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선택’을 다시 생각한다
2017년 02월 22일(수) 00:00
장 필 수 정치부 부장
조기 대선이 기정사실화되면서 선거 열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이런 현상은 유독 호남에서 강하다. 연초부터 시작된 야권 대선 후보들의 호남행이 이달 들어 더 잦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같은 날 토크콘서트라는 같은 방식의 행사로 맞불을 놓는가 하면 불과 500m 거리를 두고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두 당이 그 어느 때보다 호남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정권 교체 가능성이 지금 시점보다 더 높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5년 단임제에서 비롯된 10년 정권 교체 주기설을 얘기하지 않더라도 대통령이 탄핵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정권을 교체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3명의 지지율 합계가 60%를 넘어선 것만 보더라도 국민의 정권 교체 열망을 짐작할 수 있다.

야권 대선 주자들이 호남을 찾아 가장 흔히 하는 말이 이순신 장군의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말을 너무 자주 듣다 보니 이제는 진정성이 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러면서 호남인들은 고비마다 대한민국 정치의 물줄기를 바꿔 왔지 않았느냐고 치켜세우면서 ‘전략적 선택’을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호남 유권자들의 투표 성향으로 정착된 전략적 선택이란 무엇인가. 이는 사표를 막기 위해 정권 교체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밀어주는 투표 행태로 그동안 몰표로 나타났다. 처음 등장한 것은 2002년 3월 16일 민주당 경선 때로 가장 극적이었다. 16개 시도를 순회하는 국민 참여 경선에서 광주는 제주·울산에 이어 세 번째 순서였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7명의 출마자 중 지지율이 10% 미만의 군소 후보에 지나지 않았다. 이인제 후보가 대세론으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었고 한화갑 후보가 제주 경선 1위를 바탕으로 텃밭인 광주에서 1위를 차지해 이인제와 양강 구도로 수도권에 입성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결과는 의외였다. 노무현 후보가 득표율 37.9%로 압도적 1위를 차지하면서 광주가 노풍의 진원지가 됐고 결국 노무현이 대선 후보가 됐다. 본선에서도 노무현에게 광주에서 95%, 전남이 93%의 몰표를 줘 16대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17대와 18대 대선에서도 호남은 정동영에게 80%, 문재인에게는 90%의 표를 줬다.

전략적 선택은 비단 대선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선 전략공천이란 한계 속에서도 안철수를 살리기 위해 윤장현을 광주시장으로 선택했고 지난해 총선에선 호남 28석 가운데 23석을 국민의당에게 밀어줘 16년 만의 여소야대와 20년 만의 원내 3당 체제라는 정치적 지각변동을 주도했다.

호남의 전략적 선택은 판세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미래를 보고 투표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박수를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호남의 정치가 항수에서 변수로 밀려 있고 주체성을 상실한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차선의 카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정치인들이 호남 표를 얻기 위해 구축한 일종의 프레임일 수도 있다. 호남을 야권의 심장이라며 치켜세우면서 자신을 찍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며 일종의 틀 안에 가두려는 의도가 숨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호남의 선택과 다른 결과가 나올 경우 위험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야당의 대선 경선 룰이 결정되면서 호남 유권자들이 다시 전략적 선택의 기로에 섰다. 더불어민주당의 완전 국민경선에는 벌써 60만 명이 넘는 선거인단이 몰려 ‘역선택’을 놓고 유력 후보 간 신경전이 치열하다. 국민의당도 100만 당원 모집을 목표로 흥행 몰이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두 당과 후보들이 호남인에게 전략적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야권 후보 결정이 사실상 본선 당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어느 때보다 호남의 전략적 선택이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전략적 선택을 하는 호남의 위대한 유권자’라는 후보들의 사탕발림에 언제까지 취해 있어야만 하는가도 이제 생각해 볼 때다. 긴 안목에서 호남의 대권 주자를 키우는 것이 전략적 선택이라는 슬픈(?)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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