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새주 한 잔의 애향심
2017년 02월 01일(수) 00:00
최 재 호 경제부장
미국과 중국 등의 경제적 압박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올해 우리 경제에도 온통 빨간불이 켜졌다. 경제성장률 등 올해 예상되는 각종 경제지표는 최악의 수치들로 국민을 불안케 하고 있다.

물론 미국산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고 부르짖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중국의 강력한 자국 보호무역주의는 글로벌 시대에 역행하는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각국으로부터 반발과 경계를 사고 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트럼프의 자국 우선주의에 대해 크게 반감을 갖지 않는다. 자신들에게 일자리와 경제적 이익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국 보호무역주의와는 그 궤를 달리하지만 필자는 우리 지역 기업들의 제품 시장점유율에 트럼프식 논리를 적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배경은 우리 지역 기업들의 지역 시장점유율이 낮기 때문이다. 젊은 층에서는 그 제품이 우리 지역 공장에서 생산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지역 기업들이 생산한 제품들이 우수한 품질과 경쟁력을 바탕으로 전국 상품으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그 바탕에는 지역민들의 사랑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 실정은 그렇지 못하다.

대표적으로 소주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소주가 있다. 광주·전남에도 100년 기업을 추구하는 보해양조(주)가 67년째 지역소주 시장을 지켜 오고 있다. 하지만 잎새주로 대표되는 지역의 보해 시장점유율은 매년 감소 추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실제 지난 2014년 기준 충남 충북 경남 등 다른 지역 소주의 시장 점유율은 신장됐는 데 비해 보해의 경우 64.8%에서 63.1%로 감소했다.

이 같은 현상은 광주 지역에서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은 진로가 70%, 경북 금복주가 78%, 경상남도 무학이 80%의 시장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나 광주·전남의 보해 잎새주는 68%에 머물렀다. 특히 전라북도는 지역 소주업체인 보배가 하이트진로에 인수되면서 하이트진로가 75%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보해와 기타가 5%를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해로서는 호남권의 큰 시장인 전북을 하이트진로에 뺏겨 버린 셈이다.

자유시장 경제체제에서는 소비자가 선호하는 제품을 강제로 돌려세울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다만 전국 각 지역마다 지역 소주의 시장점유율이 80%에 이르고 있으니 우리 지역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지역 기업에 대한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보해가 2011년∼2013년 사이 저축은행 여파로 인해 지역 여론이 악화되면서 지역민들의 애정을 잃은 것도 사실이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 지난 2015년 임지선 대표가 부임하면서 지역민의 사랑과 관심을 회복하기 위해 지역밀착 경영과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을 펼치는 중이다.

지역 기업의 성장은 지역경제 활성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지방세 납부, 지역 인재 채용, 지역 사회공헌 활동 등이 대표적 효과다. 그렇다고 무작정 애향심에 의존한 마케팅과 품질이 미치지 못하는데도 지역 제품을 써주자는 것은 아니다. 같은 값이면 우리 지역에서 생산된 제품에 힘을 실어 줌으로써 지역 기업들이 전국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튼튼한 기초를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소주 시장은 정부가 지난 1973년 지방 소주 업체를 육성한다며 1도(道) 1사(社)규정을 만들었다. 이 규정 때문에 1970년까지만 해도 200여 개였던 소주 업체는 통폐합을 통해 10년 뒤 10여 개로 대폭 줄었다. 1976년에는 주류 도매상들이 사들이는 소주의 50% 이상을 자기 지역 소주 회사에서 사도록 하는 자도주(自道酒) 의무 구입 제도도 마련됐다. 이 자도주 보호 규정은 1996년 헌법재판소의 자유경쟁 원칙에 위배된다는 위헌 결정에 따라 폐지됐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해당 지역 소주 제조업체의 지역 정서 호소 활동 등으로 각 지역에서 생산된 소주가 선호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후 서울·경기의 대표 소주회사인 하이트진로가 25도인 소주시장에 23도의 참이슬을 출시하면서 전국 시장 점유율 50% 라는 안정적 기반을 갖고 지방을 공략하고 있다. 광주·전남도 예외는 아니어서 참이슬에 밀려 보해 잎새주의 시장점유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광주와 곡성에 공장을 둔 금호타이어도 사정은 마찬가지. 2014년에만 해도 호남권 점유율 40%대로 업계 1위인 한국타이어(30%)보다 10%포인트 가량 지역에서 우위를 점했다. 하지만 2016년 현재 한국타이어가 40%대로 약진한 반면 금호타이어는 정체된 상태다. 광주 지역은 그나마 금호타이어가 한국타이어보다 4∼5%가량 높은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2009년 이전만 하더라도 상당한 격차로 한국타이어를 따돌렸지만 워크아웃 이후 한국타이어에 시장을 내주고 나서는 좀처럼 지역 내 시장 점유율을 확고히 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민에게 지역 기업들이 생산하는 제품 사용을 권장하는 것은 글로벌 시대에 다소 시대 역행적인 발상이라고 지적받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60년 이상 지역을 지켜 온 소중한 기업들이 경영 악화로 인해 매출이 감소하고, 채용이 줄고, 공장 가동 등이 어려워진다면 그만큼 지역경제에 위협이 되는 것이다. 보해 잎새주와 금호타이어는 그 제품의 면면이 여타의 제품들과 경쟁력 면에서 뒤지지 않는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식당에서 소주를 시킬 때 보해 잎새주를 떠올리고, 타이어를 교체할 때 금호타이어를 한 번쯤 고려해 본다면 이 또한 지역경제를 위한 작은 애향심 아닐까.

/ lion@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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