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빌딩 245’ 무수한 탄흔 남아 있건만
2020년 04월 29일(수) 00:00
“이렇게나 많은 죄를 짓고도 왜 반성하지 않습니까? 수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왜 책임지지 않습니까?” 지난 27일 오전 광주지법에 도착한 전두환 전 대통령은 기자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법정으로 이동했다.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려 표정도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지난해 3월 ‘발포명령을 부인하느냐’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거 왜 이래”라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걸 의식했을까. 하여튼 재판 내내 졸다 깨다를 반복하던 그는 “그런 무모한 헬기 사격을 대한민국의 아들인 헬기 사격수 중위나 대위가 하지 않았다고 본다”면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역시나 이번에도 뉘우침이나 참회 같은 건 없었다. 13개월 만에 피고인 신분으로 광주 법정에 다시 선 전 씨는 또다시 혐의를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 끝내 광주 시민에게 한마디 사죄의 말도 하지 않았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이번 역시 광주 시민들의 분노를 샀을 뿐이다.

이날 광주법원 정문 앞에는 ‘전두환 단죄(斷罪) 동상’이 놓여 있었다. 죄수복을 입은 전 씨가 무릎을 꿇고 오랏줄에 묶인 채 쇠창살 안에 갇혀 있는 실물 크기 조각상이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플라스틱으로 된 일명 ‘뿅망치’로 전 씨 동상 머리를 내리치며 가슴속 응어리를 풀기도 했다. 동상 측면에는 전 씨의 ‘죄악상’이 시간순으로 나열돼 있었다. 동상은 시민들의 십시일반(十匙一飯)) 모금으로 만들어져 지난해 12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 처음 설치됐다. 이번 재판 일정에 맞춰 광주로 옮겨진 동상은 전 씨에 대한 엄중 처벌과 5·18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바람이 담겨 있다.



한마디 사과도 없이



전 씨는 지난 2017년 4월 출간한 자신의 회고록을 통해 헬기 사격을 증언한 피터슨 목사와 고 조비오 신부(2016년 선종)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번 재판은 5·18기념재단과 유족이 전 씨를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死者)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하면서 비롯됐다. 지난해 3월 첫 출석한 이후 전 씨는 알츠하이머를 앓는다는 핑계로 재판에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온갖 꼼수로 법정에 나오지 않으면서 골프를 치고, 1인당 20만 원 상당의 점심을 측근들과 먹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시민들의 공분(公憤)을 사기도 했다.

이번 재판을 통해 조 신부의 명예회복뿐만 아니라 5·18민주화운동 당시 진압군의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 무엇보다 헬기 사격의 결정적 증거는 옛 전남도청 앞에 자리한 전일빌딩 10층 실내에서 발견된 총탄 자국이다. 자칫 헐릴 뻔한 위기에 놓였던 전일빌딩에서 광주시의 노력으로 5·18 당시 진압군의 헬기 사격을 입증할 수 있는 유력한 물증을 찾아낼 수 있었다. 2017년 국립 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 조사에서 전일빌딩 내·외부에서 245개의 총탄 자국이 조사됐고, 2019년 조사에서 25개의 총탄 자국이 추가로 확인됐다. 국과수에 따르면 10층 기둥과 창턱, 바닥에 남아 있는 탄흔 방향이 수평 또는 하향 각도인 것으로 보아 최소 10층(지상 31m) 이상의 높이에서 헬기와 같은 비행체에서 발사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감정했다. 여러 정황을 종합해 구체적으로는 UH-IH 헬기가 호버링(제자리 비행)을 하며 동체에 장착된 M60 기관총으로 연발 사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억지 궤변으로 일관



전일빌딩은 과거 광주일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기관이 자리해 광주·전남 언론 1번지로 불린다. 또한 도서관·미술관·다방 등도 있었던 문화공간이었다. 여기에 5·18 헬기 탄흔을 간직한 상징적인 건물인 전일빌딩이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 ‘전일빌딩 245’로 다시 태어났다. 리모델링을 마친 건물은 코로나19 여파로 개관을 연기해 오다 오는 5월 11일 문을 열기로 했다. 방문자들은 이제 총탄 자국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음은 물론 왜곡된 5·18의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올해는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강산이 네 번 바뀌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전히 발포명령자, 헬기 사격, 암매장 등 진실이 규명되지 못하고 있다. 이번 재판을 통해 진압군의 ‘자위권 발동’ 논리의 허구를 깨뜨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법원은 끝까지 ‘진실’을 캐내고, 억지와 궤변으로 일관하는 전 씨를 엄중하게 처벌해야 할 것이다.



송기동 문화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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