했던 작가는 자신이 떠날 때마다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는 부모님을 1991년부터 앵글에 담기 시작합니다.
사진 속 부모님의 모습은 변해 갑니다. 얼굴의 주름은 깊어지고, 몸은 점점 쇠약해집니다. 하지만 딸과 손자를 배웅하는 모습만은 여전하죠. 스크롤을 내리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만 사진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2009년, 지팡이에 의지한 채 차고에 세워진 차에 기대어 손을 흔들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화면에서 사라집니다. 홀로 딸을 배웅하던 어머니도 어느 순간부터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방안에서 배웅하죠. 그리고 2017년의 마지막 사진은 ‘손 흔드는 이 없는’ 텅 빈 차고 앞모습이었습니다.
작가는 2018년 ‘헤어짐과 배웅’(Leaving and Waving)이란 이름의 전시회를 열어 감동을 전했습니다. 저처럼 인터넷으로 사진을 접한 이들도 “멀리 계신 어머니와 헤어질 때마다 마지막은 아닐까 해서 사진을 찍어 놓곤 한다”며 동감을 표하더군요.
가족 이야기를 담은 사진집으로는 ‘윤미네 집’도 인상적입니다. 성균관대 토목공학과 교수를 지낸 아마추어 사진가 고(故) 전몽각 선생이 1964년 큰딸 윤미가 태어나 시집가는 날까지 26년간 찍은 사진과 글을 엮어 1990년 펴낸 책입니다. 카메라가 귀했던 시절, 집안에 보물처럼 갖고 있던 수동 카메라를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안고, 업고, 뒹굴었고, 비비대었고 그것도 부족해서 간질이고, 꼬집고, 깨물어 가며 아이들을 키운’ 아빠의 사랑스러운 앵글이 잡아 낸 삼남매와 아내의 모습은 행복해 보입니다. 인형을 옆에 나란히 재우며 잠들어 있는 윤미, 막 태어난 갓난이 동생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뒷모습,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입학식에 참석한 모습 등은 윤미네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너무도 평범한 가족의 꾸밈없는 일상’을 담은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해 더 정감이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한때 헌책방에나 있는 보물 중의 하나로 구하기 힘들었지만, 발간 20년 만인 지난 2010년 윤미 씨가 재발행해 구입이 쉬워졌습니다. 인터넷에서도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 영화’로 꼽는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주연의 ‘인생은 아름다워’의 부성애도 떠올릴수록 마음이 아립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수용소로 끌려간 귀도와 아내 라도(베니니의 실제 아내), 아들 조슈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지요. 이 영화에서 정말 많은 사람을 울린 장면이 있습니다. 귀도는 아이가 수용소 생활을 마치 즐거운 놀이인 것처럼 즐기도록 하기 위하여 ‘아름다운 거짓말’을 이어 갑니다. 쓰레기통에 숨겨 둔 아이와 윙크를 주고받고, 아주 우스꽝스럽고 씩씩한 모습으로 병정놀이하듯 죽음의 장소로 걸어가는 귀도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왈칵 눈물을 쏟고 맙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부성애
1999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남우주연상, 음악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언제 봐도 감동을 줍니다. 아름다운 주제음악과 ‘호프만의 뱃노래’ 등 삽입곡들도 인상적이지요. 아직도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꼭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아마도 올해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도 예년과는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늘 자식 걱정인 부모님들은 당장 어버이날에 올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십니다. 만남이 조금 늦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부모님의 모습을, 아이의 모습을, 오랜만에 뵙는 스승의 모습을, 늘 가지고 다니는 휴대전화로 찍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족의 ‘전기’(傳記)가 된 ‘윤미네집’처럼, 나중에 이 사진들이 ‘나와 소중한 사람들’의 전기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김 미 은 편집부국장·문화부장 mekim@kwangju.co.kr
월간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푸른달’이라 명명한 5월은 가정의 달이자, 감사의 달입니다. 어버이날(8일)과 한부모 가족의 날(10일), 스승의 날(15일) 등이 이어져 있지요. 날을 정해 놓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가도 ‘바쁘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우리에겐 ‘이런 날’이라도 있어야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하게 되고 안부 전화라도 드리게 되니 고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노부부 모습 사진에 담다
주인공은 미국 사진작가 디에나 다이크만(Deanna Dikeman)의 부모입니다. 부모님 댁을 자주 방문했던 작가는 자신이 떠날 때마다 손을 흔들며 배웅해 주는 부모님을 1991년부터 앵글에 담기 시작합니다.
사진 속 부모님의 모습은 변해 갑니다. 얼굴의 주름은 깊어지고, 몸은 점점 쇠약해집니다. 하지만 딸과 손자를 배웅하는 모습만은 여전하죠. 스크롤을 내리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만 사진에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2009년, 지팡이에 의지한 채 차고에 세워진 차에 기대어 손을 흔들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화면에서 사라집니다. 홀로 딸을 배웅하던 어머니도 어느 순간부터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방안에서 배웅하죠. 그리고 2017년의 마지막 사진은 ‘손 흔드는 이 없는’ 텅 빈 차고 앞모습이었습니다.
작가는 2018년 ‘헤어짐과 배웅’(Leaving and Waving)이란 이름의 전시회를 열어 감동을 전했습니다. 저처럼 인터넷으로 사진을 접한 이들도 “멀리 계신 어머니와 헤어질 때마다 마지막은 아닐까 해서 사진을 찍어 놓곤 한다”며 동감을 표하더군요.
가족 이야기를 담은 사진집으로는 ‘윤미네 집’도 인상적입니다. 성균관대 토목공학과 교수를 지낸 아마추어 사진가 고(故) 전몽각 선생이 1964년 큰딸 윤미가 태어나 시집가는 날까지 26년간 찍은 사진과 글을 엮어 1990년 펴낸 책입니다. 카메라가 귀했던 시절, 집안에 보물처럼 갖고 있던 수동 카메라를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안고, 업고, 뒹굴었고, 비비대었고 그것도 부족해서 간질이고, 꼬집고, 깨물어 가며 아이들을 키운’ 아빠의 사랑스러운 앵글이 잡아 낸 삼남매와 아내의 모습은 행복해 보입니다. 인형을 옆에 나란히 재우며 잠들어 있는 윤미, 막 태어난 갓난이 동생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뒷모습, 처음으로 교복을 입고 입학식에 참석한 모습 등은 윤미네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너무도 평범한 가족의 꾸밈없는 일상’을 담은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해 더 정감이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은 한때 헌책방에나 있는 보물 중의 하나로 구하기 힘들었지만, 발간 20년 만인 지난 2010년 윤미 씨가 재발행해 구입이 쉬워졌습니다. 인터넷에서도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인생 영화’로 꼽는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주연의 ‘인생은 아름다워’의 부성애도 떠올릴수록 마음이 아립니다.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수용소로 끌려간 귀도와 아내 라도(베니니의 실제 아내), 아들 조슈아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지요. 이 영화에서 정말 많은 사람을 울린 장면이 있습니다. 귀도는 아이가 수용소 생활을 마치 즐거운 놀이인 것처럼 즐기도록 하기 위하여 ‘아름다운 거짓말’을 이어 갑니다. 쓰레기통에 숨겨 둔 아이와 윙크를 주고받고, 아주 우스꽝스럽고 씩씩한 모습으로 병정놀이하듯 죽음의 장소로 걸어가는 귀도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왈칵 눈물을 쏟고 맙니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부성애
1999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남우주연상, 음악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언제 봐도 감동을 줍니다. 아름다운 주제음악과 ‘호프만의 뱃노래’ 등 삽입곡들도 인상적이지요. 아직도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꼭 한 번 보시길 권합니다.
아마도 올해 어버이날이나 스승의 날도 예년과는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늘 자식 걱정인 부모님들은 당장 어버이날에 올 필요 없다고 이야기하십니다. 만남이 조금 늦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앞으로 부모님의 모습을, 아이의 모습을, 오랜만에 뵙는 스승의 모습을, 늘 가지고 다니는 휴대전화로 찍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가족의 ‘전기’(傳記)가 된 ‘윤미네집’처럼, 나중에 이 사진들이 ‘나와 소중한 사람들’의 전기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김 미 은 편집부국장·문화부장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