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민속문화 맥이 끊긴다
![]() 송 기 동 문화2부장 |
“이 나무를 찾으려고 이 산 저 산 돌고 돌아/ 어렵사리 찾았구나/ 이 나무를 짐대나무로 베어서/ 촌전(村前) 앞으로 모셔 가세∼.”
지난 26일 화순군 동복면 가수리 2구 웃가무래마을. 동네 주민들이 짐대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먼저 오전 일찍 마을 인근 대평리 골짜기에서 8m 정도 길이의 육송(陸松)을 잘라 오면서 시작됐다.
ㄷ자 모양으로 생긴 ‘깎낫’으로 소나무 껍질을 벗기는 사이 Y자 나무와 ㄱ자 나무를 조합해 오리 몸통과 머리를 만드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됐다. 주민들은 ‘솟대’ 대신 ‘짐대’라고 부른다. 오리(새)를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메신저로 보는 북방 샤머니즘의 흔적이다.
오리 입에는 잘게 쪼갠 대나무 서너 가지를 물렸다. 주민들은 ‘오리 수염’이라고 부른다. 이는 마을의 화기(火氣)를 물고 날아가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짐대를 세울 구덩이에는 북어를 넣었다. 육송 끝에 한지를 끼워 오리를 맞춘 후 세 방향에서 밧줄을 연결했다.
동네 주부들까지 모두 나와 힘껏 줄을 당겼다. 마침내 기존 짐대 옆에 다소 키 낮은 새로운 짐대가 세워졌다. 밑동 손잡이를 돌려 오리 머리를 남쪽 방향 촛대봉(일명 등잔솔)으로 향하게 했다. 짐대 앞에 막걸리 잔과 나물 한 접시로 간단한 제상을 차리고 나니 풍물이 울려 퍼졌다.
가수리 마을 주민들은 매년 음력 2월 1일마다 마을 어귀 당산나무 앞에 짐대를 1개씩 세워 왔다. 마을이 형성된 1800년대부터 짐대를 세웠다고 한다. 김창수(65) 이장은 짐대제(祭)를 지내는 까닭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마을 앞에 있는 산이 화기를 품고 있어 빈번하게 마을에 화재가 발생한다고 했다. 병아리를 키우는 대바구니 ‘엇가리’(덕가래)에 불이 붙어 굴러다니면서 마을이 전소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마을에 재앙이 없고, 자손들도 사고가 없도록 해 달라는 뜻으로 짐대제를 모신다.”
하지만 20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가수마을 짐대 세우기 명맥이 끊어질 위기를 맞고 있다. 농촌 공동화와 주민들의 고령화로 매년 짐대 세우기가 어려워진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2년 동안 짐대제를 지내지 못했다. 주민들은 17가구 30여 명으로, 50∼90대 노인들뿐이다. 이날 나무를 베어 오고 깎는 작업에는 남자 10여 명이, 짐대에 줄을 묶어세우는 작업에는 여자 10여 명까지 참여했다. 짐대제를 마치고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함께 모여 뒤풀이 점심을 했다.
주민들은 식사를 하며 짐대제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를 화제에 올렸다. “젊은 사람이 많이 있고, 일할 사람이 있으면 계속할 수 있겄지만…. 그래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 대(代)까지는 계속 해야겄제.”
이날 나무 자르기에서 세우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2시간 정도. 예전에는 육송을 옮길 새끼줄을 꼬고, 나무를 베고, 옮기고, 짐대를 세울 때 풍물패가 앞장섰다. 또한 고유의 노동요(勞動謠)를 불렀다. 그때는 짐대를 세우려면 하루 종일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절차를 생략하고 간소하게 치른 지가 꽤 오래됐다. 올해 역시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경운기 뒤에 나무를 매달아 마을로 끌고 왔다.
가수리 상가마을 짐대 세우기는 지난 2003년 12월에 ‘화순군 향토문화유산’(제17호)으로 지정됐다. 실제로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짐대를 세우는 곳은 전국적으로도 드물다. 관광지 같은 곳에 세워진 ‘짝퉁’ 솟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전통 농경사회에서 짐대에 올린 오리에는 풍년과 마을 안녕을 기원하는 농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첨단 디지털 시대와 고령화 시대에 자칫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전통 민속문화에 대한 행정기관의 관심과 지원이 아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집안 제사나 차례마저 지내지 않으려는 집이 많다. 하물며 마을 공동체적인 민속문화를 말해 무엇하랴. 마을 원로가 타계하면 그 마을에서 전래되던 민속문화는 아예 사라지고 만다. 길이 후대에 전승되어야 할 민속문화의 명맥이 끊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을 어르신들이 주도하되, 문화에 관심이 많은 청년들이 동참하는 축제 같은 짐대제도 생각해 볼 만하다. 200여 년간 명맥을 이어 온 마을공동체와 가수리 짐대제를 살리기 위한 묘안은 없을까.
“우리 마을 짐대님은 화재 예방해 주시고/ 우리 마을 짐대님은 질병 예방해 주시고/ 우리 마을 짐대님은 풍년 농사 기원하네.”
/song@kwangju.co.kr
지난 26일 화순군 동복면 가수리 2구 웃가무래마을. 동네 주민들이 짐대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먼저 오전 일찍 마을 인근 대평리 골짜기에서 8m 정도 길이의 육송(陸松)을 잘라 오면서 시작됐다.
오리 입에는 잘게 쪼갠 대나무 서너 가지를 물렸다. 주민들은 ‘오리 수염’이라고 부른다. 이는 마을의 화기(火氣)를 물고 날아가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짐대를 세울 구덩이에는 북어를 넣었다. 육송 끝에 한지를 끼워 오리를 맞춘 후 세 방향에서 밧줄을 연결했다.
가수리 마을 주민들은 매년 음력 2월 1일마다 마을 어귀 당산나무 앞에 짐대를 1개씩 세워 왔다. 마을이 형성된 1800년대부터 짐대를 세웠다고 한다. 김창수(65) 이장은 짐대제(祭)를 지내는 까닭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마을 앞에 있는 산이 화기를 품고 있어 빈번하게 마을에 화재가 발생한다고 했다. 병아리를 키우는 대바구니 ‘엇가리’(덕가래)에 불이 붙어 굴러다니면서 마을이 전소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마을에 재앙이 없고, 자손들도 사고가 없도록 해 달라는 뜻으로 짐대제를 모신다.”
하지만 20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가수마을 짐대 세우기 명맥이 끊어질 위기를 맞고 있다. 농촌 공동화와 주민들의 고령화로 매년 짐대 세우기가 어려워진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2년 동안 짐대제를 지내지 못했다. 주민들은 17가구 30여 명으로, 50∼90대 노인들뿐이다. 이날 나무를 베어 오고 깎는 작업에는 남자 10여 명이, 짐대에 줄을 묶어세우는 작업에는 여자 10여 명까지 참여했다. 짐대제를 마치고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함께 모여 뒤풀이 점심을 했다.
주민들은 식사를 하며 짐대제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를 화제에 올렸다. “젊은 사람이 많이 있고, 일할 사람이 있으면 계속할 수 있겄지만…. 그래도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 대(代)까지는 계속 해야겄제.”
이날 나무 자르기에서 세우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2시간 정도. 예전에는 육송을 옮길 새끼줄을 꼬고, 나무를 베고, 옮기고, 짐대를 세울 때 풍물패가 앞장섰다. 또한 고유의 노동요(勞動謠)를 불렀다. 그때는 짐대를 세우려면 하루 종일 걸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절차를 생략하고 간소하게 치른 지가 꽤 오래됐다. 올해 역시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경운기 뒤에 나무를 매달아 마을로 끌고 왔다.
가수리 상가마을 짐대 세우기는 지난 2003년 12월에 ‘화순군 향토문화유산’(제17호)으로 지정됐다. 실제로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짐대를 세우는 곳은 전국적으로도 드물다. 관광지 같은 곳에 세워진 ‘짝퉁’ 솟대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전통 농경사회에서 짐대에 올린 오리에는 풍년과 마을 안녕을 기원하는 농부의 마음이 담겨 있다. 첨단 디지털 시대와 고령화 시대에 자칫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전통 민속문화에 대한 행정기관의 관심과 지원이 아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집안 제사나 차례마저 지내지 않으려는 집이 많다. 하물며 마을 공동체적인 민속문화를 말해 무엇하랴. 마을 원로가 타계하면 그 마을에서 전래되던 민속문화는 아예 사라지고 만다. 길이 후대에 전승되어야 할 민속문화의 명맥이 끊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을 어르신들이 주도하되, 문화에 관심이 많은 청년들이 동참하는 축제 같은 짐대제도 생각해 볼 만하다. 200여 년간 명맥을 이어 온 마을공동체와 가수리 짐대제를 살리기 위한 묘안은 없을까.
“우리 마을 짐대님은 화재 예방해 주시고/ 우리 마을 짐대님은 질병 예방해 주시고/ 우리 마을 짐대님은 풍년 농사 기원하네.”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