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홍행기 정치부장 겸 편집부국장]
![]() |
사람의 생각은 단어(單語)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매일 수많은 단어를 ‘조합’해 글과 문장을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타인과 의사소통을 한다.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각 단어에 똑같은 의미를 부여하고, 각 단어의 조합 방법에 동의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글과 단어는 마음속에 어떤 개념, 이미지,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스위스 언어학자인 소쉬르는 “작곡이라는 단어를 보면 ‘음악에서 멜로디를 만드는 작업’이라는 개념이 마음속에 떠오른다”고 했다. 모든 단어에는 ‘사회적 의미’와 함께 ‘사회적 심상 또는 감정’이 배어 있는 셈이다.
지방의 일꾼을 뽑는 6·13지방 선거가 오늘 투표와 함께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선거 기간 중 다채로운 ‘말의 향연’이 펼쳐졌지만, 아무리 머릿속을 뒤적여도 기억에 남는 것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모든 후보의 모든 말과 그들이 사용한 단어들이 비슷했기 때문일 터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비교적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는데, 바로 ‘간곡히’ ‘간절하게’ 라는 단어다. 아마도 그 단어에 짙게 스며든 ‘사회적 감정’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한 표 부탁하는 간절한 심경
각 정당의 후보를 뽑기 위한 경선이 한창이던 4월, 한 후보가 보내 온 휴대전화 문자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로 시작됐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경선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꼭 선택해 달라’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정말, 얼마나 이기고 싶었으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까지 표를 달라고 ‘간곡한 부탁’을 하며 머리를 숙이는 걸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짠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수많은 후보들이 ‘간곡히’ ‘간절하게’라는 단어를 사용해 문자를 보내는 바람에 ‘짠하다’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엷어지긴 했지만, 수십여 년간 사용해 오던 ‘간곡’ ‘간절’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저마다 다르겠지만 ‘간곡하다’ ‘간절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에게 붙잡힌 자기 새끼를 좇아 울며불며 강 언덕을 내달렸다는 어미 원숭이가 절로 떠오른다. 배를 타고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중국 진나라 병사에게 붙잡힌 새끼를 되찾기 위해 100리(40km)를 쫓아온 어미 원숭이가 강폭이 좁아지는 협곡에서 마침내 배를 향해 몸을 날렸지만 배에 이르기도 전에 죽었다는 이야기다.
병사들이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랐더니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단장지애’(斷腸之哀)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인데, 오직 자식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100리를 달리는 ‘과정’에서 원숭이를 지배했던 감정이 바로 그 ‘간절함’이 아닐까 싶다. 선사로부터 받은 화두를 깨뜨리기 위해 한 평 토굴에 스스로를 가둔 채 가슴속 마귀와 대결했던 선승들의 마음가짐도 ‘대장부로서 평생의 일(得道)을 끝마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좋다’는 간절함일 터다. 간절함이야말로 이 세상 그 어떤 어려움도 능히 견디고 뚫고 나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인 셈이다.
문제는 ‘간절’이라고 하는 그 감정은 일의 진행 과정에서 생겨나고 유지되는 것일 뿐, 목표가 이루어지고 사건이 마무리되면 사라지거나 잊히고 만다는 점이다. 몇 날 며칠 밤잠을 설치며 온갖 각오와 의지를 불태우게 만들던 호르몬 분비가 잦아들면 또다시 안일했던 과거로 안주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오로지 시민 행복을 목표로
오늘은 민심의 부름을 받은 당선자가 결정되는 날이다. 후보들의 심신을 극한까지 몰고 갔던 갈망과 간절함도 멈추는 날이다. 그들의 가슴속 간절함의 깊이와 고통을 짐작하기에, 그동안 힘든 나날을 기꺼이 견뎌 온 모든 후보들에게 진심으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최선을 다했지만 힘이 조금 부치거나 시운을 타지 못해 불행히 낙선한 이들에게는, ‘비통한 심경을 추스르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 4년 후의 권토중래를 기약하는’ 각오를 부탁한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경쟁자들을 제치고 다행히 목표를 이룬 당선자들에게는, ‘앞으로 4년간 온몸과 마음을 다해 시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새롭게 다져 주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다가올 4년이, 정치를 시작하고 선거에 뛰어들게 만든 초심(初心)을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 ‘간절한’ 과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redplane@kwangju.co.kr
특히 글과 단어는 마음속에 어떤 개념, 이미지, 생각들을 불러일으킨다. 스위스 언어학자인 소쉬르는 “작곡이라는 단어를 보면 ‘음악에서 멜로디를 만드는 작업’이라는 개념이 마음속에 떠오른다”고 했다. 모든 단어에는 ‘사회적 의미’와 함께 ‘사회적 심상 또는 감정’이 배어 있는 셈이다.
각 정당의 후보를 뽑기 위한 경선이 한창이던 4월, 한 후보가 보내 온 휴대전화 문자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로 시작됐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경선 여론조사에서 자신을 꼭 선택해 달라’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정말, 얼마나 이기고 싶었으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까지 표를 달라고 ‘간곡한 부탁’을 하며 머리를 숙이는 걸까”라는 생각에 마음이 짠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수많은 후보들이 ‘간곡히’ ‘간절하게’라는 단어를 사용해 문자를 보내는 바람에 ‘짠하다’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엷어지긴 했지만, 수십여 년간 사용해 오던 ‘간곡’ ‘간절’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
저마다 다르겠지만 ‘간곡하다’ ‘간절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에게 붙잡힌 자기 새끼를 좇아 울며불며 강 언덕을 내달렸다는 어미 원숭이가 절로 떠오른다. 배를 타고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중국 진나라 병사에게 붙잡힌 새끼를 되찾기 위해 100리(40km)를 쫓아온 어미 원숭이가 강폭이 좁아지는 협곡에서 마침내 배를 향해 몸을 날렸지만 배에 이르기도 전에 죽었다는 이야기다.
병사들이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랐더니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단장지애’(斷腸之哀)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인데, 오직 자식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100리를 달리는 ‘과정’에서 원숭이를 지배했던 감정이 바로 그 ‘간절함’이 아닐까 싶다. 선사로부터 받은 화두를 깨뜨리기 위해 한 평 토굴에 스스로를 가둔 채 가슴속 마귀와 대결했던 선승들의 마음가짐도 ‘대장부로서 평생의 일(得道)을 끝마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죽어도 좋다’는 간절함일 터다. 간절함이야말로 이 세상 그 어떤 어려움도 능히 견디고 뚫고 나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원동력인 셈이다.
문제는 ‘간절’이라고 하는 그 감정은 일의 진행 과정에서 생겨나고 유지되는 것일 뿐, 목표가 이루어지고 사건이 마무리되면 사라지거나 잊히고 만다는 점이다. 몇 날 며칠 밤잠을 설치며 온갖 각오와 의지를 불태우게 만들던 호르몬 분비가 잦아들면 또다시 안일했던 과거로 안주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오로지 시민 행복을 목표로
오늘은 민심의 부름을 받은 당선자가 결정되는 날이다. 후보들의 심신을 극한까지 몰고 갔던 갈망과 간절함도 멈추는 날이다. 그들의 가슴속 간절함의 깊이와 고통을 짐작하기에, 그동안 힘든 나날을 기꺼이 견뎌 온 모든 후보들에게 진심으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최선을 다했지만 힘이 조금 부치거나 시운을 타지 못해 불행히 낙선한 이들에게는, ‘비통한 심경을 추스르고 부족한 점을 보완해 4년 후의 권토중래를 기약하는’ 각오를 부탁한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경쟁자들을 제치고 다행히 목표를 이룬 당선자들에게는, ‘앞으로 4년간 온몸과 마음을 다해 시민의 삶을 책임지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새롭게 다져 주기를 기대한다.
앞으로 다가올 4년이, 정치를 시작하고 선거에 뛰어들게 만든 초심(初心)을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 ‘간절한’ 과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redplan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