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도시의 ‘불편한 진실’
2017년 08월 09일(수) 00:00
3년 전쯤의 일이다. 프랑스 파리에 사는 후배 S는 7년만의 만남에서 “기회만 된다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10년 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파리로 유학을 떠난 그녀의 고백은 순간 내 귀를 의심케 했다. 아니, 누구나 살고 싶어하는 예술의 도시를 떠나고 싶다니. 게다가 당시 그녀는 프랑스 남자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던 터라 놀라움은 더 컸다.

그런데 그 이유가 나를 또 한번 놀라게 했다. 사연인즉슨, 수많은 관광객으로 인해 물가와 임대료가 오르면서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단다. 파리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어딜 가나 관광객들로 붐비는 번잡한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1년 365일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리다 보니 공공장소건, 문화시설이건 줄서는 것은 기본이고 각종 소음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술관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뜸한 추운 겨울에나 자주 이용한다고 했다.

이런 불만이 그녀의 유별난 성격(?)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근래 세계 주요 관광도시가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으면서 현지 주민들의 ‘반(反) 관광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 등에 따르면 스페인 극좌정당 ‘민중연합후보당’(CUP)의 청년조직은 지난 1일 공공 자전거 거치대에 세워놓은 관광객용 자전거를 파손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을 게시했다. 주민들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공공 자전거 거치대를 관광객들이 차지하는 바람에 정작 납세자들이 사용할 시설은 부족하다는 불만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이탈리아 베네치아 등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 도시에 너무 많은 관광객이 몰리면서 치솟은 임대료와 물가로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연일 관광 반대 시위가 벌어지는가 하면 당국에 관광객 수 통제를 요구하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되는 추세다.

최근 관광도시로 급성장하고 있는 여수도 마찬가지. 잘 알다시피 여수는 엑스포 개최 효과와 KTX 개통으로 2015·2016년 2년 연속 관광객 1300만 명 시대를 맞고 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여수시민협이 지난달 19일부터 보름간 시민 395명을 대상으로 ‘관광객 증가가 여수시민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 조사’를 실시한 결과, 시민들의 삶의 질은 되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소득증가는 미미한 데 반해 물가상승과 교통정체, 소음, 쓰레기, 불법주차로 불편이 가중된 탓이다. 이 때문에 일부 시민은 아예 타지역으로 이사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요즘 전국 지자체의 화두는 ‘관광으로 먹고 사는’ 도시다. 하지만, 일부에선 관광객 늘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시민들의 정주환경에는 소홀한 탓에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다. ‘준비 없는’ 관광도시는 자칫 거대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한번쯤 되돌아 봐야 할 일이다. 근래 관광객 유치에 팔 걷고 나선 문화광주라면 더더욱.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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