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의 상대성
2019년 07월 17일(수) 04:50
요즘 인터넷 댓글과 SNS에서는 ‘막말’이 난무하고 있다. 상대를 업신여기고 깔아뭉개려는 날선 대화들이 휴대전화와 컴퓨터 화면을 가득 채운다. 모든 현상에는 설명이 따라붙듯, ‘범람하는 막말’에도 어떤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출신인 대니얼 골맨(Daniel Goleman)이 이에 대한 적절한 이론을 제시한다.

“다른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할 경우 사람 뇌의 특정 부분(전두엽 피질)은 자신과 대화 상대방을 동시에, 그리고 실시간으로 감시한다. 상대에게 응답을 할 때 뇌는 그 응답이 적절하고 부드럽도록 함으로써, 부적절하거나 무례하거나 분노를 드러내려는 충동을 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물론 뇌의 이 같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상대의 응답을 실시간으로 피드백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골맨 교수에 따르면, 문제는 인터넷과 SNS에서는 ‘실시간 피드백’이 거의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대방의 표정과 말투 등 감시해야 할 신호를 즉각 받지 못하면 뇌 속의 충동 억제 회로는 당황하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탈(脫) 억제 충동’으로 나타난다. ‘탈 억제 충동’은 사람들이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감정 상태에 있을 때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부정적인 감정을 강하게 느낄 때면 ‘탈 억제 충동’은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 오프라인의 대면 접촉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인터넷과 SNS의 익명성 및 심정적 거리감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불만 등을 빌미 삼아 불길한 그림자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막말이 범람하는 지금의 상황을 충분히, 그리고 설득력 있게 풀이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한 것은 인터넷과 SNS가 지구촌의 기본 소통 네트워크로 작동하고 있는 지금, ‘탈 억제 충동’이라는 부작용 역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더욱 나쁜 것은 이 같은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실제로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 네트워크 환경을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막말’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점은 더욱 큰 문제다. 초기 일베를 비롯한 극우 성향의 일부 커뮤니티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막말이 요즘엔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심지어는 한국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과 오피니언 리더들마저도 인터넷 댓글과 SNS를 통해 막말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전래 속담이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세계의 작동 방식을 설명해 주는 가장 최신 이론인 양자역학은 입자성과 확률성 그리고 관계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가운데 관계성은 ‘사물과 사건은 오직 상호작용 속에서만 나타난다. 한 체계의 모든 사건은 다른 체계와 관계하여 일어난다’로 설명된다. ‘세상 어느 것도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상대가 있어야 비로소 존재한다’는 오래된 이야기가 실제로는 온 우주를 움직이고 작동시켜 온 기본 원리였던 셈이다.

개인이나 집단의 숨겨진 의도를 관철시키려는 권모술수 차원의 막말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적어도 진정한 의미의 소통이라면 상대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려는 의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상식이다. 서로 이해시키려는 정성,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적어도 막말로는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없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호모사피엔스)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다른 생명체를 누르고 최상위 포식자로서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원활한 의사소통을 이용해 사람들을 조직화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상대방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이야말로 인류를 발전시 켜온 원동력이라는 이야기다. 새로운 정보화 시대를 맞아 대세로 떠오른 ‘비대면 소통 방식’이 우리 사회와 지구촌의 미래를 또 다른 발전으로 이끌지, 아니면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갈지 지켜볼 일이다.

/redplane@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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