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야
[김미은 편집부국장·문화부장]
![]() [김미은 편집부국장·문화부장] |
지금 이 글은 푸치니의 현악 4중주곡 ‘국화’를 들으며 쓴다. 푸치니가 1890년에 작곡한 ‘국화’는 그가 아마데오 대공의 서거 소식을 듣고 하룻만에 쓴 곡이라고 한다. ‘라 보엠’ 등 오페라로 워낙 유명한 푸치니인지라 이 곡은 처음 접했는데, 애조 띤 선율이 인상적이다.
낯선 푸치니의 곡을 만난 건 윤광준의 ‘심미안 수업’ 중에서 발견한 한 구절 덕이다. KBS FM ‘명연주 명음반’ 진행자 정만섭이 홈페이지에 올린 ‘어느 날’의 선곡표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날 진행자는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일명 장송행진곡), 바그너의 죽음을 예감하며 2악장을 작곡한 부르크너의 ‘교향곡 7번’, 피아졸라의 ‘천사의 죽음’, 코렐리의 ‘라 폴리아’를 선곡했다. ‘어느 날’은 2018년 ‘4월 16일’이다.
영화 이야기를 쓰려한다. 영화 속 ‘아빠’는 출입국사무소에 찾아가 누군가의 여권에 도장을 찍어달라 부탁한다. “출국 심사대로 가라”는 직원의 말에도 아빠는 사무실을 떠나지 않는다. “살아있는 사람도 아니고 소원 하나 들어주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렵습니까?” 벌개진 눈으로 외치던 아빠는 “대체 누구 여권이냐”는 질문에 나지막이 말한다. “제 앱니다. 제 애에요. 제 아들입니다.” 여권을 만들긴 했지만 한번도 외국에 나가보지 못한 아들을 위해 아빠가 해주고 싶었던 일이었다.
거실에서 쪽잠을 자는 ‘엄마’ 역시 아들을 잊지 못한다. 가장 좋은 친구였던 오빠를 잃은 ‘동생’은 나이에 비해 너무 어른스러워 안쓰럽다. 세 사람은 세상에 없는 아들과 오빠의 ‘생일날’, 그를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 생일상을 차리고 아들의 이름으로 된 ‘생일시’를 받는다.
세월호 다룬 영화 ‘생일’
“늦은 밤이나 새벽/아무런 기척도 없는데/현관 센서등이 반짝/켜지긴 했지요?//놀라지 마세요/어머니 저예요//이제 저는 보이지 않게 가고/보이지 않게/차려 놓으신 밥을 먹고/보이지 않게/어머니를 안아요//다시 놓지 않으려/당신을 꼬옥 안아요//그때, 센서등이 반짝 켜지는 거예요.”(‘엄마 나야’ 부분)
설경구·전도연 주연의 영화 ‘생일’은 세월호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대신, 남아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며 잔잔히 흘러간다. 감독의 말처럼,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라 더욱 마음에 남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생일시’는 “아이들에게 잘 있다는 말 한마디만 들을수 있다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남겨진 가족들의 바람을 담아 정신과 의사 정혜신 등이 기획한 행사였다. 34명 단원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34명의 작가가 ‘시’로 썼고 시집 ‘엄마 나야’(난다 간)로 출간됐다.
예술이라는 장르로 애도하고, 기억하고, 추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세월호 관련 영화 제작을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왔었다. 유족을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세월호는 ‘민감한 이야기’인터라 긴장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는 감상평이 꽤 많았다.
영화 ‘생일’에서 느낀 조심스러움과 걱정을 나는 ‘오월광주’를 다룬 작품에서 느끼곤 한다. 몇년 전 서울의 20대 관객들 사이에서 고선웅 연출의 연극 ‘푸르른 날에’를 관람했을 때, 긴장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작품을 과연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광주시는 최근 ‘님을 위한 행진곡’ 세계화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오는 2022년까지 모두 83억원을 들여 관현악·뮤지컬 제작 등 사업을 진행한다. 지난해 교향시와 서곡 등 관현악 작품을 발표했고 올해는 창작뮤지컬 갈라 콘서트, 40주년인 내년에는 완성작을 무대에 올린다. 프로젝트가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관현악 작품들엔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긴 어려웠다.
뮤지컬 ‘님을 위한 행진곡’은 지나치게 ‘광주만의 이야기’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건 프랑스가 배경이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작품이 긴 생명력을 얻으려면 보편적 정서에 호응해야한다.
‘오월 광주’를 넘어선 뮤지컬
최근 옛 전남도청이 원형 복원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는 건 의미있지만, 민주평화교류원의 전시 콘텐츠 중 일부를 인상적으로 본 터라 모든 게 사라져 버리는 게 못내 아쉽다. 상무관 등 복원되는 공간이 단순히 1980년의 ‘재현’에 그친다면 그건 의미가 없다. 사실, 문화 콘텐츠를 포함해 ‘오월 광주’와 둘러싼 이야기는 ‘반쪽 느낌’이 들 때가 많다. 5월 관련 당사자들 앞에서 쉽사리 다른 의견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관련자들의 ‘오픈 마인드’가 전제 된다면 ‘오월’은 생생한 현재가 될 것이다.
내친 김에 지난해 5월 18일 선곡표를 찾아봤다.쇼팽의 ‘장송행진곡’과 베토벤의 장례식에 사용됐던 루이지 케루비니의 ‘레퀴엠’, 브루흐의 ‘인 메모리엄’ 등이 선곡됐다. 고레츠키의 ‘슬픔의 교향곡’과 더불어 올 4월과 5월 ‘애도의 곡’으로 기억한다.
/mekim@kwangju.co.kr
낯선 푸치니의 곡을 만난 건 윤광준의 ‘심미안 수업’ 중에서 발견한 한 구절 덕이다. KBS FM ‘명연주 명음반’ 진행자 정만섭이 홈페이지에 올린 ‘어느 날’의 선곡표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날 진행자는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일명 장송행진곡), 바그너의 죽음을 예감하며 2악장을 작곡한 부르크너의 ‘교향곡 7번’, 피아졸라의 ‘천사의 죽음’, 코렐리의 ‘라 폴리아’를 선곡했다. ‘어느 날’은 2018년 ‘4월 16일’이다.
세월호 다룬 영화 ‘생일’
“늦은 밤이나 새벽/아무런 기척도 없는데/현관 센서등이 반짝/켜지긴 했지요?//놀라지 마세요/어머니 저예요//이제 저는 보이지 않게 가고/보이지 않게/차려 놓으신 밥을 먹고/보이지 않게/어머니를 안아요//다시 놓지 않으려/당신을 꼬옥 안아요//그때, 센서등이 반짝 켜지는 거예요.”(‘엄마 나야’ 부분)
설경구·전도연 주연의 영화 ‘생일’은 세월호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대신, 남아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며 잔잔히 흘러간다. 감독의 말처럼,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라 더욱 마음에 남는다. 영화에 등장하는 ‘생일시’는 “아이들에게 잘 있다는 말 한마디만 들을수 있다면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는, 남겨진 가족들의 바람을 담아 정신과 의사 정혜신 등이 기획한 행사였다. 34명 단원고 아이들의 이야기를, 34명의 작가가 ‘시’로 썼고 시집 ‘엄마 나야’(난다 간)로 출간됐다.
예술이라는 장르로 애도하고, 기억하고, 추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세월호 관련 영화 제작을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왔었다. 유족을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세월호는 ‘민감한 이야기’인터라 긴장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봤다는 감상평이 꽤 많았다.
영화 ‘생일’에서 느낀 조심스러움과 걱정을 나는 ‘오월광주’를 다룬 작품에서 느끼곤 한다. 몇년 전 서울의 20대 관객들 사이에서 고선웅 연출의 연극 ‘푸르른 날에’를 관람했을 때, 긴장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 작품을 과연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광주시는 최근 ‘님을 위한 행진곡’ 세계화 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오는 2022년까지 모두 83억원을 들여 관현악·뮤지컬 제작 등 사업을 진행한다. 지난해 교향시와 서곡 등 관현악 작품을 발표했고 올해는 창작뮤지컬 갈라 콘서트, 40주년인 내년에는 완성작을 무대에 올린다. 프로젝트가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관현악 작품들엔 개인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긴 어려웠다.
뮤지컬 ‘님을 위한 행진곡’은 지나치게 ‘광주만의 이야기’에 매몰되지 않기를 바란다. 뮤지컬 ‘레 미제라블’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건 프랑스가 배경이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을 건드리는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작품이 긴 생명력을 얻으려면 보편적 정서에 호응해야한다.
‘오월 광주’를 넘어선 뮤지컬
최근 옛 전남도청이 원형 복원되는 것으로 결정됐다.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는 건 의미있지만, 민주평화교류원의 전시 콘텐츠 중 일부를 인상적으로 본 터라 모든 게 사라져 버리는 게 못내 아쉽다. 상무관 등 복원되는 공간이 단순히 1980년의 ‘재현’에 그친다면 그건 의미가 없다. 사실, 문화 콘텐츠를 포함해 ‘오월 광주’와 둘러싼 이야기는 ‘반쪽 느낌’이 들 때가 많다. 5월 관련 당사자들 앞에서 쉽사리 다른 의견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관련자들의 ‘오픈 마인드’가 전제 된다면 ‘오월’은 생생한 현재가 될 것이다.
내친 김에 지난해 5월 18일 선곡표를 찾아봤다.쇼팽의 ‘장송행진곡’과 베토벤의 장례식에 사용됐던 루이지 케루비니의 ‘레퀴엠’, 브루흐의 ‘인 메모리엄’ 등이 선곡됐다. 고레츠키의 ‘슬픔의 교향곡’과 더불어 올 4월과 5월 ‘애도의 곡’으로 기억한다.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