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예술단, 봄은 오는가
2017년 03월 29일(수) 00:00
김 미 은 문화1부장
포스터 속 퀭한 눈의 한 사내가 정면을 쏘아본다. 당신을 쳐다보는 그 눈빛엔 분노인 듯, 체념인 듯 회한이 담겨 있다. 연극배우 안석환이 맡은 맥베스. 지금 이 사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또 한 장의 포스터가 눈에 띈다. 바닥에 누워 부둥켜안고 키스하는 연인. 아찔할 정도로 에로틱하다. 이들 연인은 각기 로미오와 줄리엣 역을 맡은 광주시립발레단원 보그단 플로피뉴와 구윤지다.

4월, 광주에서 만날 ‘맥베스 411’과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은 전국 공연계의 화제작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광주시립예술단이 공동 제작한 두 작품에는 재독 안무가 허용순과 연출가 이해제가 합류, 기대감을 높인다.

전당 개관은 시립예술단에도 도전의 문을 열어 줬다. 예산 등 제작 여건이 열악한 상황에서 전당과 협업을 통한 제작비 확보는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풍부한 인적 자원과 함께 무대·의상·조명 등에서 기존 작품과 차별화된 공연을 만나는 건 단원들에게도, 관객들에게도 행복한 일이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시립예술단은 ‘돈 먹는 애물단지’가 아니라 ‘시민들의 자랑거리’여야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국에서 가장 많은, 광주의 8개 예술단에 대한 시민 평가는 그리 후하지 않다. 시립예술단 역량 강화 목소리가 커지는 요즘, 발레단·창극단·오페라단 신임 예술감독을 누가 맡느냐는 향후 예술단 운명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지금까지 공모 방식을 취했던 발레단은 이번에는 청빙제를 택했다. 시와 발레단 측이 청빙(請聘)위원회를 구성한 후 추천을 받아 후보자를 뽑는 방식이다. 단원의 의사 반영이라는 점에서는 의미 있지만 단원 ‘입맛’에 맞는 감독을 뽑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40년 역사의 발레단은 지역 무용인이 줄곧 예술감독을 맡아 왔다. 시는 이번엔 연봉을 대폭 올리고 지역은 물론 외국인까지 포함해 예술감독을 찾고 있다. 행정의 미숙함, 발레단 내부 사정을 모른다는 점 등을 들어 외국인 감독에 부정적인 의견도 있지만 파벌 문제를 해결하고 발레단의 환골탈태를 위해선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단원들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다.

전임 감독과 고소·고발 사태까지 치닫고, ‘공연을 하네 마네’ 하는 상황까지도 겪었던 창극단도 파벌 등이 얽혀 내부 사정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실력 있는 예술감독 선임과 함께 단원들 변화를 촉구하는 의견이 많다. 단원들이야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밖에서 예술단을 바라보는 눈은 냉정하다. 피 말리는 경쟁 사회에 ‘안일한 태도’가 보인다는 비판이 있는 것이다. 유학파 젊은 예술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며 강력한 오디션제를 요구하기도 한다.

특히 노조에 대해 쓴소리 하는 사람들도 많다. 예술단은 제1 노조, 제2 노조, 비노조원으로 구성돼 있다. 일부에서는 “어떤 예술감독이 오더라도 노조 때문에 소신을 펼치지 못할 것”이라고도 말한다. 노조 존재 이유가 조합원의 권익을 지키는 거라는 건 동의하지만 지나친 이기주의는 경계해야 한다. 노조 ‘방패’ 뒤에 숨는 이를 모른 체하거나, 몇몇에 끌려다니며 예술단 전체 이미지를 망쳐 버리는 일은 하루빨리 끊어 내야 한다.

시립단원으로서의 자부심, 무엇보다 예술가으로서의 자부심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며 투쟁했던 이들이 지키고 싶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예술가의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예술단 등 문화 발전엔 시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 중심엔 시장의 문화마인드가 있다. 시장이 취임할 때마다 ‘시장님 문화 마인드는 어떤가’ 하는 질문을 받곤 한다. 윤장현 시장을 공연장에서 자주 보고 작은 카페 콘서트에서 만나기도 해 기대가 높았다. 하지만 취임 후 행보는 아쉬운 점이 많다. 전문성 확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광주문예회관 개방형 관장제를 ‘나 몰라라’ 하고 있는 점도 그 중 하나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특히 ‘사람’과 관련해선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려울 것 같다. 시립예술단 예술감독이 2년 만에 그만두는 예는 거의 없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이번에 재위촉에 실패한 두 사람 모두 시장이 임명했다. 7월 창단하는 오페라단 예술감독 자리엔 특정인 이름이 오르내린 지 오래다. “예술감독을 하려면 ‘모 씨’에게 말해야 한다는 데 맞는 말이냐”는 말도 자주 들었다. 사실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광주문화재단의 인위적 물갈이 역시 실패작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비엔날레 대표이사와 이사장 선임도 벌써 걱정이 된다. 신임 예술감독으로 어떤 인물이 뽑히느냐가 또 한 번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시립예술단의 가장 강력한 아군은 관객들이다. 한 번 무너진 이미지는 회복하기 어렵다. 관객들의 외면처럼 아픈 것도 없다. 좋은 작품이 올라올 때, 단원들의 땀과 열정이 보일 때 시민들은 언제나 박수를 칠 준비가 되어 있다. 객석에 앉아 열화와 같은 환호성을 보내고 싶다. 무대 위 그대들에게. 예술단의 ‘찬란한 봄날’을 기다려 본다.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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