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세련되게, 좀 더 실속 있게
2017년 06월 07일(수) 00:00
박 치 경 편집부국장·정치부장
일단 출발이 좋다. 출범 30일(8일)을 앞두고 있는 문재인 정부 초반 점수는 후하다. 대통령의 행보에 대중들은 ‘3쾌’(유쾌·통쾌·상쾌)의 감정을 느끼며 즐거워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취임 첫날부터 소통과 낮은 자세로 국민 가슴에 파고들었다. 서울 홍은동 자택을 떠나며 이웃들과의 스스럼없이 ‘셀카’를 찍던 모습이나, 와이셔츠 바람으로 청와대 수석들과 커피를 마시던 장면은 매우 신선했다. 전임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독단’ 때문에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돈 봉투 만찬’에 전광석화 같은 검찰 개혁의 불을 댕겼고, 이낙연 총리 등 호남 인재 중용과 잇따른 파격 인사도 쌍수로 환영받았다. 미-중-일-러 특사 파견으로 외교 안보 불안감도 어느 정도 씻어 냈다.

대통령 업무 지시 1호인 일자리위원회 설치에 이어 4대강 일부 보의 상시 개방,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화력발전소 셧다운, 남북 관계 개선과 국정원 및 국방 개혁까지…. 적폐 청산과 새로운 나라를 위한 문 대통령의 쾌도난마에 국정 지지도는 80%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태클’은 예상보다 빨랐다. 이낙연 총리와 장관급 청문회를 둘러싸고 자유한국당을 필두로 야권의 공세가 시작됐다. 새 정부 출범 보름 여만에 ‘협치 중단’을 선언한 한국당의 태도는 대선 패배의 뒤끝 작렬로도 보인다.



취임 한 달 ‘3快’로 환호



물론 인선이 완전(퍼펙트)했다고 볼 수는 없다. ‘생활편의형’이라지만 위장전입과 자녀를 둘러싼 잡음 등은 지적받을 만하다. 과거 투기성 주거 변동이나 ‘갑질’은 아닐지언정 허물은 허물이다. 가장 깨끗할 것 같은 문재인 정부이기에 더 커 보이는 측면도 있다.

임기 초반 높은 국민적 지지에도 짚어 볼 대목은 있다. 우선 새 정부의 몇몇 ‘상징적 어휘’다. ‘완전’, ‘제로’, ‘절대’ 같은 단정적 수식어들이 자주 나오는데 조금은 걱정스럽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튿날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해 “공공 부문부터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다”라고 공언했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국민 열망에 부응하고 강한 의지 표명을 위해 ‘제로’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사실 대통령은 이런 단어를 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국민의 가슴을 뻥 뚫리게 하고 지지도를 올리는 데는 보탬이 되겠지만 언젠가 발목을 잡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장 비정규직 문제만하더라도 민간 부문까지 확산해 기업의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하는 일자리 81만 개 창출도 재정 문제를 수반한다. 그렇다고 물러서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조금 세련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정치는 말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말이라는 것은 이해 당사자 간 해석 차이를 동반한다. 즉 비정규직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제로’라고 단언한 만큼 차후 한 사람도 남김없이 해결하라고 주장할 수 있다.

문 대통령 발언은 공공 부문부터 단계적으로 비정규직을 없애는 데 전력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겠다. 그럼에도 근로자들은 “제로화하겠다고 했으니 안 되면 책임지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열정으로만 가득 찬 아마추어리즘은 국민을 실망시키고, 정권에는 버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 학습한 바 있지 않나.



'열정 아마추어리즘' 곤란



적폐 청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리나 부패가 화두에 오르면 ‘척결’(剔抉·살을 도려내고 뼈를 발라내 나쁜 요소들을 깨끗이 없애 버림)이라는 단어가 따른다. 당장 검찰이나 국방 분야에서 기득권을 바탕으로 노른자위를 차지했던 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가 예상된다. 부당한 인사나 권한 행사는 마땅히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군내에서는 전두환의 ‘하나회’에 이어 ‘알자회’, ‘독사파’(독일 유학 그룹)가 운위되며 인적 쇄신이 예고됐다.

그렇지만 더 수준 높은 개혁이란 합리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원천적인 비위를 막는 것이다. 정권이 교체됐으니 중요 관직은 우리 쪽 사람으로 메워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틀을 정착시키라는 주문이다.

또 하나 신경을 써야 할 대목은 ‘실용’(實用)이다. 어떤 이들은 문재인 정부를 ‘노무현 시즌 2’라고 부르며 개혁 소용돌이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국민의 시선은 노무현 정부에서 좀 더 진화됐다. 그동안 우리 사회 곳곳에 켜켜이 눌러 붙은 때를 씻어 내는 것은 당연지사다. 나아가 제발 이젠 살림살이 좀 낫게 해달라는 요구가 늘고 있다.

새 정부도 이를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날마다 상황을 점검하고, 대규모 추경을 편성해 특별히 일자리를 챙기는 것이다. 이 점은 높이 살 만하다. 재벌 횡포나 비리를 바로잡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기업을 맹목적으로 옥죄기보다는 생산과 분배를 동시에 고려하는 실용정신이 있어야 한다. 이게 모두를 살리는 길이다. 외교 안보 역시 자주 노선을 토대로 유연하게 실리를 챙겨야 결국 국민이 편해진다.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시작한 문재인 정부. 5년 후 떠날 때도 칭찬을 받아야 비로소 성공한 정권이 될 수 있다.

/unipark@kwangju.co.kr
이 기사는 광주일보 홈페이지(img.kwangju.co.kr)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img.kwangju.co.kr/article.php?aid=1496761200606061085
프린트 시간 : 2025년 05월 13일 21:3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