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의 ‘포비아’(Phobia)를 넘어서
2020년 02월 12일(수) 00:00
송기동 문화2부장
2003년 봄이었다. 취재차 홍콩에 들어서니 대부분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마스크에 반쯤 가려진 얼굴 표정은 하나같이 굳어 있었다. 국내에서 ‘괴질’(怪疾)로 불리던 이것은 현지에서 ‘사스’(SARS·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라는 영문 약칭으로 통칭되고 있었다.

나름 출발 전 인천공항에서 마스크를 준비했다. 그러나 “그 마스크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게 홍콩에서 만난 가이드의 말이었다. 급히 그가 권유하는 ‘N94 마스크’를 구입하려 했으나 품절 상태였다. 하는 수 없이 수술용 마스크를 사야 했다. 여러 기관들을 들러 취재를 할 때마다 기자와 취재원이 모두 마스크를 쓴 채 말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보름간의 출장 기간 동안 유일하게 믿을 것은 마스크 한 장 뿐이었다.

중국 우한(武漢)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세가 계속되고 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에 따르면 11일 0시 기준 누적 확진자는 4만2638명, 사망자는 1016명이다. 같은 날 중앙방역대책본부에서 발표한 국내 확진자는 28명이다. 이 가운데 4명은 완쾌돼 퇴원했다. 항바이러스제 투여 없이 자가 면역으로 치유된 사례도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려온다. 중국과 한국 상황은 대조적이다. 이를 보면 의료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신종 코로나는 원활한 의료 시스템 안에서 치료할 수 있겠구나 하는 낙관적 생각을 갖게 한다.



신종 코로나에 경제 한파



그렇지만 대중들의 신종 코로나에 대한 공포나 불안감은 쉽사리 가시지 않고 있다. 자동차 생산 라인이 부품 부족으로 멈춰 섰다. 식당이나 극장 인파도 줄어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공간에서 행여 전염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앞서 잠시 언급했지만, 이번 신종코로나 뉴스를 접하면서 새삼 2003년 중국 출장길을 떠올렸다. 당시 사스가 위세를 떨치던 때에 기자는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홍콩, 심천, 상하이 등지를 돌아다녔다. 귀국해 보니 중국보다 오히려 국내에서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중국에서 들어오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병원균을 가지고 오는 것으로 여기는 듯싶기도 했다. 결국 보건소의 요청을 받진 않았지만 스스로 2주간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결과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사스 확산세가 수그러들면서 대중들의 날선 불안감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라졌다.

사스 이후 17년이 지난 지금, 대중들의 전염병에 대한 인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지구촌 시대라고 하지만 아직도 동서(東西) 할 것 없이 ‘포비아’(Phobia·공포증)와 ‘인종주의’가 만연해 있다. 단적인 사례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올려진 ‘중국인 입국 금지 요청’ 제안이다. 지난 1월 23일에 “춘절 기간 동안이라도 한시적 입국 금지를 요청한다. 선제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한 네티즌의 청원에 11일 현재 69만6300명이 동의를 했다. 실제로 서울 일부 식당에서는 ‘중국인 출입 금지’ 문구가 나붙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뉴욕 인근 지역의 한 식당이 신종 코로나를 퍼트릴 수 있다는 이유로 한국인 관광객 입장을 거부했다는 보도다. 그들에겐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같은 아시아인일 뿐인 것이다. 국내의 중국인에 대한 공포증과 차별 대우는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본다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를 알 수 있다.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집단적인 공포의 전염이다. ‘가짜 뉴스’에 현혹되면 불안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정확한 정보 공개가 필수적이다. 신종 코로나에 전염되지 않도록 마스크 착용과 기본적인 대비도 당연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안의 ‘포비아’를 떨쳐내는 것이 중요하다.



공포 대신 의연한 대처를



세계적 석학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역작 ‘총, 균, 쇠’에서 “천연두, 홍역, 인플루엔자 등의 전염병들은 원래 동물들에게 퍼져 있던 매우 유사한 조상 병원균에서 나온 것인데, 각각 돌연변이를 거쳐 인간의 병원균으로 특수화되었다”고 말한다. 인류는 이 같은 새로운 질병을 겪으면서 해결책을 찾아내며 현재에 이르렀다. 이번 신종 코로나 확산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전염병에 대처하는 체계적이고, 탄탄한 국가적 의료·방역 시스템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신종 코로나 포비아와 대조적으로 펼쳐지는 ‘우한 힘내라!’(武漢 加油) 캠페인은 돋보인다. ‘우리 모두 아산·진천이다’(‘We are Asan!’ ‘We are Jincheon!’)로 대표되는 지역 주민들의 응원 메시지도 훈훈하다. “인간의 생명은 귀한 것입니다. 꼭 병마와 싸워 이기세요. 당신들은 혼자가 아닙니다. 한국에서 응원합니다.” 우한 시민과 교민을 향한 이들의 메시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신을 봄눈 녹이듯 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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