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건가, 기억할 건가
2019년 06월 05일(수) 09:27
 아무리 궁하거나 다급해도 체면 깎는 짓은 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양반은 얼어 죽어도 ○○은 쬐지 않는다’인데, ○○에 들어 갈 말을 ‘얻어 쬐는 불’을 가리키는 ‘곁불’로 알고 있는 사람이 제법 있다. 양반 체면에 남이 쬐는 불 곁에 빌붙는 짓은 하지 않는다고 이해하기 쉬우나, ‘겨를 태우는 불’처럼 지지부진한 불(겻불)은 쬐지 않는다는 뜻이다. 왕겨로 불을 때면, 공기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여 괄하게 타오르지 않는다. 이를 체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곁불’이 오히려 효율적인 의미 전달 매체일지 모르겠으나, 속담에 담긴 정서가 온전히 전승될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꽃게’는 17세기 문헌에 ‘곳게’로 기록되었다. 본래 ‘곶게’를 당시 표기법에 따라 표기한 것이다. ‘곶’은 ‘곡괭이, 송곳’ 등에 남은 흔적처럼 ‘꼬챙이’란 뜻으로, 지금도 ‘호미곶’과 같이 ‘바다로 돌출한 육지의 선단부(串)’를 가리키는 단어로 쓰인다. 옛날에는 등딱지 양 끝에 꼬챙이처럼 뾰족한 뿔이 있어 ‘곶게’로 불렀을 것이다. 그런데 어두음이 된소리로 바뀌며 한자어 ‘화해’(花蟹)와 대응하는 ‘꽃게’가 되었고, 삶으면 꽃처럼 붉게 변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조리 후의 변화로 이름을 붙였을까 하는 의문, 모든 게는 삶으면 붉어진다는 상식은 통하지 않는다.

 맥락을 놓치면 내용이 왜곡되고, 생각 없이 이를 수용하다 보면 본뜻을 망각하여 와전(訛傳)하게 된다. 그래서 현상을 돌아보고 근원을 탐색할 필요가 있다. 요즘 일제의 흔적을 찾아 제거하려는 노력이 여러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오욕의 역사를 바로 잡는 측면에서 만시지탄의 감이 있지만, 사실(史實)을 지우기에 앞서 바탕을 찾아 기억하는 것도 후일을 위한 대응일 것이다.

 일제의 침탈은 명산의 정기를 끊고자 주요 지맥에 말뚝을 박는 데 이르기까지 계획적이며 집요했다. 일제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阿部信行)는 “우리는 비록 전쟁에 패했지만, 조선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인이 제 정신을 차리고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 교육을 심어 놨다. 조선인들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고 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뿔 달리고 송곳니가 드러난 도깨비가 나오는 ‘혹부리 영감’ 이야기를 고유의 전래동화로 알고 있지만, 일본 도깨비 ‘오니’(おに)를 알면 달라진다. 아이들의 전통놀이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일본의 ‘다루마상가 고론다(達摩(たるま)さんが ころんだ, 달마가 구른다)’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임영수 연기향토박물관장에 따르면 달마를 희화한 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안타까워한 이가 있었다. 평생을 무궁화 보급에 힘썼던 남궁억 선생이 아이들에게 과자를 사주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바꾸어 부르게 하였다는 것이다.

 설화의 주제인 권선징악, 착한 이의 행위를 악한 이가 답습하는 모방담은 세계 공통이다. 무비판적 수용을 반성하여 일본 문화의 흔적을 지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설화의 보편적 교훈과 더불어 일본의 문화 침탈을 익히는 자료로서의 가치를 생각하고, 놀이마저 빼앗긴 암울한 시대의 아이들 마음 속에 무궁화를 피우려고 노력했던 남궁억 선생의 뜻을 기리며 놀 기회를 주는 것도 지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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